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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생각/재정분권 비판

[재정분권을 다시 생각한다(8)] 중앙-지방 경기규칙부터 바꿔야

by betulo 2019.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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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재정분권의 필요성을 강조할때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대목이 ‘중앙정부의 과도한 간섭과 통제’다. 지자체 차원에서 뭔가 혁신적인 실험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적다는 것이다. 거칠게 표현하면 ‘중앙정부의 갑질’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해묵은 숙제가 국고보조사업 개혁이다. 

 지자체 등이 하는 사업에 국가가 보조를 해주는 제도를 가리키는 국고보조사업은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상호 일정액씩 재원을 분담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는게 보통이다. 문제는 보조율 자체가 지역 실정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채 일방적으로 정해지면서 발생한다.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자체와 갈등을 일으켰던 영유아 누리과정, 이른바 무상보육이 대표적이다. 거기다 의견수렴이 부실하고 지자체 사정을 봐주지 않고 발표하는 시기 문제도 크게 작용한다. 

 한 지자체 관계자 A씨는 “정부에서 의견수렴한다며 공문이 오긴 한다. 결론 정해놓고, ‘이러이러한 사업을 하기로 했는데 며칠 안으로 의견을 달라’는 식이다”면서 “결국 의견만 물을 뿐 수렴은 없다”고 꼬집었다. 다른 지자체 관게자 B씨는 “예산 편성 다 끝났는데 느닷없이 발표해버리고, 그래놓고 우리한테는 시키는대로 따라오라는 식이다”면서 “추가경정예산안(추경)을 편성하라고 하거나 아예 예산을 전용을 하라는 얘길 들은 적도 있다”고 증언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정부가 습관적으로 국고보조사업 방식을 활용한다고 지적한다. 그 배경에는 ‘지자체를 통제해야 한다’는 경향이 있다. 그 속에는 ‘지자체는 그냥 믿고 맡길 수 없다’는 불신이 자리잡고 있다. 중앙과 지방 재정관계를 특징짓는 ‘가부장제’가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사례인 셈이다. 이런 성격은 정부의 국고보조사업을 규정한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과 서울시 차원의 보조사업인 시비보조사업 관련 사항을 규정한 ‘보조금 관리 조례’를 비교해보면 차이가 잘 드러난다. 

 의견수렴 규정부터 극과 극이다. 보조금법은 광역지자체 단체장이 “의견을 해당 중앙관서의 장 및 기획재정부장관에게 제시할 수 있다(제11조 1항)”고 했다. 그리고 기재부 장관은 이 가운데 타당하다고 판단하는 사항을 “예산에 반영할 수 있다(2항)”고 했다. 보조금법 전체를 통틀어 지자체가 가진 유일한 권한은 의견제시 뿐이다. 이에 비해 서울시 조례는 “시장은 자치구의 부담을 수반하는 지방보조사업을 신설할 때에는 자치구청장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제6조)”고 해서 의무의 주체 자체를 다르게 설정했다.

중앙정부 국고보조사업은 보조금법 시행령에 기준보조율이 정해진 사업은 121개이지만 실제 국고보조사업은 정부 각 부처에 걸쳐 1000개 가까이 된다. 대다수 국고보조사업이 개별법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으로만 명시된 채 각 부처별로 신설하고 보조율을 정한다. 이에 비해 서울시는 자치구와 협의가 잘 이뤄지고, 보조율 100%로 시작한 뒤 협의를 거쳐 보조율을 조정하는 사업방식을 유지한다는 점도 긍정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중앙정부 국고보조사업은 보조금법 시행령에 기준보조율이 정해진 사업은 121개이지만 실제 국고보조사업은 정부 각 부처에 걸쳐 1000개 가까이 된다. 대다수 국고보조사업이 개별법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으로만 명시된 채 각 부처별로 신설하고 보조율을 정한다. 정부 차원에선 거창한 발표를 한 뒤 사업집행과 결과 등 책임져야 할 부분은 지자체에 떠넘겨버리는 구조다. 국고보조사업이 ‘책임의 외주화’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는 셈이다. 

 기재부 보조금관리위원회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지방재정학자 C교수는 “정부가 사업을 온전히 책임지려면 100만큼 돈이 들어가는데 국고보조사업으로 하면 70이나 80만 쓰면 된다”면서 “정부 차원에선 일종의 비용절감이고, 이는 곧 정부정책에 가격부담이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꼬집었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장은 “중요 정책을 일일이 국고보조사업방식으로 하는 건 지자체에게 중앙정부와 국회에 로비를 하라고 유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김상철 서울시민재정네트워크 기획위원 역시 “현행 국고보조사업 방식이 지방재정을 중앙정부에 종속시키는 수단이 되고 있다”면서 “반대로 일부 지자체에선 ‘국고보조사업 하느라 돈이 없어 복지에 쓸 돈이 없다’는 식으로 손쉬운 알리바이가 돼 버렸다”고 지적했다. 

 결국 국고보조사업 개선이 재정분권의 핵심 가운데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는 곧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한 복지는 국가가, 주민 밀착형 사회서비스는 지자체가 하도록 정부와 지자체의 역할을 재구성하자는 의견으로 이어진다.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복지사업은 전액 국가가 책임지는 구조로 간다고 하면 기초연금, 기초생활보장, 아동수당 등이 가장 먼저 거론된다. 사실 이는 중앙·지방 역할분담이라는 효과는 큰 데 비해 비용부담은 생각보다 작다. 복지사업은 대부분 비수도권은 보조율이 80~90%라 지자체 부담은 실제 높지 않기 때문이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연구위원은 “기초연금과 아동수당, 기초생활보장 등 가장 규모가 큰 중앙정부의 현금성 복지 총액이 약 46조 8000원인데 이 가운데 국비부담이 36조 6000억원이다. 광역 지자체에서 부담하는게 7조 4000억원, 기초 지자체에서 부담하는게 2조 8000억원 가량”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전체 지자체별 지출액 대비 비중을 보면 광역은 5%, 기초는 2.2%”라고 밝혔다. 이는 복지사업을 국고보조사업에서 전액 지원사업으로 전환할 경우 재정절감이 지자체 전체로는 크지 않겠지만 복지예산 확대에 따른 부담이 가장 큰 특광역시 자치구에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빈곤한 철학, 사라진 토론

 문재인 대통령이 밝힌 “연방제 수준의 분권국가”에서 연방제란 어떤 연방제일까. 어떤 이들은 독일을 떠올리고 어떤 이들은 미국을 떠올렸다. 재정분권을 주장하는 이들 중에는 독일식 연방제를 생각하는 이들과 미국식 연방제를 생각하는 이들, 심지어 스위스식 연방제를 생각하는 이들이 뒤섞여 있다. 이 나라들의 정치체제가 천차만별이라는 건 큰 논쟁도 안된다.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부 교수는 재정분권 주장을 처음 접했을때 느꼈던 당혹스러움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도시계획을 전공한 그가 보기에 재정분권은 인구감소와 연결시켜 볼때 우려스러운 점이 여럿 있었다. 지역간 격차 문제 역시 단순히 수도권과 비수도권 구도로만 봐서는 안된다고 느꼈다. 하지만 재정분권론자들 대부분이 그 문제를 중시하지 않았다. 재정분권의 필요성을 먼저 따져보는 단계는 건너 뛴 채 재정분권의 방법만 토론하는 풍토 때문이었다. 

 문재인 정부 재정분권 정책은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이고 대통령 소속 자치분권위원회를 만들고 범정부 로드맵을 만드는 등 나름 의욕적인 행보를 보여왔다. 하지만 그 속에서 범정부 재정분권 TF가 내놓은 방안은 “만신창이가 된 채” 발표됐다. 다양한 재정분권 정책 가운데 가장 속도를 내는 건 결국 지방소비세 등을 인상함으로써 국세 대비 지방세 비중을 높인다는 것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이마저도, 국세 대비 지방세 비중을 높이는게 과연 바람직한지 제대로 토론이 된 적은 없다. 그나마 지방재정 확대를 빌미삼아 지방사무이양이라는 ‘밀어내기’가 기다리고 있다. 

 재정분권은 “집권과 분권”의 대립구조를 설정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논리상 지방의 자율성을 키우는 상향식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실제 재정분권 정책은 매우 하향식 구조, 정부의 힘에 기대서 진행되고 있다. 전국시도지사협의회 등은 재정분권 의제를 제기할때까지만 주도적이었을 뿐이다. 민간전문가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듯 했던 재정분권 TF마저 결국 중앙정부의 관료들 벽을 넘지 못했다. 지방재정부담심의위원회처럼 지자체의 의견수렴을 제도화하기 위한 방안은 안 보인다. 동시에, 지자체의 자율성 얘기는 많지만 책임성 얘기는 지자체에서도 별다른 얘기가 없다. 

 지방재정과 지방교육재정을 통합하는 문제도 시급히 고려해야 하지만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가 된 지 오래다. 학령인구는 감소추세인데도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계속 증가추세다. 학령인구 1인당 교육재정 최종예산은 2010년 628만원에서 2018년 1294만원으로 증가했다. 학령인구 1인당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역시 2010년 442만원에서 2018년 922만원으로 늘어났다. 
 문재인 정부의 재정분권 정책은 어긋난 진단에 바탕을 두고 빗나간 처방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 원인을 따져보면 결국 빈곤한 철학과 사라진 토론이라는, 한국 정부 정책의 고질적이고도 낯익은 모습을 만나게 된다.

 

“민주화와 지방분권은 다른 의제… 강한 정부·지방 공존해야”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지방 재정권한 역량 제고 선행돼야
상생 발전 위한 협력모델 설계 시급”

신진욱(48)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다양한 개혁 의제가 분권으로 환원되는 건 문제가 있다”면서 “국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국가의 역할을 재정립하기 위한 철학적 성찰과 노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신 교수는 민주주의, 국가역량, 복지국가 등을 연구하는 학자의 관점에서 재정분권을 분석한 ‘민주주의와 복지국가의 관점에서 본 분권지상주의의 문제와 과제’(2018) 논문을 집필한 바 있다.

-논문에서 ‘개혁’이 ‘지방분권국가’로 환원되는 문제를 지적했다.

“정부 여당이 자꾸 지방분권을 민주화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 뿌리에는 강한 국가를 불신하는 경향이 있다. 권위주의 경험이 워낙 강력하다 보니 국가를 약화시키고 지방을 강화하는 걸 개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 역사를 보면 국가와 시민사회, 중앙과 지방은 상호보완하며 발전했다. 국가의 역량 자체가 지역에 손해는 아니다. 북유럽 복지국가를 보라. 세계에서 가장 강한 국가와 강한 지방이 공존하고 있다. 오히려 분권이라는 언어 자체에 내재한 신자유주의 기획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문재인 정부 재정분권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는데.

“원론적인 차원에서 재정분권에 동의한다. 한국은 경제규모가 비슷한 외국과 비교할 때 지방의 재정권한이 현저하게 약하다. 지방자치 발전을 위해 지방의 재정권한을 확대하는 건 필요하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어디에 초점을 맞춰 지방의 재정 권한과 역량을 지역별로 고르게 키울 것인가. 그건 토론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껏 제대로 된 토론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중앙이 가진 걸 지방에 나눠주자는 것인지, 지방의 재정역량을 강화해서 의존도를 낮추자는 것인지, 재정분권의 목표와 수단이 명확하지 않고 혼란스럽다.”

-지방자치와 지방분권, 균형발전이 뒤섞인 채 논의가 진행 중이다.

“지방자치와 지방분권, 균형발전은 서로 다른 범주다. 정부는 그걸 분권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버렸다. ‘인식의 혼란’이 정책 목표와 수단을 놓치게 한다. 지방자치에선 지방권력을 제어하는 ‘지방정치의 민주화’가 핵심인데 그건 빼놓고 지자체에 권한만 늘려주면 반쪽 자치밖에 안 된다. 균형발전은 철저하게 국가적 의제다. 지방에 권한을 더 나눠준다고 균형발전이 되는 게 아니다. 국가의 역할, 지자체 간 연대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지방에 더 많은 재정과 권한만 주면 지방의 역량이 커지고 균형발전이 될 거라는 발상은 너무 단순하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중앙지방 재정관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복지국가의 전국화, 민주주의 강화에 이바지하는 재정분권이어야 한다. 지방에서 풀뿌리 복지 역량과 정치 역량이 성장할 수 있도록 토대를 구축하고 중앙과 지방, 지방과 지방의 협력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 중앙과 지방이 상생 발전하려면 중앙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단순히 지방에 재정과 권한을 나눠주고 제 할 일 다했다는 식은 곤란하다. 결국 핵심은 국가의 역할이다. 정부와 국회가 중심을 잡고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2019-10-08 19면

http://go.seoul.co.kr/news/newsView.php?id=20191008019003&wlog_sub=svt_100

 

지역실정 고려 안 한 국고보조사업… 정부·지자체 역할 재구성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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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eoul.co.kr

https://go.seoul.co.kr/news/newsView.php?id=20191008019002

 

文정부 분권정책, 토론 사라지고 빗나간 처방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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