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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사해/여행기

별 쏟아지는 호수에서 당나귀 탄 꼬마를 만나다

by betulo 2022.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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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기스스탄 여행기(1) 비슈케크에서 송쿨, 300km

인천국제공항에 온 지 하도 오래되어 그런가. 낯설기 그지없다. 휴대전화 로밍 설정 방법도 기억이 잘 안난다. 환전은 어디서 했더라. 7박 9일을 키르기스스탄에서 함께 할 14명이 모두 군기 바짝 들어 약속시간인 7월 17일 아침 8시에 인천공항에 집합했다.


출국수속도 낯설다. 문을 연 식당이나 카페가 거의 없는 것도 어색했다. 공항에서 간단한 샌드위치를 먹으려던 계획이 틀어졌다. 샌드위치를 파는 곳이 어디에도 없다. 배고프다. 이제 기대할 건 기내식밖에 없다. 하지만 비행기는 계속 늦어진다. 12시 40분으로 늦어지더니 12시 30분 무렵엔 1시 40분으로 늦어진다. 결국 아침도 못먹은 채 2시 무렵이 되어서야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그래도 3년만에 먹어보는 기내식이다.

수하물 발송 때부터 뭔가 마음에 안들었다. 일처리가 너무 늦다 못해 느려터졌다. 긴 줄은 줄어들 줄 몰랐다. 한참을 기다리고 있으려니 단체 손님들을 한쪽으로 모아서 처리해 주겠다고 한다. 하지만 개별로 줄 선 사람들보다 일처리가 더 늦어졌다. 출국 수속을 다 하니 거의 두 시간이 걸렸다. 그 때는 몰랐다. 아스타나 항공은 그 후로도 여러 차례 우리 일행을 괴롭혔다. 다만 그 때는 그게 시작이라는 걸 알지 못했을 뿐.

7시간 걸려 알마티(Алматы) 공항에 도착했다. 세 시간 시차 때문에 현지 시간으론 오후 5시 무렵이었다. 비행기 밖으로 나오자마자 숨이 턱 막혔다. 뜨거운 여름 날씨를 느끼며 저 멀리 산줄기를 바라보니 봉우리엔 눈이 하얗게 쌓여 있다. 버스로 환승장으로 이동해서 기다린 뒤 비슈케크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안전띠까지 매고 활주로로 이동한다. 창문 너머 노을이 지는 천산산맥에 눈이 한가득 쌓여있다. 저 산 너머가 키르기스스탄이다. 

아름다운 풍경을 뒤로 하고 이제 출발해야 하는데 어째 이 비행기는 좀처럼 움직이질 않는다. 슬슬 마음이 불안해진다. 알마티에서 비슈케크까지 40분 정도라는데 두 시간 넘게 제 자리다. 내가 앉은 자리는 비상 출입문 바로 뒷자리다. 내 맞은편에 앉아있던 스튜어디스가 갑자기 안전띠를 풀더니 출입문 비상열쇠를 조작한다. 출발을 하지 않는다는 신호가 틀림없다. 아니나 다를까 20분 가량 늦어질 거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자니 예열을 하고 활주로로 천천히 이동한다. 스튜어디스도 안전띠를 묶고 자리에 앉았다. 이젠 정말 출발인가. 웬걸. 불이 켜지고 스튜어디스가 다시 일어나 아까와 똑같은 행동을 하더니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또다시 안내방송이 한참 나왔다. 승객들이 하나둘 일어나 짐을 꺼내든다. 기계 장치 오류 때문에 비행기가 뜰 수가 없단다. 다시 버스를 타고 환승장으로 이동했다.

원래 계획으론 오후 5시 40분에 알마티 공항을 출발해 6시 40분에 비슈케크 공항에 도착해야 했다. 8시 30분쯤이면 호텔 체크인까지 마치고 저녁을 먹어야했다. 실제로는 그 시간에 아스타나항공에서 제공하는 기내식을 환승장 의자에 앉아 먹고 있었다. 새벽 4시쯤 되어서야 비행기가 뜬다는데, 호텔에 객실을 마련해주는 것조차 알아서 재주껏 구하면 비용은 나중에 처리해 주겠다는 식으로 배짱을 튕긴다. 현지 승객들이 폭발해서 직원을 붙잡고 한참 실랑이가 벌어졌다. 그래도 아스타나항공은 요지부동이다.

어차피 말이 통하지 않으니 우리 일행은 항의 대열에 동참하지도 못했다. 그 대신 노 작가 지휘 아래 환승장 한쪽 의자에 가방을 올려놓고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최대한 넓게 자리를 잡아놔야 모여서 잠이라도 편하게 잘 수 있다는 건데, 이게 결국 신의 한 수가 됐다. 환승장에서 한 층 올라가면 면세점이 있었는데 거기서 한 병에 8유로 가량 하는 보드카와 초콜렛 같은 안주꺼리, 스타벅스에선 샌드위치와 커피 같은 걸 한무더기 사왔다. 상황 자체는 엉망이었지만 그 속에서도 우린 최대한 즐거움을 찾으며 조촐한 술자리를 즐겼다. 

한 눈에 봐도 여행 경험이 많고 흥은 더 많아 보이는 인상인 노 작가는 여행용 기타까지 꺼내서 즉석 연주까지 시작했다.  박 작가와 고 작가는 첫인상과는 매우 다르게 의자 한 켠에서 잠을 잔다. 특히 박 작가는 말 그대로 자세 한 번 바꾸지 않고 꾸준하게 잘 잤다. 정작 나는 밝은 불빛과 사람들 움직이는 소리와 말소리, 무엇보다 술을 옆에 두고 잠을 자기엔 너무 아쉬워서 한참을 보드카 옆에서 기웃거렸다. 

새벽 4시 30분에 출발한다더니 그마저도 30분 늦어져서 5시쯤 되어서야 비행기가 출발했다. 어쩌다보니 알마티공항에서 일몰과 일출을 모두 구경하고 말았다. 구글지도로 찾아보니 알마티에서 비슈케크까지 236km 정도다. 자동차로 가면 4시간도 안 걸리는 거리를 12시간 가량 공항에서 죽치고 앉아있었던 셈이다.


푸른 초원 위에 거친 민둥산, 마무리는 눈덮인 봉우리

아침 9시쯤 되어서야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 조식으로 허겁지겁 아침을 떼우고 두시간쯤 눈을 붙인 뒤 대충 씻고 12시에 호텔 로비에 모였다. 자 이제 출발, 아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한국식당에 가서 점심을 든든하게 먹었다. 어떻게 된게 한국에서 먹던 것보다 더 맛있다. 이제 진짜 출발이다. 원래는 부라나탑을 가장 먼저 찾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비행기 연착 떄문에 부라나탑을 마지막 방문지로 바꾸면서 첫 행선지는 송쿨이 됐다. ‘쿨’은 호수를 뜻한다. 송쿨은 키르기스스탄에서 이식쿨에 이어 두 번째로 큰 호수다. 둘레가 29km, 폭이 18km, 깊이 13m라고 한다.


비슈케크에서 송쿨까진 대략 300km 거리다. 호수가 해발 3016m 높이에 있기 때문에 송쿨 가는 길은 오르막길의 연속이다. 게다가 중간부턴 비포장도로다. 운전기사는 능숙하게 비포장 오르막길을 오르는데 우리 일행은 울퉁불퉁한 길에 온 몸을 요동을 친다. 부모님이 러시아 출신이라는 운전기사는 타이어 바로 옆으로 낭떠러지가 내려다 보이는 모퉁이를 꺾을때도 속도를 줄일 생각이 없다.


안전운전에 너무 익숙해져 야성을 잃어버린 한국인 승객들로선 눈만 꿈벅꿈벅하며 가슴을 졸이면서도 시시각각 바뀌는 풍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초원과 밀밭으로 푸르른 대지에 거친 모래로 빚어놓은 듯한 누르스름한 민둥산 줄기를 올려놨다. 거기다 마무리로 하얗게 눈으로 뒤덮인 봉우리를 얹어놓은 풍경은 너무나 비현실적이어서 잠시도 눈을 뗄 수가 없다.


이쯤에서 솔직하게 고백해야겠다. 불과 2개월 전만 해도 키르기스스탄이라고 하면 머리에 딱 떠오르는 건, 없었다. 어떤 이들은 ‘중앙아시아의 스위스’라며 아름다운 산을 찾아 단체산행을 다니는 곳이고 중앙아시아 정치상황에선 다소 특이하게 절차적 민주주의가 자리잡았다는 것 정도가 전부였다. 그랬던 키르기스스탄은 우연히 내 심장을 찔렀다.


한국국제협력단이 국제개발원조 차원에서 벌이는 ‘키르기스스탄 실크로드 문화관광사업’ 일환으로 키르기스스탄 문화관광상품개발 기획홍보 팸투어 사업에 참여할 사람을 모집하는 공고를 봤다. 키르기스스탄 문화관광사업은 키르기스스탄에 문화관광코스 4개와 문화마을 10곳을 개발해 현지 주민의 일자리 창출과 소득증대를 지원하자는 취지였다.


이런 건 고민하면 안된다. 일단 지르고 보는 게 상책이다. 더구나 여행경비까지 지원해 준단다. 무작정 지원했고, 운좋게 선정됐다. 원래는 6월에 가는 일정이었는데 항공권 구하기가 워낙 힘들다보니 7월에 가게 됐다. 7월 17일 출발해 25일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그토록 소중한 7박9일 가운데 하루를 공항에서 날려버렸다. 아스타나 항공, 너를 잊지 않으리라.


키르기스스탄은 옛 소비에트연방공화국, 그러니까 소련이 해체되면서 독립한 중앙아시아 국가 가운데 하나다. 인구는 652만(2020년 기준)명이고 면적은 19만 9990km²이니 남북한 합친 것보다 조금 작다. 수도는 비슈케크(Бишкек)이고 소련 영향으로 러시아와 같은 키릴 문자를 쓴다. 그러다보니 한국인 방문자들은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까막눈 신세가 되기 일쑤다.


독립 이후 20여년 동안 대통령 세 명을 쫓아냈으니 한국보다도 성격이 화끈하고 민주주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틀림없다. 인구구성은 키르기스 73%, 우즈베크 15%, 러시아 6% 등이고 그 밖에 둥간, 위구르, 타지크 등이 있다고 한다. 고려인도 0.3%, 1만 8000여명이 거주한다.


평균 해발고도가 2750m나 되는 산악국가여서 ‘중앙아시아의 스위스’라는 별명이 붙었다. 공식어는 키르기스어이고 러시아어가 공용어다. 지하자원이 미비하고 농업 중심 경제구조인데 최근 정부 차원에서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활용한 관광산업 육성에 적극적이라고 한다. 앞으로 우리 일행이 찾아가는 송쿨(Соң-Көл) 역시 세계적으로 유명한 여행지로 꼽히는 곳 가운데 하나다.


과속을 마다하지 않은 건 이유가 있었다. 송쿨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일몰과 일출, 거기다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이라고 한다. 안전 생각하며 속도 줄였다간 해 지기 전에 도착할 수가 없다. 가로등도 없는 비포장 계곡길을 달리는 것보단 해지기 전에 목적지에 도착하는 게 훨씬 더 안전하다. 그렇게 우리는 어두워지기 전에 송쿨에 도착했다.

 


전통 이동가옥인 유르타에 짐을 대충 부려놓고 나니 슬슬 노을이 지기 시작한다. 일행을 이끄는 추상훈 대표와 몇몇은 손에 잡히는 대로 보드카와 포도주로 목을 조금씩 축이며 5시간 넘게 걸린 강행군을 무사히 마친 걸 자축한다. 일행 중 유일한 대학생인 김현수는 호수로 달려가더니 수영을 하는 기염을 토한다. (하지만 물이 생각보다 너무 차가워 금방 포기했다고 전해진다.)


송쿨 주변은 지평선이 보일 정도로 너른 초원이다. 여름 유목지로 사랑받은 이 곳은 과거 키르기스 부족장들이 중요 안건을 의논하는 회합을 갖던 곳이라고 한다. 흉노 이래 유목제국의 원로원 역할을 했던 ‘코릴타(쿠릴타이)’가 이 곳에서도 열렸던 셈이다. 코릴타를 주제로 학부 졸업논문을 썼던 게 생각났다. 코릴타는 기본적으로 합의제 방식이다.

개최 기간은, 사실상 무제한이다. 합의가 될 때까지 말젖술(쿠미스)을 마시고 또 마신다. 술 먹고 속내를 터놓고 대화하고 때론 싸우며 타협한다. 물론, 다음날 기억이 안 날수도 있다. 그럼 다시 술자리다. 몽골제국이 세계를 뒤흔들었던 사건들이란 따지고 보면 술이 지겨워서인지 술먹다 죽을 것 같아서인지 그렇게 코릴타에서 나온 결정이었다. 역시, 언제나 술이 문제다.(코릴타에 대해선 여기를 참고하시길)


우리를 맞아준 게스트’유르타’ 식구들은 양고기를 굽고 차를 끓이느라 바쁘다. 딱 한 사람, 여유를 부리다 못해 신선놀음에 정신이 없는 건 그 집 막내 손주다. 채 다섯살도 안 된 것 같은 이 꼬마는 무슨 수로 올라갔는지 자기 키보다 더 큰 당나귀에 올라 앉아 우리 일행 주위에 나타났다. 저마다 사진을 함께 찍으려고 달려드니 아이돌스타 부럽지 않다.


이 꼬마스타는 팬서비스가 확실하다. 채찍으로 당나귀 등을 찰짝 때리며 멋지게 달리는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 그런데, 당나귀가 말을 안 듣는다. 고집 세고 성깔 더럽기로 유명하다는 당나귀는 꼬마스타가 엉덩이를 때리거나 말거나 움직일 줄 모른다. 한참을 실랑이를 벌이고서야 느릿느릿 가는데 아무리봐도 꼬마스타 때문이 아니라 그냥 자기 마음가는대로 걸어 가는 것 같다. 체면 좀 구겼다고 분량 욕심을 포기할 수는 없는 꼬마스타는 그 뒤로도 일행 근처를 돌아다니며 숨막히는 (당나귀) 뒤태를 자랑한다.

 



꼬마스타와 말 안듣는 당나귀

왜 송쿨에 가면 밤하늘을 꼭 봐야 한다고 했는지 알 것 같다. 말 그대로 별이 하늘에서 쏟아진다. 제대로 된 은하수를 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말 안듣는 당나귀를 탄 꼬마가 할머니 손에 이끌려 자러 들어가고 새롭게 인기를 독차지한 건 고선희 작가다. 비슈케크를 출발할 때부터 카메라로 일행들 사진을 찍어주던 고 작가는 붉게 물든 저녁놀을 배경으로 한 1부에 이어 별 쏟아지는 하늘을 배경으로 한 2부까지 일행들 독사진을 하나 하나 정성껏 찍어주느라 여념이 없다. 손을 들어보이거나 하트 모양을 만드는 각종 설정도 빠질 수 없다.


저녁을 먹었던 유르타 안에선 노민호 작가가 주도하는 작은음악회가 한창이다. 기타를 한국에서 가져올 때부터 예사롭지 않았던 노 작가는 가방에서 블루투스 스피커까지 꺼내서 노래방 분위기까지 연출했다. 제준근 작가 스마트폰에선 미리 저장해온 노래가 흘러나온다.


여행의 풍미를 더하는 건 카메라 기능 말고는 쓸 데가 없어진 스마트폰이다. 와이파이는 당연히 안 되고 전화통화조차 먹통이니 온전히 기타 소리와 은하수에 집중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거기다 유리병 속에 맑게 출렁이는 보드카가 목을 뜨겁게 한다. 유일한 훼방꾼은 고산병이다. 일행 가운데 적잖은 이들이 고산병 증세로 두통약이나 이뇨제를 먹어야 했다. 물론 대부분 가벼운 증세였지만 일부는 꽤 혼쭐이 났다.


키르기스스탄에서 보낸 첫날은 그렇게 밤늦도록 시끌벅적했다. 나중에 듣고 보니 달이 뜬 뒤 고 작가가 주도하는 3부 촬영회가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해뜨는 새벽에 열린 4부까지. 나중에 고 작가가 찍은 송쿨 사진을 보니 그런 생각이 살짝 들었다. 나도 찍을걸…

키르기스스탄 여행기

1. 별 쏟아지는 호수에서 당나귀 탄 꼬마를 만나다
2. 실크로드, 사람이 오가고 머물며 흔적을 남겼다
3. 키르기스 사람과 친해지기, 마술주문 하나로 충분하다
4. 꽃과 분수가 있으니 파라다이스가 멀지 않더라
5. 하늘과 맞닿은 산 오르다 보면
6. 수천년전 키르기스 사람들의 일기장을 엿보다


*전체 여행경로는 여기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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