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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뒷얘기

정부 메르스 대응을 축구팀에 비유하면

by betulo 2015.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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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팀에서 감독이 차지하는 역할은 어느 정도일까?

감독만 잘 바꾸면 꼴등 하던 팀도 명문구단이 될 수 있을까? 혹시 감독 교체 효과라는 건 사실 감독 교체가 주는 긴장감 때문에 선수들이 더 열심히 뛰었기 때문이지 감독의 역량 자체는 둘째 문제인 건 아닐까?

축구팀에서 감독이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일까?

(출처: Yatmandu, CC BY)

정부의 메르스 대응을 축구팀에 비유하면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12년 전에는 사스 대응 모범국으로 국제사회 칭찬을 받았던 국가가 12년 만에 메르스로 국제사회 ‘민폐국’이 된 원인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지난해 브라질 월드컵 예선탈락 뒤 홍명보 감독에 대한 비판 여론이 빗발쳤다. 결국, 홍명보는 불명예스럽게 물러나야 했다. 차범근이나 핌 베어벡 사례에서 보듯 큰 대회에서 성적만 나쁘면 재발하는 고질병 증세가 또 도졌다.

‘이게 다 감독 때문이야!’

왜 현장 책임자만 희생양이 되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현 감독인 슈틸리케가 보여주는 지도력과 위기관리능력을 보면서 현장 야전사령관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메르스 대응 현장에서 뛰는 정부 조직을 축구팀에 비유해 본다면 어떤 모습일까?



내 눈에는 20여 년 전쯤 졸전을 펼치던 브라질 팀이 보인다. 당시 브라질팀은 뛰어난 개인기와 형편없는 조직력으로 욕먹는 팀이었다. 세대교체도 안 되고 동기부여도 안됐다. 기본인 패스도 안 되니 경기가 제대로 될 턱이 없다. 하지만 감독 바뀌고 규율을 세우자 브라질팀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우승 후보의 면모를 되찾았다.

골 넣을 기회! 감독 지시 기다려라? 

대표팀에 빗댄다면 브라질이나 스페인까진 아니어도 월드컵 16강은 거뜬한 수준이다. 뛰어난 역량을 가진 공무원도 많고, 그걸 받쳐줄 교육 시스템과 채용 시스템, 업무지원 시스템도 두루 갖추고 있다.

하지만 단점도 많다. 메르스에서 드러난 전문인력과 공공병상 문제는 공공성을 담보하기 위한 예산과 정부규모가 심각하게 부족하다는 점을 잘 드러낸다.

더 심각하고도 근본적인 건 외람되게도 ‘감독’ 문제다.

그건 익명을 요구한 한 정부부처 고위급과 대화하면서 들은 충격적인 사태 분석과 맞닿아 있다. 그의 진달은 이렇다.

“지시를 못 받으니까 일을 못 한다. 권한은 내리고 책임은 올리라고 했는데 지금 정부는 정반대다. 권한이 없으니까 청와대 눈치만 보는데 정작 청와대에선 지시가 내려오질 않는다.

골문이 텅 빈 절호의 골 찬스가 와도 감독 지시를 기다려야 한다면?


한마디로 골을 넣을 기회가 와도 감독 지시만 기다려야 하는 축구팀인 셈이다. 이런 팀에선 선수들한테 창조적인 경기운영을 바랄 수 없다.

골 넣어! 패스해! 잘 막아! 

안타까운 건 메르스 대응에 실패한 건 초등학교 축구팀이 아니라 국가대표팀이었다는 점이다. 우리는 축구대표팀 경기에서 똑같은 선수들로 경기하는데도 감독이 누구냐에 따라 천차만별인 경기력을 보이는 사례를 여러 차례 목격한 바 있다.

‘열심히 해! 골 넣어! 패스해! 잘 막아!’

이번 메르스 사태는, 지시랍시고 하나 마나 한 고함만 지르다가, 실점하고 패배하고 나서는 ‘선수들이 내 지시를 제대로 따르지 않았다’고 선수들 탓하는 감독 책임도 상당해 보인다. (제 선수들은 사실 마피아입니다. 고심 끝에 국가대표팀을 해체하겠습니다!)

감독이 무능하고 제대로 된 지시를 하지 못하면 그라운드에서 생고생하고, 결국 쓰러지는 건 선수다.

유명무실 컨트롤타워 의지조차 없는 국민안전처 

세월호도 그렇고 메르스에서도 정부에서 가장 큰 문제는 컨트롤타워가 제구실을 못 했다는 점이다.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 증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 지자체 공무원은 이렇게 말했다.

“정부에 지역 상황을 보고하는 데 각 부처마다 따로 보고서를 요구한다. 보고서 작성과 전화 보고에 몇 시간씩 매달리느라 정작 급한 일이 뒤로 밀린다.”

“유언비어 단속이 아니라 신뢰를 쌓아야 불안감을 없앨 수 있다.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로 신뢰부터 쌓아야 한다.”

중동식 독감? 오히려 메르스 유언비어를 퍼뜨렸던 건 박근혜 대통령?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컨트롤타워라며 만든 국민안전처는 ‘투명인간’이 돼 버렸다. 애초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감독이 ‘나는 감독 아니다’라며 나 몰라라 하는데 제대로 팀이 굴러가길 기대할 수 있겠는가. 한 국민안전처 과장은 이렇게 솔직히(?) 시인했다.

– 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을 구성하지 않고 법에도 없는 ‘대책지원본부’를 만들었느냐?

“중대본을 구성했더라도 메르스 사태에 대처할 능력이 없는 게 현실이다.”

다른 정부부처 한 과장은 국민안전처 과장의 답변에 대해 “안전처는 중앙-지방 공조체계 구축을 위한 마땅한 수단도 없”다면서 “더 중요한 건 그럴 의지가 없다는 것”이라고 비판할 정도다.

열심히 일한 공무원에게는 박수를 

그렇다고 정부 공무원들이 마냥 놀았느냐 하면 절대 그건 아니다. 대책본부에서 일하는 한 공무원은 이렇게 말했다: “밥은 모두 도시락으로 때우고, 잠은 3시간 정도 책상에 엎드려 자는 게 전부다.”

한 고위공무원은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전했다: “현장 공무원들끼리 ‘자가격리되면 좋겠다. 집에서 잠이라도 푹 잘 수 있잖아’라고 농담하는 얘길 하는 걸 들었다.”

비록 경기에 패배하더라도, 졸전이라고 비판하더라도, 열악한 상황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노력한 선수들의 땀과 눈물 자체는 인정해주고 박수를 쳐주고 싶다.


인권연대 기고문을 바탕으로 슬로우뉴스(http://slownews.kr/43739)에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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