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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생각

재정적자는 ‘만악의 근원’이 아니다

by 자작나무숲 2010.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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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적자는 ‘만악의 근원’이 아니다


나도 선진 각국의 재정적자에 대한 기사를 여러 차례 썼지만 의문이 드는 점이 있었는데 <금융의 제왕> 책을 보면서 재정적자에 대한 관점을 좀 더 다듬을 수 있었다. 독자 여러분과 함께 역사에서 배우는 시간을 가져 보고 싶다.


인용문 뒤에 있는 숫자는 리아콰트 아메드, 조윤정 옮김,  2010, 『금융의 제왕』, 다른세상(Liaquat Ahamed, 2009, Lords of Finance)의 쪽수를 표시한 것이다.


도로디어 랭의 사진작품, 1936년 3월 캘리포니아 니포모에서 7살된 딸을 대리고 배급권을 기다리는 32세 여성의 모습.

얘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1931년] 7월31일, 의회가 여름휴회에 들어가고 정치가들과 은행가들이 런던을 떠나 시골로 향할 때, 또 다른 공식 위원회-메이 위원회-가 보고서를 제출했다. … 메이 위원회는 정부가 5억 달러의 지출을 삭감하고 1억 달러의 세금을 추가 징수하여 재정 불균형을 되돌려야 한다고 권고했다. 그들의 권고사항에는 실업수당의 20퍼센트 삭감 조치가 포함되어 있었다(493쪽).


메이 위원회가 조사에 착수한 배경은 “국은 대공황이 심화되면서, 재정 적자가 되어 대략 6억 달러, 즉 GDP의 2.5퍼센트에 해당하는 손실을 기록”했기 때문이었다(493쪽).


이런 상황에서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한 대규모 긴축재정을 권유한 보고서는 “경제의 작동방식에 관한 오늘날의 지식에 비추어 보자면, 위원회의 제안은 완전히 불합리한 것”이었다. “메이 위원회는 역사가 A.J.P의 표현에 따르면 ‘편견, 무지, 패닉”이 어우러져 결손의 규모와 중요성을 과장했다.’고 저자는 비판한다(493쪽).


당시 영국의 상황을 보자. 실업자 250만명, 생산은 20% 감소, 물가는 한 해 7% 하락(493쪽). 이럴 경우 해결책은 무엇일까? 두가지 방법이 있다. 먼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에 대응해 미국 등 선진국들이 사용한 방법이 있다. 대규모 국채를 발행하고 금리를 낮추고 구제금융을 제공했다. 재정적자를 각오하고 일단 경제가 죽는 걸 막기 위해 팔을 걷어부친 것이다.


두 번째 방법은? 1931년 영국 메이위원회 보고서가 권한 방식이 있다. 이 방식을 역사적으로 잘 시행한 곳이 있다. 한국이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IMF가 한국에 요구했고 한국 정부가 시행한 걸 기억해보라. 금리를 높이고, 정리해고를 쉽게 하는 구조조정을 하도록 하고 재정긴축정책을 폈다. 구제금융은 나중에야 이뤄졌다.


아메드에 따르면 “당시 지배적인 정통 이론에 따르면, 재정 적자는 언제나 나쁜 것이었다. 경기 침체 시라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고 한다(493쪽). 메이너드 케인스가 메이 보고서를 “내가 운 나쁘게 읽은 문서들 가운데서도 가장 어리석은 것이다.”라고 평했다(493쪽).


요즘 왜 이렇게 선진국 재정적자에 대해 말이 많을까. 아메드(494)는 한가지 시사점을 제공해준다. “돈을 필요로 하는 나라가 있을 때면, 은행가들은 거의 본능적으로 예산 삭감을 요구한다. 그들은 대부분의 문제에 대한 올바른 해결책으로 이를 제시하고, 특히 공공 지출의 삭감을 선호한다.”


당시 영국은 메이 위원회 권고를 따랐다. “재무장관은 3억 5000만 달러의 지출을 삭감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여기에는 실업수당의 10퍼센트 삭감과 3억 달러 규모의 세금 인상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이 안을 잉글랜드은행을 통해 이면 경로로 모건사에 제출했다. … 실업수당의 10퍼센트 삭감 외에, 조지 5세의 고집으로 한 해 총 225만 달러에 이르는 연간 왕실비 역시 10퍼센트 삭감되었다494-495)”.


효과가 있었을까?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로 “예산 감축은 소용이 없었다.” “균형 예산은 문제의 본질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영국의 좌파 잡지 <뉴 스테이츠먼 앤드 네이션>은 이 문제를 매우 간단하게 설명했다. … 다른 말로 하자면, 문제는 재정 적자에 있는 게 아니었다. 영국은 그럴 만한 돈이나 자원도 없이 세계 은행가의 역할에 여전히 집착했고, 하필 이때가 세계 대부분이 위험에 처한 때였다는게 바로 문제였다(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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