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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중요한 건 첨단기술이 아니다

인권을 생각한다

by betulo 2021. 2. 11.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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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극작가 브레히트는 1930년 무렵 당시로선 첨단 신기술이었던 ‘이것’이 혁명의 무기가 될 수 있다는데 주목했다고 한다. ‘이것’을 통해 혁명의 대의를 무제한으로 전파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브레히트의 ‘이것’은, 라디오였다. 1933년 브레히트는 나치 라디오가 안 들리는 곳을 찾아 망명을 해야 했다. 라디오는 나치 선전방송으로서 맹활약했다. 


 1990년대 초 이현세 작가가 그린 공상과학만화를 봤던 기억이 난다. 암울한 잿빛 미래에서 전복을 꿈꾸는 이들이 모이는 해방구는, 인터넷이었다. 만화속 인터넷 가상 공간에서 권력 눈치 보지 않고 아바타로 자신을 표현하며 토론하고 정보를 공유한다. 정보조작이 판치는 현실과 달리 인터넷 속에선 진실을 알리고 공유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2021년 현재 인터넷이야말로 저항과 해방의 공간이라고 한다면 공감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2011년 언론 관련 학자들이 모인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석한 적이 있다. 토론회는 열기가 대단했다. 참석자들은 하나같이 트위터 같은 소셜미디어와 UCC 등이 위력을 발휘하면서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간다며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나만 빼고. 나는 시큰둥하게 반박했다. 소셜미디어의 영향력은 현실 영향력을 대체하는게 아니라 반영하거나 보완하는 측면이 더 크다. 소셜미디어를 너무 과장하면 안된다고. 물론 공감해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나서 몇 년 뒤 우리는 소셜미디어를 활용한 대규모 선거운동을 목격하고 충격에 빠졌. 수행주체가 국가정보원 정규직들일 거라곤 전혀 예상을 못했다. 

 


 기술은 중요하다. 새로운 기술은 때로 전쟁의 규칙을 바꾸고 의사소통의 문법을 바꿔버린다. 하지만 그렇다고 화려한 기술에 눈이 멀면 안된다. 기술 역시 현실을 구성하는 여러 공식·비공식 제도라는 제약 속에 존재한다. 임진왜란 당시만 해도 조총으로 무장된 대규모 부대를 운용하던 일본이 분열을 끝내고 정치적 안정을 되찾자마자 조총을 빠르게 잊어버렸던 사실을 잊으면 안된다. 도쿠가와 막부는 일본을 통일할 때만 해도 조총을 활용한 집중사격 전술을 구사했지만, 도쿠가와 막부를 무너뜨린 반란세력은 칼과 활로만 싸웠다. 손가락 당길 힘만 있으면 무사나 농민이나 손쉽게 죽고 죽일 수 있는 조총이란 신분제질서에 기반한 막부체제에선 필요 없는 물건이었던 셈이다. 


 신박한 첨단기술, 최종병기만 있으면 한방에 모든 걸 해결할 것같은 착각은 동서고금 역사에서 너무나 흔하다. 코로나19 백신이 딱 그렇다. 요즘 백신접종만 이뤄지면 코로나19는 손쉽게 종식되지 않겠느냐는 희망섞인 전망이 부쩍 자주 들린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백신접종 자체는 매우 중요하고, 나 역시 기대를 하고는 있지만 좀 더 냉정하게 볼 필요가 있을 듯 하다. 국민 대다수에게 백신접종을 하려면 시간이 한참 걸릴 수밖에 없다. 백신접종 이후에도 한동안 마스크 착용 등 방역수칙을 지켜야 한다. 앞으로 또 어떤 변이 바이러스가 나타날지는 짐작하기도 힘들다. 


 백신은 그나마 다행이다. 지난해 7월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섰던 ‘한국판 뉴딜’은 신통방통한 첨단과학으로 무장한 ‘스마트’한 첨단기술만 있으면 신종감염병 뿐 아니라 국민건강까지도 다 해결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스마트병원이니 원격의료, 인공지능 진단, 디지털 돌봄 같은 공상과학영화에나 나올 것 같은 그럴듯하지만 새롭지도 않고, ‘국가와 국민의 새로운 사회계약’과도 거리가 멀었다. ‘병원마다 감염내과 전문의를 확충하겠다’가 아니라 ‘감염내과 전문의가 있는 병원이 전문의가 없는 병원과 디지털로 협진하겠다’는 대목에선 솔직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정부가 기술만능주의에 빠져 있는 사이에 가장 중요하고도 시급한 공공병상 확보와 의료인력 확충, 재난 상황에 맞는 사회적 연대 확보방안은 뒷전으로 밀려나 버렸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기획재정부는 예나 지금이나 불난 집 앞에 두고 수도요금 걱정하느라 바쁘고 보건복지부는 ‘우린 하고 싶은데 기재부가 반대한다’며 기재부 핑계대느라 바쁜 듯 하다. 그래서 더 씁쓸하다. 


 생각해보면 정말 두려운 것은 겨울철 3차 대유행 자체가 아니다. 그로 인한 병상부족과 의료붕괴, 그리고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위해 필요한 경제적 정신적 자산에 가해지는 타격이었다. 환자를 치료할 의료진이 부족하거나 과로에 시달리고, 환자를 누일 병실이 부족한 상황에서 ‘이루다’ 뺨치게 똑똑한 인공지능이 코로나19 확진자를 위한 최선의 병원을 연결해주는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상병수당이 없어 아파도 밥 굶을 걱정에 쉴 수 없다면 최첨단 웨어러블 스마트 기기가 편의점에서 파는 삼각김밥보다 뭐가 더 낫다는 건지 나는 모르겠다. 


 ‘묘수 세 번이면 진다’는 바둑 격언이 있다. 묘수 한 방이면 코로나19도 이겨낼 수 있다는 망상에 빠져 있는 사이 현실에선 병상과 의료인력이 모자라 환자가 집에서 대기하다 사망하고, 공부를 제대로 못하고 실업자가 되고 폭설 속에서도 배달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그 모든 사태가 발생했던 교훈을 제발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초반에만 강조하던 걸 다시 떠올려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사람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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