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국면에서 경기부양정책을 펴는 과정에서 재정건전성을 '일부' 희생해야 하는건 불가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경기회복이 안되면 소비와 일자리가 살아나지 않기 때문에 세입확대를 꾀하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이겠지요.
문제는 적극적 재정정책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하느냐 하는 것인데요. 지난해 재정조기집행 상당액이 건설 쪽으로 흘러갔고 중앙정부는 일자리 확대한다며 수십조원을 4대강에 쏟아붓고 있습니다.
차라리 그 돈을 모든 국민들에게 1/n로 나눠주는게 소비를 살리는데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농담처럼 들리지만 소비를 늘리고, 소득재분배 효과도 확실하며, 긴급구조 효과도 있기 때문입니다.
(포퓰리즘이라고 난리칠 분들 계시겠지만 제 관점에선 일부 건설사들 위해 경인운하와 4대강 사업 하는 것보다야 '덜' 포퓰리즘입니다. 잘못된 대못을 뽑는다며 세종시 수정안 밀어붙이는 한편에서 '이제는 되돌릴수 없다'며 4대강 사업 강행하는 것보다도 '덜' 포퓰리즘일 것이고요.)
지난주 금요일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를 인터뷰했습니다. 재정정책과 국제금융질서 등에 대한 내용인데 블로그에 올립니다. 아쉽게도 지면에 실리진 않았습니다.
신장섭 교수는 지난해 출간한 <금융전쟁>이란 책에서 금융에 관한 잘못된 상식 다섯가지를 지적한 바 있습니다.
ㆍ 몸통이 꼬리를 흔든다
- 투기가 몸통이고 펀더멘틀은 꼬리에 불과하다
ㆍ 돈은 신흥국에서 선진국으로 흐른다
- 신흥국에 돈이 들어오는 것보다 빠져나가는 것이 훨씬 쉽다
ㆍ 버블은 터지기 마련이고 새로운 버블을 만들어서 해결한다
- ‘버블 만들기’가 자본주의 발전과정이다
ㆍ 음모론을 믿어라
- 어느 음모론을 믿을지가 중요할 뿐이다
ㆍ 성장률 숫자에 현혹되지 말라
- 자산가치가 더 중요하다
이 내용에 기반해 인터뷰 질문을 구성했습니다. 신장섭 교수가 말한 내용은 일부 다듬긴 했지만 내용 자체는 최대한 가감없이 실었습니다.
1. 그리스, 스페인 등 남유럽 재정위기도 투기가 주요원인이라고 보는지. 그렇다면 그 근거는
신: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자. 일반인들은 국제경제에 문제가 생기면 투기가 아니라 뭔가 다른 이유가 있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세계 금융위기가 왜 일어났나? 펀더맨틀 때문이 아니라 서브프라임 파생상품에 투기하다 그게 터져서 일어났다. 저위험 고수익 상품이라며 투기꾼들이 소비자 현혹시키며 팔고 다녔다. 그 투기꾼에 국제은행, 신용평가회사 다 포함돼 있었다. 그러다 다 무너졌다. 결국 세계금융위기는 투기 때문에 벌어졌다. 그게 위기의 본질이다.
위기가 터지자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각국 정부는 일제히 돈을 풀었다. 거기에 공감대가 모아졌다. 이른바 국제공조가 이뤄졌다. 정부가 재정지출을 급속히 확대했는데 정부재정이 단기적으로 나빠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참고 기다리다 경제가 회복되면 그 다음에 재정이 좋아지는게 순서다. 그런데 세계경제가 회복도 안 된 상황에서 재정 상황이 나빠진 나라에 마치 큰 잘못이 있는 것처럼 문제삼기 시작했다.
그리스를 보자. 재정적자와 정부부채 문제가 심각하다고 하는데 재정적자는 영국보다는 덜하고 정부부채는 일본보다 덜하다. 어떤 기준에서 그리스가 제일 위험한 것처럼 난리법석을 떨었을까. 그 기준이란게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다. 그리스가 유럽에서 재정이 안 좋은건 다들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경기부양을 하는 과정에서 그리스 재정 더 나빠질 거 누가 몰랐나.
왜 그리스발 위기가 나오나. 그 과정을 유심히 봐야 한다.
지금 국제금융시장은 약한 고리가 보이면 ‘쇼트’를 통해 큰 돈을 버는 세력이 항상 있다. 이들은 항상 기회를 노린다. 그리스에서 벌어진 일은, 2000년대 초반, 그리스가 국채를 발행해야 했는데 재정적자 너무 크니까 발행규모 축소했다. 그걸 골드만삭스 등이 도와줬다. 그리스에 ‘롱'하라고 투자자 끌어들여줬다. 그와 동시에 골드만삭스는 런던에 그리스 등 이른바 피그 국채 부도할 경우 투기할 수 있는 CDS 인덱스시장을 만들었다.
골드만삭스가 왜 그렇게 했을까. 그리스 도와주며 수수료도 챙기면서, 그리스 재정적자가 뭔가 숨겨져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투기하는 사람 입장에선 그 사실이 언제가는 드러난다, 그 전에 쇼트 포지션 잡아 놓으면 돈을 벌 수 있다. 그 다음에 그걸 소문내도 돈을 벌 수 있다. 분명한 건, 투자은행이 롱과 쇼트 사이에서 줄타기 했다는 것이고. 그 시기가 이번에 온거다.
기본적으로 그리스 재정적자가 딴 나라보다 상대적으로 나쁘다는 걸 이미 다 아는 상황에서 왜 하필이면 올해 봄에 벌어졌는가. 정황과 이후 추이, 그로 인해 이득보는 세력을 볼 때 국제투기자본 책임을 주목할 수밖에 없다. 그들을 주목하면서 국제금융시장을 이해해야 한다.
2. 남유럽 재정위기에서도 선진국으로 자금이동이 있었나.
신: 자금이동은 당연히 존재한다. 그리스가 부채 갚는 돈이 다 선진국으로 빠져나갈 수밖에 없다. 위기상황에서 그리스에서 선진국에서 빠져 나간다. 유럽연합과 IMF가 그리스에 지원한 돈조차도 그리스를 위해 쓰는게 아니라 기본적으로 채권자들에게 돈 갚는데 쓴다.
3. 재정위기와 금융위기가 동시에 압박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거품을 만든다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현대 자본주의 특성 자체가 대규모 재정지출을 필요로 한다(공적부조, 환경, 국방, 치안...)는 점에서 이제는 어떤 다른 대안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신: 현재 G20조차도 국제투기자본 눈치를 보고 있다. 지레 겁먹고 재정적자를 빨리 줄여야 하겠다는 쪽으로 정책이 바뀌고 있다. 이는 정책담당자들 잘못이라고 본다.
다시 얘기하지만, 세계 금융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 다같이 재정적자 늘리면서 정부주도로 경기회복하기로 했으면 경기회복까지는 같이 밀고 나가야 한다. 경기회복 전에 투기에 겁먹어서 굴복해 버리면 재정적자만 늘어나고 얻는건 없게 돼 버린다.
경기회복돼서 세금이 걷혀야 성과가 생긴다. 지금같은 때 G20이 더 모여서 재정확대를 오히려 더 해야 한다고 본다. 현재 긴축재정은 투기세력에 굴복하는 것이고 경기회복도 안될 것이다. 긴축재정은 오히려 더 경기회복을 더 늦출 수 있다.
환경 등에서 생기는 재정지출 등 문제는 계속돼 온 고민꺼리다. 문제는 정책선택 시점을 선택하는 것이다. 지금은 응급실에서 나오는 상황인데 갑자기 살빼야 하니까 먹는거 줄이고 운동해라 그렇게 하는것과 똑같은 실수를 해선 안된다. 당장은 몸무게가 더 늘더라도 일단은 보양을 해서 건강을 회복하는게 우선이지 않겠나.
4. 최근 유럽발 재정위기와 관련해 음모론적 가설을 제시해준다면
신: 나는 거대음모론을 믿지 않는다. 누가 유럽 상황을 더 나쁘게 하려는 세력은 없다고 본다. 다만 투기세력은 계속 약한 고리를 찾아다닌다. 그걸 찾은 다음에 작전을 짜는거다. 그리스 경우는 재정적자와 취약성 등을 이용해 돈을 버는 정도의 음모론이라고 할 수 있겠다.
5. 한국은 상반기에 꽤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며 자평한다. 이런 와중에 최근 지방재정위기에 대한 논의가 촉발되면서 재정적자나 정부부채, 가계부채 등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에 조언해줄게 있다면
신: 지속적으로 말도 안되는 경제성 없는 사업, 선심성 과시용 사업 그런건 미리부터 막아야 한다. 그런데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과제는 일자리 만들고 새로운 성장동력 찾는거다.
성남청사처럼 이미 만든걸 무너뜨릴 순 없지 않느냐. 효율적으로 사용할 방법을 찾아야 하는거다. 물론 전임 성남시장이 판교특별회계 전용해 청사 만들었다는건 범죄행위다. 그건 경기 좋고 나쁘고 상관없이 막아야 한다.
다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전반적으로 한국의 재정적자는 외국에 비해서는 괜찮다는 점이다. 내부에서 조용히 해결해야 한다고 본다. 마치 한국경제가 거덜날 것처럼 하면 오히려 더 안좋을 수 있다. 미국 주정부와 비교해보라. 거긴 정말 심각하다. 그런데도 달레 강세로 가고 있다.
상대적으로 비교해봐야 한다. 우리 문제만 찾아보면 약점이 얼마나 많겠느냐. 하지만 누구나 장단점이 있다. 외국과 정확히 비교하면서 장점과 단점을 찾아야 한다. 한쪽만 바라보고 그게 너무 커지면 국제투기자본에 의도하지 않게 이용당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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