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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22 18:11

중앙아시아 맹주를 노리는 카자흐스탄, 현재 중국이 잠식중


카자흐스탄 경제 중심 도시인 알마티 시내를 빠져나가는 건 쉽지 않았다. 넘쳐나는 자동차 행렬로 꽉 막힌 도로 사정 때문에 두 시간은 족히 걸렸다. 시내를 벗어나 끝없이 이어진 너른 초원을 달리는 상쾌함을 만끽하다 알마티 쪽을 뒤돌아보자 하늘 높이 우뚝솟아 있는 톈산(天山)과 그 아래로 뿌옇게 깔린 매연띠가 한눈에 들어온다. 하얀 만년설과 잿빛 하늘묘한 부조화다.


지난 9일부터 13일까지 카자흐스탄 알마티를 다녀왔습니다. 중앙아시아에 발을 들여놓기는 태어나서 처음이었는데요. 무척이나 흥미로운 해외출장이었습니다. 그곳의 풍물과 역사가 모두 제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세계 9위의 영토 대국이자 내륙국만 놓고 봤을 때 최대 면적을 자랑하는 카자흐스탄만큼 공존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나라도 드물 겁니다. 유럽과 아시아가 뒤섞인 덕분에 카자흐스탄 프로축구리그는 유럽축구연맹(EUFA)에 속해 있지요.

7000m가 넘는 톈산산맥과 세계에서 가장 광활한 초원을 갖고 있어서 수평과 수직이 만나는 느낌도 남다릅니다. 금발과 파란 눈의 러시아계와 한국인과 구별이 안 되는 카자흐계, 거기에 고려인들까지 130여개 민족이 어울려 살고요.


카자흐스탄은 워낙 다인종 사회라 생김새가 다른 사람에 대한 선입견이나 거부감이 없습니다. 카자흐스탄 사람들에게 서울 구경을 시켜주면 오히려 사람들이 왜 생김새가 모두 똑같느냐며 의아해 할 정도입니다. 학교도 러시아인학교, 카자흐인 학교, 위구르인 학교, 유럽 학교 등 인종별 학교가 있습니다. 러시아어와 카자흐어는 공용으로 배우고 제1외국어는 영어, 2외국어는 프랑스어나 독일어를 많이 한다고 합니다.

유목민의 장남으로 태어나 소련 시절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 손에 부통령 자리까지 올랐던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가 독립 당시부터 지금까지 20년째 대통령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최근엔 맏딸 다리가 나자르바예프가 오는 2012년 대선에서 대권을 이어받을 것이란 관측도 많습니다.


카자흐스탄의 인구는 1600만명으로 1당 인구밀도가 6명도 안 되지만 막대한 지하자원 덕분에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최근 10년간 10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중앙아시아 최대 경제국이죠.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에너지산업을 이용해 중앙아시아 맹주를 꿈꿉니다. 하지만 정작 전문가들 사이에선 중국이 카자흐스탄에서 영향력을 날로 키우고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독일 시사주간 슈피겔은 지난달 현지 르포에서 이 나라를 떠나고 싶으면 영어를 배워라. 만약 이 나라에 머물고 싶다면 중국어를 배워라.”라는 현지인들의 말을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슈피겔에 따르면 카자흐스탄에선 몇 년전 러시아와 중국이 카자흐스탄을 분할하기로 밀약을 맺었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합니다. 물론 사실 여부는 지극히 부정적이지만 그런 소문이 돌았다는 것 자체가 중국에 대한 경계심을 보여줍니다. 현지 길라잡이를 해준 김 울리아나 교수가 알마티에서 아스타나로 수도를 옮긴 이유 가운데 하나로 들려준 것도 중국과 거리가 너무 가깝다는 안보상 이유였다고 하는 것도 의미심장하구요.

중국은 그동안 카자흐스탄에 90억 달러를 투자했다. 양국을 잇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도 건설 중입니다. 중국과 유럽을 잇는 고속도로 건설을 위해 카자흐스탄에서 일하는 중국 노동자는 5만명이 넘습니다.

김 울리나아 교수는 고려인 3세분으로 현지 통역을 해줬습니다. 1996년부터 알마티에 거주하며 한인일보를 운영하는 김상욱 대표도 많은 얘기를 들려주셨죠. 주로 이분들한테 들은 얘기를 바탕으로 카자흐스탄에 대한 소소한 얘기를 풀어보겠습니다.

●알마티는 사과가 유명합니다. 시를 상징하는 물건이 사과일 정도라는군요. 크기는 한국의 여느 사과보다 작지만 맛은 상당합니다. 아래 사진은 숙소 주변 청과물상점에 진열된 다양한 과일들입니다.



알마티에서 인터넷을 한다는 건 정말이지 엄청난 인내심을 요합니다. 예전에 우리가 전화카드를 썼듯이 인터넷카드를 사서 쓰는데 약 500메가 정도 데이터용량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 정도면 대략 세 시간 정도 사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속도는 엄청나게 느립니다.

고려인들이 카자흐스탄에 10만명 가량 사는데 대체로 부지런하다는 소리를 많이 듣습니다. 물론 성질 급하다는 소리도 많이 듣고요. 김 교수는 그 얘기를 해주면서 카자흐 사람들은 성질 느긋하지만 게으르다.”고 평가하더군요.

유목민은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소련을 거치면서 전통이 많이 사라졌다는군요. 목장주가 고용해서 유목하며 가축 키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하네요. 카자흐 사람들은 양, , 말을 많이 키운다. 러시아 사람들은 양, , 돼지를 키웁니다. 소고기는 비싸다. 고려인은 예전엔 돼지 많이 키웠답니다.

카자흐스탄은 국민개병제입니다. 근무기간은 2년가량이고요. 예전엔 군대 안가려고 뇌물 쓰기도 했다는데, 군대 갔다와야 공무원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군대 가고 싶다고 뇌물을 쓰는 경우도 있답니다.

술은 보드카와 맥주가 대부분입니다. 카자흐스탄 현지에서 생산하는 맥주가 맛이 좋다고 합니다. 젊은이들은 맥주를 좋아한답니다. 말젖술이나 낙타젖은 건강식품이라고 최근 시중에서 판매한다고 하는데 먹어보진 못했습니다.

시골에서 공중화장실(오른쪽 사진)에 한번 가봤는데 칸막이가 없습니다. 모두가 얼굴 보면서 일을 볼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화장실 옆 구멍가게에서 오리온 초코파이를 봤습니다. 신기해서 한 통 사서 나눠먹었습니다.

가게에 전통빵이 큼지막하게 있었는데, 사려고 했더니 주인 할머니가 어제 만든 거라며 팔질 않네요. 순박한 모습이 훈훈했습니다. 그런데 애초에 진열은 왜 해놓은걸까요?

가장 선호하는 유학지는 미국과 영국이라고 합니다. 최근엔 중국과 한국도 인기가 올라갔고, 러시아는 치안불안 때문에 비선호 대상이랍니다. 한국어과는 인기 좋은 반면 일본어과는 인기가 없답니다. 카자흐스탄에 진출한 한국 회사들 영향이 크다고 하네요. 알마티 시내 중심가에는 LG거리란 비공식적 이름으로 부르는 거리도 있답니다. 갤릭시 광고판도 보이고요.


한편 김 교수는 카자흐 사람들이 고려인보다 한국어 더 잘 배운다고 하네요. 고려인들은 러시아어를 모국어처럼 쓰기 때문에 러시아 사람이 한국어 배우는것과 별 차이가 없는 반면, 카자흐 사람들은 한국어와 비슷한 구석이 많아서 더 빨리 배운다는군요.

젊은세대에게 가장 큰 꿈은 시내에 아파트 사는 것이라고 합니다.

예전엔 신혼여행을 안 가는 대신 아주 성대하게 결혼식 잔치를 했다고 합니다. 하루 종일 어떤 때는 며칠씩 잔치를 했는데 하객이 수백명은 됐다고 합니다. 요즘은 신혼여행을 가는데 주로 가는 곳은 터키와 불가리아라고 합니다.

소련 시절엔 사회가 안정돼 있어서 치안 걱정이 없었답니다. 취직도 다 됐고 은퇴하면 연금도 나왔습니다. 대신 가게 가면 옷도 다 똑같았다고 하네요. 김 교수에게 심심한 천국이란 말을 했더니 웃으며 맞다고 합니다. 소련 무너지고 나서는 러시아 노인들은 자식들이 러시아로 떠나면서 혼자 남게 된 경우가 많답니다. 화폐가치가 떨어지면서 연금이 별로 도움이 안돼 경비원 같은 일을 하면서 외롭게 사는 경우가 많다고요.

지금 수도인 아스타나는 원래 젤리나그라드라고 해서 농업 발전을 위해 소련 시절 만든 도시였습니다. 수도를 옮긴 건 알마티가 중국과 너무 가깝다는 안보상 이유가 컸고, 카자흐인들은 남쪽에 러시아인들은 북쪽에 많이 거주하기 때문에 국가 통합 차원도 있었답니다. 큰 지진이 있고 나서 또다른 큰 지진이 발생할 위험이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네요. (그 얘길 듣고 나서 큰 지진이 실제로 있었느냐고 물었더니 없었답니다.)

세계 어디에나, 특히 무슬림 국가에서 활약(?)하는 한국인 선교사들이 많은데 카자흐스탄도 예외가 아닙니다. 최근 알마티에서도 한국 선교사들 많이 늘었다는군요. 알마티에선 아직까지 큰 문제는 안 일으켰지만 무슬림이 많이 거주하는 서부 칭겐드에선 문제를 일으키고 있답니다.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선교사나 목사들은 신분을 감추기 위해 자기 사업도 하고 서로 사장님 선생님이라 부르곤 한다는군요.

●밤늦게 호텔에 도착해서 바로 자고 다음날 아침 일어나 창밖을 보는데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말로만 듣던 천산 만년설이 한눈에 들어오더군요. 시내 바로 옆이 천산이라서 대단히 독특한 느낌을 줍니다. 아래 사진은 천산 자락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Trackback 1 Comment 2
  1. 오~소중한 정보! 2010.11.23 11:46 address edit & del reply

    그나저나, 카자흐스탄도 조만간 중국에 먹히게 되는 건가요?
    중국정부가 중국인들을 그 쪽으로 많이 이주시키면 뭐.. 달리 방법이 없을 것도 같긴 하군요!
    쩝...

    • BlogIcon 자작나무 2010.11.23 11:53 address edit & del

      슈피겔 보도를 보면 실제 그런 우려가 현지에서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국제관계 역학상 중국이 카자흐스탄을 먹는건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물론 영향력이 커지는 건 어느정도 불가피하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