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방역’이 갈림길에 섰다. 빠른 추적과 빠른 검사로 확진자 규모를 억제하는데는 성과는 거뒀지만,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이름으로 국민들에게 헌신을 요구하는 동안 정작 정부는 확진자를 치료할 수 있는 병상확보를 등한시했다는 것이 3차 대유행으로 여실히 드러났다. 전체 병상의 9.2%에 불과한 공공병상에게만 의존하는 코로나19 대응체계로는 3차 대유행을 감당할 수 없다는 지적과 함께 국내 전체 의료기관 병상의 90.8%를 보유한 민간병원에서 중환자용 병상을 동원하도록 정부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지적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민간 상급종합병원에게 결단을 촉구하는 상대적으로 온건한 주장부터 정부가 민간병원을 징발해야 한다는 강경론까지 편차는 있지만 공통분모는 코로나19 비상시국에 걸맞는 비상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감염병예방법 49조에 따르면 정부와 지자체가 감염병 유행기간 중 의료인·의료업자 및 그 밖에 필요한 의료관계요원을 동원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공공병원은 지방의료원, 보훈병원, 산재병원 등으로 대부분 규모가 작고 중환자 치료 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지금까진 그나마 기존 공공병상 위주로 버텼지만 3차 대유행이 현실화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18일 0시 기준 코로나19 신규확진자는 1062명이다. 코로나19 확진자 증가는 자연스레 위중증환자 증가로 이어진다. 이날 0시 기준 위중증 환자는 전날(242명)보다 4명 늘어난 246명이었다. 지금 추세가 계속되면 동원가능한 의료체계에 한계에 도달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진다. 아니, 어쩌면 이미 의료체계는 과부하가 걸려 있다고 하는게 사실에 더 부합하지 않을까 싶다.
위중증 환자가 늘어나면서 이들을 치료할 수 있는 병상은 하루가 다르게 고갈되고 있다. 18일 중앙사고수습본부는 전날 기준으로 코로나19 위중증환자가 당장 입원할 수 있는 병상은 정부가 확보한 558개 가운데 45개 뿐이라고 밝혔다. 위중증 환자를 위한 장비와 인력을 모두 갖추고 중수본 지정을 받은 코로나19 환자 전용인 '전국 중증환자 전담 치료병상'은 37개, 코로나19 중환자가 아닌 다른 중환자도 입원할 수 있는 '전국 중증환자 치료병상'은 8개, 코로나19 중환자는 아니지만 악화될 수 있거나 위중증환자에서 호전된 환자를 위한 '전국 준증증환자 치료병상'은 18개 뿐이다. 확진자의 70% 이상이 쏠려있는 수도권은 가용 가능한 중환자 병상이 서울 1개, 인천 1개, 경기 2개 뿐이다. 여타 지역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충북, 충남, 전북 등 3개 시·도도 코로나19 중증환자 치료 전담 치료 병상은 물론, 일반 중환자 병상까지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전체 병상 중 9.2%에 불과한 공공병상이 코로나19 치료를 거의 다 감당하는 것은 지속가능하지도 않고 지금같은 상황에선 수요공급 불균형을 심화시킬 수밖에 없다. 지난 2~3월 대구·경북지역 1차 유행 당시에도 대구 시내 대형·종합병원 병상이 일반 병동은 4분의 3, 중환자실은 절반이 비어있었음에도 병상 부족 문제에 시달렸다.
상황이 급박해지자 정부는 특전사 간부 379명을 역학조사 지원업무에 투입한 것을 비롯해 군의관과 간호인력 74명을 수도권 임시선별검사소에 파견하고, 16일에는 지역부대 장병 등으로 구성된 행정인력 486명을 추가로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중환자 병상 287개와 경증·무증상 환자를 위한 생활치료센터 병상 4905개를 추가로 마련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3차 대유행을 막을 수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병상 확보에 비상이 걸렸지만 정부는 민간병상을 적극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 전략기획반장 손영래는 18일 백브리핑에서 민간병상을 중증환자 치료에 활용하는 문제에 대한 질문을 받자 “현재 (민간병원 강제)동원 같은 다소 극단적인 계획을 검토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어제 기준 생활치료센터 가동률은 53.5%이고, 2987명을 받을 수 있는 상태다. 감염병 전담병원의 경우도 1448명, 이 가운데 수도권에서 542명을 더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공공병상빼서 공공병상 채우는 방식으론 풍선효과만
공공병상 중심으로 코로나19 환자를 수용하는 건 당장 동원가능하고 급박한 상황이란 걸 고려하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공공병상만으로 코로나19에 대응하게 되면 공공병상에 있던 기존 환자들이 갈 곳이 없어지는 문제도 발생한다.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당시에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공공병상을 메르스 전담병원으로 사용하면서 2~3개월 사이에 수백명이나 되는 환자를 내보내는 상황이 벌어졌다.
국립중앙의료원장 정기현은 최근 경향신문 인터뷰(12월 8일자)에서 당시 상황을 거론하며 “지금의 전국적 대유행은 민간 상급종합병원의 참여 없이는 감당이 불가능하다. 게다가 공공병원이 코로나19 치료만 전담하면, 취약계층이나 차상위계층이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안으로 “중수본이 민간 상급종합병원 동원령을 선포해야 한다고 본다”면서 “법적으로 강제할 수는 없지만 중환자실을 더 열고 같이 감당하도록 방향 제시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 김윤 역시 지난 9일 서울 더케이호텔에서 열린 2020 글로벌 코리아 박람회의 ‘K-방역과 보건의료’ 포럼에서 “지금까지도 병상을 체계적으로 국가가 동원하는 시스템이 없다”며 “코로나19 환자 치료를 기피하는 상급병원은 정부 차원에서 지정 취소 같은 강수라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나라가 감염병 폭발단계가 아님에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열심히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국내에 코로나19 치료 병상이 충분치 않기 때문”이라면서 “정부가 방역의 책임을 국민에게만 전가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정부 미적대는 사이 상황은 더 급박해져
정부가 미적대는 사이 상황은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경기도 코로나19 긴급대책단 공동단장 임승관은 11일 온라인 브리핑에서 “도내 (코로나19) 치료병상 부족으로 오늘 오전 코로나19 확진자 6명을 전남 목포시의원으로 전원 조치했다”고 밝혔다. 임 단장은 “원거리 이동이 가능하거나 기존 질병 경력 때문에 병상 입원이 필요한 확진자들을 중심으로 6명을 선별해 오늘 경기도소방본부의 도움으로 목포의료원으로 이송했다”고 설명했다.
급기야 17일 서울에선 병상이 없어 자택에서 대기하던 코로나19 환자가 확진 판정 사흘 만에 제대로 된 치료도 받아 보지 못한 채 사망하는 비극이 벌어졌다. 17일 서울시에 따르면 평소 당뇨 등 기저질환을 앓고 있던 동대문구 거주 60대인 사망자는 지난 12일 확진 판정을 받은 뒤 병상 배정을 기다리다 15일 사망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12일 수도권 공동대응 상황실로 확진 상황이 접수된 후 즉시 전화를 통한 의료진 문진을 실시했고 당시 목만 조금 간지러운 정도로 발열 등의 증상이 없는 무증상 상황이었다”면서 “병상 배정을 대기하다 사망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서울시는 “12월 초부터 확진자 폭증에 따른 행정·의료 시스템의 과부하로 현장대응반에서 병상 배정에 어려움이 있었다”면서 “있어서는 안 될 안타까운 일이 발생한 데 대해 무거운 책임을 느끼며,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병상 배정 시스템 등 공공 의료체계를 점검·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18일 정부 발표에 따르면 경기도 부천 요양병원에서 지난 12일 확진된 80대 환자가 16일 숨졌다. 이 환자는 나흘 동안 병상을 배정받지 못해 대기 중이었다. 이 요양병원에선 70대 남성 2명도 지난 13일∼14일 병상을 배정받지 못한 채 코호트 격리 중인 상태에서 건강이 악화돼 사망한 것으로 이날 뒤늦게 확인됐다. 경기도는 병상을 배정받지 못한 병원 대기자가 251명이나 된다.
#결국 정부가 나서야
보다못한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과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병상동원체계 재수립과 민간병원의 사회적 책임을 촉구하고 나섰다. 특히 이들은 ‘감염병 유행기간에 의료인·의료업자 및 그 밖에 필요한 의료관계요원을 동원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고 규정한 감염병예방법 49조를 근거로 “정부는 민간병원을 동원해 코로나19 환자 치료를 위한 병상과 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긴급조치를 당장 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14일 서울 참여연대에서 열린 민간병원 사회적 책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 참석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소속 회원들이 발언을 하고 있다. 2020.12.14 박지환기자 popocar@seoul.co.kr
기자회견에서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 우석균은 “대구·경북에서 확진자가 급증했던 당시 초기엔 사망자가 굉장히 많았다. 중증환자 70% 가량이 인공호흡기도 껴보지 못하고 숨졌다. 경북대병원이 75병상, 대구카톨릭대와 영남대가 100병상씩 내놓고 나서야 해결됐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역량을 갖춘 민간병원을 활용하지 않고 컨테이너 설치를 대안으로 준비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현재 서울의료원에선 코로나19 중환자를 치료할 컨테이너형 임시 병상 48개를 설치중이다.
이와 관련, 익명을 요구한 상급종합병원 소속 의사도 전화통화에서 “대구의 교훈을 수도권 민간병원들이 선제적으로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구동산병원 관계자는 “동산의료원이 이전하고 남은 부지를 이용해 전용병원으로 전환하기로 했고, 하루 만에 남아 있는 환자 135명을 퇴원·전원조치해 코호트 병원으로 운영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현재 민간병원 동원 문제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는 건 경기도다. 도지사 이재명이 경기대 도서관을 생활치료센터로 동원하기로 협조를 얻어낸 데 이어 대학병원 병상도 긴급 동원을 준비하기 위해 병원측과 협의를 진행중이다. 이달 안으로 공공병원, 민간병원 등과 협의해 전담 치료병상 179개도 추가 확보할 방침이다. 생활치료센터도 10곳(4402명 수용)으로 늘린다. 민간 병원인 평택 박애병원이 전국에서 처음으로 거점 전담병원을 자청하고 병상을 제공하기로 했다. 박애병원은 시설 개선 공사를 거쳐 코로나19 확진자 중에 신장 투석 환자를 특화해 70명을 치료할 예정이다.
김윤은 전화통화에서 “전국에 상급종합병원 중환자병상이 약 6000병상이다. 그 중 응급이 아닌 비응급환자가 50%쯤 된다. 중환자실을 쓰는 비응급환자의 10%만 줄이면 300병상을 확보할 수 있다. 기존에 확보한 병상에 300병상 정도만 확보해도 하루 확진자 1000명 정도는 충분히 대응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한림대의료원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 이재갑 역시 “지금은 코로나19 장기전인데 공공병원에게만 과도하게 부담이 몰려 있다. 민간병원 동원은 불가피하다”면서 “대형민간병원이 자발적으로 병상과 인력을 내놓도록 정부가 설득하고 적절한 보상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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