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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사해/여행기

하늘과 맞닿은 산 오르다 보면

by betulo 2022.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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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기스스탄 여행기(5) 알틴아라샨 트래킹 왕복 30km
아침 6시에 눈을 떴다. 한국과 시차가 세 시간이라 키르기스스탄에 온 뒤론 줄곧 아침형 인간이다. 대략 씻고 1층 로비에서 스마트폰 충전을 하고 사진 백업도 하며 밀린 일기를 썼다.

오늘은 알틴아라샨(Алтын-Арашан)에 오를 예정이다. 알틴아라샨은 키르기스어로 ‘황금 치유 열쇠’를 뜻한다고 한다. 해발 2500m가 넘는 곳에 우뚝 서 있는데다 저 멀리 설산인 팔랏카 봉이 하얗게 보인다. 두 산맥 사이 해발 3500m에 있다는 알라쿨(Ала-көл) 역시 명물이라고 하는데, 산장에서 걸어서 여섯시간쯤 걸린다고 해서 이번 여행엔 빠졌다.

알틴아라샨 초입에 있는 산장으로 간 뒤 차를 갈아탔다. 무지막지하게 생긴 놈이다. 옛 소련 시절 군용차를 개조했다고 하는데, 이 정도는 되어야 알틴아라샨을 올라갈 수 있다고 한다. 차로 10분 가량 간 뒤 내려서 걷기 시작했다. 대체로 평탄해서 그리 힘들진 않았다. 고개를 들어보면 울창한 침엽수림과 눈치없이 아무 곳이나 피어있는 야생화, 박력 넘치게 흘러 내리는 계곡물이 서로 경쟁하듯 ‘어서 빨리 카메라로 나를 담아보라’며 아우성이다.


산을 중간쯤 올라갔을 때 말을 탄 할아버지가 내 옆을 지나간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마법주문을 외우니 아니나 다를까 손을 내민다. 악수를 나누며 뭔가 말을 하는데 어디에서 왔느냐고 묻는 듯 해서 꼬레아라고 말해줬다. 활짝 웃더니 말을 타고 앞서간다. 좀 더 걷다가 그 할아버지를 다시 만났다. 손주로 보이는 젊은이와 함께 쉬고 있었다. 말 두마리는 바로 옆에서 풀을 뜯으며 쉴 새 없이 똥을 싸고 있었다.

나도 두 유목민 옆에 가방을 내려놓고 쉬면서 손짓발짓 얘기를 나눴다. 알틴아라샨에 올라간다고 얘기했더니 자기들은 저쪽으로 간다는 듯 산 너머를 가리킨다. 그 말이 내 귀엔 꼭 “저짝”으로 들린다. 물병을 꺼냈다. 정확하게는 물병을 가득 채운 보드카였다. 같이 한 잔 하겠느냐고 물었다. 처음에 이들은 내가 물병을 가리키며 “보드카”라고 하니 이해를 못하는 눈치였다. 한 모금 마시고 나서야 말뜻을 알아듣고는 셋이서 보드카를 나눠 마셨다.

나는 한국에서 하듯이 보드카를 물병 뚜껑에 조금씩 마시는데 이 할아버지는 박력있게 병나발이다. 꿀꺽꿀꺽 시원하게 마시고는 활짝 웃는다. 산에서 마시는 물 대신 술은 역시 느낌이 남다른 법이다. 초콜렛도 몇 개 나눠 먹은 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말을 타고는 나와 악수를 다시 하고 헤어졌다.

키르기스스탄 유목민들은 봄부터 가을까진 산 위쪽으로 올라갔다가 가을에는 산 아래로 내려온다. 여름엔 산 위쪽이 덜 덥고 초원도 풍부하기 때문이다. 요즘엔 여름철 유목은 주로 남자들이 하기 때문에 산 아래 마을에는 여자들과 아이들, 노인들만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한국에선 많은 이들이 유목민 하면 정처없이 아무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훌훌 떠날 수 있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지금도 뭔 소리인지 잘 이해가 안되는, 유목민과는 아무 상관도 없이 대충 갖다붙인 "노마디즘"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유목민을 무슨 집시나 떠돌이 무사. 그것도 아니면 캠핑카타고 세계여행하는 사람 쯤으로 오해한다. 그런 유목민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유목민은 떠돌이가 아니다. 유목민 역시 ‘자기 땅’에 대한 관념이 분명히 존재한다. 다만 그 방식이 농경민의 후예들과 다를 뿐이다.

흉노제국을 세운 묵특선우 이야기는 유목민들 역시 부동산 관념을 분명히 갖고 있었다는 걸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된다. 사기(史記)에 보면 흉노 동쪽 동호(東胡)에서 흉노에 사신을 보내 아버지가 아꼈던 천리마를 요구한다. 군소리 없이 줘버렸다. 다음에 온 사신은 아내를 요구했다. 이번에도 수락했다. 세 번째 찾아온 사신은 두 나라 사이에 있는 천리가 넘는 땅을 내놓으라고 했다. 묵특선우는 이번에는 참지 않고 곧바로 동호로 쳐들어가 동호를 멸망시켜 버렸다.

몽골제국을 세운 칭기스칸은 아들들에게 땅을 나눠줬는데 주요 유목지를 중심으로 각 후예들의 영역이 분명히 구분됐다. 코릴타 주요 의제 가운데 하나가 새로운 정복지를 어떻게 공적에 따라 분배할 것인가였다. 이동식 가옥에 주요 경제수단이 가축이기 때문에 사실 이동에 편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때나 이동하진 않는다. 가축을 키우기에 좋은 땅은 따로 있는 법이고, 그 땅엔 주인이 없을 수 없다. 초원은 사람이 살지 않아 아무 곳이나 제멋대로 깃발 꽂을 수 있는 황야가 아니다.

바람터의 추억, 깔딱고개의 악몽

산은 갈수록 경사가 급해진다. 급기야 깔딱고개가 나타났다. 워낙 고도가 높아서 그런지 숨이 턱에 닿았다. 가방을 집어던지고 드러눕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머릿속엔 군대에서 악명높았던 바람터 계곡 행군이 떠올랐다. 기진맥진, 오기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언덕을 올랐다. 이번엔 또 별천지가 눈앞에 나타난다. 이건 정말 반칙이다. 세상에 이렇게 예뻐도 되는 것인가. 너른 언덕엔 말떼와 소떼가 풀을 뜯고 그 옆으론 높이 수십미터는 될 듯한 침엽수가 우뚝 솟아 있다. 저 멀리 눈으로 하얗게 덮인 봉우리가 보인다.


언덕에서 산장으로 가는 길은 산책하는 기분이다. 시냇물이 보이자 주저없이 신발을 벗고 발을 집어넣었다. 물이 너무 차가웠지만 피곤이 싹 가셨다. 내친김에 머리와 얼굴에 묻은 흙먼지도 씻어내 본다. 일행들이 하나 둘 산장으로 모여들었다. 늦은 점심을 먹었다. 어제 먹다 남아 챙겨 온 볶음밥이 다시 등장했다. 하지만 양이 원체 많은데다 다른 먹을꺼리도 많으니 좀처럼 줄어들질 않는다. “이러다 내일까지 계속 볶음밥만 먹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점심 뒤엔 자유시간이다. 몇몇은 온천을 즐기고 몇몇은 전날 말을 탔던 추억을 잊지 못해 다시 말을 타본다. 이러저러한 구경꺼리 모두 내버려고 술을 안주삼아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람들도 어느새 자리를 잡았다. 추 대표가 손수 만들었다는 육포는 이번에도 인기만점이다. 처음엔 간단히 한두잔만 한 다음 낮잠을 좀 자고, 그런 다음 말을 타려고 했다. 하지만 세상일 뜻대로 되는 게 없다. 술 한 잔 먹세그려 또 한 잔 먹세그려 하는 동안 해가 지기 시작했다. 그러고도 술자리는 한참을 이어졌다.

기타 연주를 하며 노래로 흥을 돋구던 노 작가는 시상이 떠올랐는지 즉석 자작곡까지 완성했다. 돈의 가치를 재평가하는 노래다. 제 작가는 홍 작가 최작가와 친구 먹기로 한 뒤 2시간째 후속협상중이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와 김 작가는 2분만에 친구먹었다. 감기 증상이 있던 박 작가는 양갈비국물과 사랑에 빠져 감기를 잊어버렸다. 나란히 얼마 전 임기를 마친 조 전 시의원과 김 전 도의원은 지방의원 시절을 떠올리며 서로를 응원했다. 그런 와중에도 산장 한켠에선 고 작가의 은하수 화보촬영회가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밤은 눈치없이 깊어가고 술은 속절없이 바닥을 드러낸다.

때아닌 속보경쟁의 끝은

해발 5600m나 된다는 만년설을 바라보며 양치질을 한다. 온천수로 머리를 감고 얼굴을 씻어 수마를 쫓아낸다. 뜨거운 온천수가 쏟아져 나오는 알틴아라샨 산장 세면대는 큰 양동이와 바가지 하나가 전부다. 나무로 만든 문은 삐그덕 거리며 닫히지도 않고 알칼리성이라 그런지 비눗물은 잘 씻겨지지 않아 미끄럽다. 그래도 뜨끈한 온천수로 씻는 아침은 그 어느 때보다 상쾌하다.

짐을 채기고 7시에 산장 앞에 모인 사람은 나까지 8명. ‘트럭킹’이 아니라 ‘트래킹’으로 산에서 내려가겠다는 의지가 충만한 이들이다. 산 아래 집결지까진 대략 15km다. 눈이 호강하는 풍경을 걸으며 보겠다는 의지를 안고 출발했다. 발걸음은 가볍지만 날씨는 좀 쌀쌀했다. 하지만 좀 걷다보니 쌀쌀한 바람은 산들바람이 되어 나를 앞으로 떠민다.


한시간쯤 걸었다. 길 옆 바위 하나가 눈에 띈다. 넓적해서 앉기에 제격이다. 가방을 내려놓고 일기장을 꺼냈다. 생각나는대로 손길 가는대로 일기장을 채워나갔다. 바위 옆 작은 꽃잎이 보인다. 꺾어서 일기장에 꽂았다. 일행들이 하나씩 하나씩 제 발걸음으로 지나간다. 조용히 아무 말 없이 각자 생각에 잠겨 걷는다. 눈은 산너머 구름에 꽂혀있고 손은 가볍기만 하다.

일기장을 덮고 다시 일어났다. 속도를 내 걸었다. 이참에 운동 한 번 제대로 해보자. 나를 앞질렀던 사람들을 다시 앞질렀다. 저 앞에 김현수가 보인다.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가서 앞질렀다. 어쩌다 보니 둘이 비슷한 속도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걷는 속보경쟁이 벌어졌다. 당초 예상과 달리 쉽게 결론이 나질 않았다. 20분 가량 벌어진 속보경쟁은 내가 길 옆 큰 바위로 빠져나가면서 끝이 났다. 속보경쟁에서 패배한 건 결코 아니다. 그저 화장실이 급했을 뿐.

저 앞에서 등산객 한 무리가 올라오는 게 보인다. 복장이 다 비슷했다.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선글라스를 꼈다.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팔에는 토시를 했다. 전생에 햇빛과 원수를 졌는지 우산까지 쓴 사람도 있다. 새로 맞춘 듯한 배낭과 등산복, 등산화까지. 100% 한국사람이다. 알틴아라샨 2박3일 등산코스가 한국인들에게 인기라더니 과연 그런가 보다. 

한 시간 넘게 더 걸었다. 민가가 나타나고 길은 이제 평탄해진다.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할 즈음 저 앞에 김현수가 보인다. 10년만에 헤어진 형제를 만나는 것처럼 나를 반겨준다. 갈림길이 나오는데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는데다 혹시 길을 잘못 든 건 아닌지 불안해서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도 길 옆 냇가에서 물놀이를 즐긴 뒤 옷을 말리고 있었다. 나도 냇물에 발을 담그고 함께 다리쉼을 했다.

갈림길에서 이정표를 한참 살펴봤다. 왼쪽으로 가야 할 듯 했다. 그 때 고 작가와 김 작가가 나타났다. 고 작가는 갈림길에서 꽤 단호하게 오른쪽으로 가야 한다고 한다. 오른쪽으로 가보니 20m 앞에 우리가 군용차를 탔던 집결지가 있었다. 좀 뻘쭘하긴 했지만 뭐 아무도 못봤을 테니까 그걸로 위안을 삼아본다.  

키르기스스탄 여행기

1. 별 쏟아지는 호수에서 당나귀 탄 꼬마를 만나다
2. 실크로드, 사람이 오가고 머물며 흔적을 남겼다
3. 키르기스 사람과 친해지기, 마술주문 하나로 충분하다
4. 꽃과 분수가 있으니 파라다이스가 멀지 않더라
5. 하늘과 맞닿은 산 오르다 보면
6. 수천년전 키르기스 사람들의 일기장을 엿보다

*전체 여행경로는 여기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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