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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說

재미도 없는 저질코미디, 한미FTA

by betulo 2007. 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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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2일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카란 바티아 미무역대표부(USTR) 부대표가 한미FTA 결과를 발표한 뒤 악수하는 모습. 이런 장면을 조만간 한 번 더 볼 수 있을 것 같다.

 대충 만든 저질코미디 한미FTA가 1막을 끝내고 2막을 향해 그 웃기지도 않는 여정을 시작하려 합니다.

미 의회와 행정부는 FTA 체결 상대국에 대해 국제노동기구(ILO)의 5개 기준과 7개 국제환경협약을 준수토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 신통상정책에 합의했습니다. 빠르면 다음 주 초에 공식적인 재협상 요구를 해올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재협상 요구를 엄포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행태로 볼 때 정부는 어차피 미국 요구를 받아들여 재협상에 나설 겁니다. 재협상이 없으면 미국 의회는 비준을 하지 않기 때문에 정부는 협상장에 끌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미국 요구는 엄포이면서 동시에 엄포가 아닙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미국 요구대로 흘러가는 겁니다.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는 저와 전화인터뷰를 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노동과 환경을 추가논의한다면 그건 결국 재협상을 뜻한다. 미국은 한국이 재협상 요구를 거절하면 한미FTA를 비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한국은 어차피 재협상 무대로 끌려갈 수밖에 없다. 제주도 감귤농가를 비롯한 한국 국민들이 재협상 얘기할 때 정부는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이 요구하면 재협상 할거다. 그럼 도대체 정부는 뭐하는 곳인가.”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은 이런 상황을 “한국 정부는 ‘미국 상전을 추종할 것인가’, 아니면 ‘재벌들의 이익을 지켜줄 것인가’ 사이에서 고민을 해야 하는 자가당착적 상황에 빠져버렸다.”고 표현했습니다. 대단히 냉소적인 표현으로 현실을 정확하게 짚었습니다.


한미FTA를 찬성하는 중앙일보도 “한미FTA 비준을 위해 미국이 요구하는 재협상을 무조건 무시하긴 어렵기 때문에”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딜레마에 빠졌다.”고 보도할 정도입니다. 결국 한덕수 국무총리를 비롯해 관계부처 당국자들이 재협상 불가론을 고수해온 만큼 ‘굴욕협상’이란 비판을 벗어나긴 힘들거라 예상할 수 있겠지요.


노동분야 재협상? “핵심은 결국 자동차”


여기서 잠시 미국이 요구한다는 노동환경분야 쟁점 가운데 노동분야를 살펴봅시다. (환경분야는 문외한이라 얘기 안하겠습니다.)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은 노동기준의 최저기준을 규정하는 협약들 가운데 회원국이라면 정부의 비준 여부를 떠나 반드시 준수해야 하는 기준들입니다. 노조결성권과 단체교섭권 보장, 강제노동 폐지, 아동노동 폐지, 작업장 차별폐지 등 4개 영역에 걸쳐 각각 관련협약이 2개씩, 총 8개 협약이 있습니다. 노조결성권과 단체교섭권을 따로 묶어 다섯 가지 영역으로 나누기도 합니다.


한국과 미국 모두 이들 협약 비준과 이행에서 최악으로 악명이 높습니다. 한국은 아동노동 폐지와 작업장차별 폐지에 관한 협약 4개만 비준했습니다. 미국의 사정은 한국보다 더 열악합니다.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가운데 미국 정부가 비준한 것은 강제노동폐지에 관한 협약과 고용․직업에서 차별대우에 관한 협약 두개에 불과합니다. 핵심협약을 포함해 187개에 이르는 국제노동기구 협약을 비준한 개수도 한국은 22개, 미국은 14개 뿐이구요.


사정이 이런대도 미국은 왜 한미FTA에 자국이 비준도 하지 않은 기준을 적용하자고 하는 걸까요. 이해영 교수 의견은 이렇습니다. “노동분야에서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비준은 민주당의 오랜 숙원이었다. 민주당은 오래 전부터 국제노동기구 8개 핵심협약을 모두 비준하려고 했지만 재계와 공화당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한미FTA 등을 계기로 국제노동기구 핵심기준을 강제하면서 국내 비준도 쟁점화하려는 의도라고 봐야 한다.”


전문가들은 국제노동기구 기준상 전의경제도와 공익근무요원, 양심적병역거부자 징벌 모두 강제노동에 해당한다고 지적합니다. 패스트푸드점, 편의점, 주유소 등에서 일하는 청소년 실태도 아동노동과 관련해 논란 소지가 많은 실정입니다. 그만큼 노동분야 핵심협약들은 한국에 미치는 파괴력이 강합니다.


노동분야 재협상이 한국 노동권 강화에 도움을 줄까요? 이해영 교수는 “양날의 칼”이라고 표현합니다. “한편으론 기준이 올라가는 건 좋다. 하지만 기준 높아지면 생산비가 올라간다는 거고 그럼 제품 가격이 올라간다. 구조조정 요인이 발생한다는 뜻이다. 기업에겐 단가가 올라간다. 경쟁력에 압박을 받게 될 것. 미국이 노리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교수는 이와 함께 “협상 상황을 지켜봐야겠지만 결국 자동차가 핵심이 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지난 3월 민주당은 ‘미국을 위한 신통상정책’을 발표했다. 그 내용 가운데 자동자부문은 국내시장 점유율과 관세율을 연계시키는 방향으로 민주당과 공화당이 초당적으로 합의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미국무역대표부에 그 안을 관철시키라고 압박했지만 무시당했다. 협상타결 직후 의회 일각에서 터져나온 한미FTA 반대의견은 그런 상황을 반영한다. 그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을 경우 미국 의회에서 한미FTA 비준을 장담하기 쉽지 않다.”


한미FTA 와중에 우리가 잊어버리는 것들


여기서 우리가 잊고 있던 사실 하나를 생각해 봅시다.


첫째, 정부가 제시한 FTA의 큰 그림은 당초 한-캐나다 FTA가 한미FTA보다 먼저였습니다. 한-캐나다FTA의 목적은 “한미FTA를 위한 교두보 혹은 전초전”이었습니다. 계획대로라면 2006년에 한-캐나다FTA를 체결하고 2007년에 한미FTA를 체결하는 것이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순서가 완전히 뒤바뀌었습니다. 교두보나 전초전 얘긴 온데간데 없고 세계 최대시장과 맞짱 떠서 맵집을 키우자는 게 정부가 내놓은 재미없는 FTA광고문구입니다.


둘째, 통상절차법은 도대체 왜 안만드는겁니까. 한미FTA 과정에서 겪은 그토록 많은 시행착오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지지율 10%대에서 30%대로 올랐다고 “입이 째질 것 같다”는 노 아무개씨는 그렇다 치고 국회는 도대체 언제까지 태업만 하고 있을 건지 답답하기만 합니다. 정부가 협상과정도 공개 안하고 협상문 보여준다며 영어실력 테스트하는 와중에도 국회의원들은 거세시킨 고양이처럼 얌전할 뿐입니다. 오로지 대선승리나 대통합 같은 것에서만 발톱 세운 고양이일 뿐이지요.


셋째, 한미FTA 과정에서 우리는 사회적대타협을 위한 기반을 스스로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정부와 국회는 대선과 총선에 정신이 팔려서 ‘국가의 역할’을 전혀 못하고 있습니다. 재계도 수출업계와 내수업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괴리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노동계도 양극화됩니다. 더구나 ‘우리가 무슨 힘이 있나’ ‘수출만이 살길이다’ ‘혹시라도 미국이 FTA비준 안해주면 어떻게하나’ ‘세계화시대인데 우리가 글로벌스탠더드 안따라가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상상력빈곤과 주체성상실 속에 새로운 사회, 더 좋은 사회를 꿈꾸는 상상력은 갈수록 고갈됩니다.


남북FTA?


누군가 남북한이 FTA를 체결하면 어떨까 생각해보자고 합디다. 그걸 통해 한미FTA를 생각해보자는 것이지요. ‘자유무역은 강자의 보호무역’이니까 일단 남한은 북한의 관세장벽을 허물려 하겠지요. 비관세장벽도 허물려 하구요. 북한 저임금 노동자 밀려온다고 불만 많아질 수 있으니 인력시장 개방은 최대한 막을 겁니다. 남한 투자자가 북한 정부를 곧바로 제소하도록 하는 것도 생각해볼만 할껍니다. 국회와 재계는 똘똘 뭉쳐 하나라도 더 얻어오라고 난리를 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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