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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說/아빠성장일기

파워레인저가 한․미 공조 위협한다?

by betulo 2010.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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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레인저를 아십니까? 이 글을 읽는 분들의 연령대를 감안하면 적어도 이름은 들어봤을테고 일부는 파워레인저 사달라는 자녀 때문에 신경 좀 썼을 테지요. 일본의 어느 스튜디오에서 제작하는 드라마 시리즈라는데 파워레인저 트레저포스 엔진포스 무슨 포스 무슨 포스... 

어른들 입장에선 진득하게 보는 것 자체가 어려울 정도로 유치하기 짝이 없는 순전히 어린이용 드라마 되겠습니다. 그런데 이 파워레인저가 한미간 심각한 갈등의 원천이 됐다는 걸 아십니까.

일요일부터 1박2일로 강원도 한 자연휴양림에 놀다 왔습니다. 부모님과 4남매 부부와 각자 자녀들까지. 모두 15명이나 됩니다. 자동차 석 대를 동원했고 각 세대별 회비만 ‘무려’ 15만원. 

태어나서 온 집안이 한명도 빠짐없이 차타고 놀러가서 1박을 한 것이 전례없는 일입지요. 흠흠. 그럴 수밖에 없는게 4남매 중 한 명인 누나는 미국에 살기 때문입니다.

누나와 매형 모두 미국 시민권을 땄고 조카 3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법적으로 미국인이지요. 그런데 그 집 조카 중 막내가 5살. 파워레인저에 한참 빠져 있는 이 놈이 친정 나들이를 위해 방한한 누나를 따라왔다가 저희 집에서 파워레인저 중 한 주인공 장난감에 눈독을 들였습니다. 

이에 한국국적인 4살짜리 제 아들놈 결사항전으로 저항하기 시작했습니다. 10분에 한번씩 둘 중 한 명은 서로 자기꺼라며 눈물을 뚝뚝 흘리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측 주장: 원래 내꺼였는데 할머니가 작년에 미국 방문했을 때 몰래 가져갔다.

한국측 주장: 그딴거 모른다. 무조건 내꺼다.

 

형제자매가 없어서 장난감을 두고 경쟁해본 경험이 부족한 제 아들놈. 이번만은 물러나지 않고 저항합니다. 다만 방식은 아빠에게 울먹이며 뺏어달라고 하거나, 고모에게 아양을 떨거나, 이도저도 아니면 동네방네 다 들리도록 ‘노이즈 마케팅’을 시도합니다.

한국측 저항에 부딪친 미국 선수. 파워레인저를 지키기 위해 쓰는 방법은 움켜쥐고 안내놓기입니다. 문제는 4살짜리 아양에 넘어간 제 엄마가 빼앗을 때인데요. 역시 온갖 소음으로 승부하는 농성에 돌입합니다.

대체로 갈등의 결과는 그래도 막내인 한국 선수에게 파워레인저가 돌아가는 걸로 끝납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죠. 어느 순간 미국 선수가 파워레인저를 빼앗아버립니다. 그리고 다시 노이즈마케팅과 아양떨기와 울고불고 저항하기…

이래저래 온 집안에 누군가는 10분에 한번꼴로 울고불고 난리를 칩니다. 그래도 다행인건 형이라고 밀치거나 때리거나 하진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만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결국 저희는 파워레인저 장난감을 빼앗아 방 한쪽 구석에 숨겨놨습니다. 누나는 ‘버렸다’고 뻥을 쳤습니다. 미국 선수 울고 불고 하다가 결국 포기.

이 와중에 저는 한국선수에게 ‘저기 숨겨놨으니까 울지 말고 기다려라.’며 ‘비밀’ 준수를 약속받았습니다. 덕분에 똑같이 장난감을 빼앗겼는데 다섯 살짜리는 울고 네 살짜리는 무덤덤. 그리하여 “한국 승!!!”

한미갈등이 낳은 예기치 않은 부산물도 있습니다. 바로 파워레인저에 나오는 칼 장난감인데요. 칼에 온갖 색칠이 돼 있어서 딱 애들이 좋아하게 생겼습니다. 파워레인저를 한번도 본 적이 없을 당시 울 아들은 뽀로로 만화에서 기타 치는 걸 보고 파워레인저 칼을 기타로 사용했습니다. 칼을 옆으로 들고 기타치는 흉내를 내며 노래를 불렀지요(물론 가사는 완전 외계어 ㅎㅎㅎ)

미국선수 세 명이 한국에 와서 TV에서 파워레인저를 즐겨봤는데 옆에서 같이 보던 울 아들 이제 파워레인저 칼이 칼이라는걸 알게 돼 버렸습니다. 이리저리 휘두르는 흉내를 냅니다. 여기에 맞서 미국선수는 파워레인저 장난감으로 레이저광선 쏘는 흉내를 내고요. 칼을 기타로 쓰는 건 울아들밖에 없어서 기타치는 모습을 재미있게 보곤 했는데 이제 그런 날은 지나가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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