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시법은 집회시위금지법이다 | ||||||||||||||||
[경찰개혁] 국민기본권 침해 심각 | ||||||||||||||||
2005/9/6 | ||||||||||||||||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 ||||||||||||||||
“몇 해 전 미국에 간 적이 있습니다. 호주대사관 앞에서 스물 몇 명이 동물보호 시위를 하고 있더라구요. 국제법상으로 평화적 업무수행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규정이 있긴 하지만 자유롭게 시위를 하는 걸 보고 한국 상황이 떠올랐습니다. 한국이라면 외국인들이 집회하는 걸 가만 놔 뒀겠습니까?” 한상희 건국대 법대 교수는 현행 집시법이 집회·결사의 자유를 선언한 헌법 제21조1항을 근본적으로 훼손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그는 “집회·시위란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규율해야지 일반적으로 규율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며 “일률적으로 규율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헌법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어떠한 형태의 집시법도 반대한다는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한 교수는 이어 “현행 집시법은 자질구레한 규정으로 인해 집회·시위가 갖는 시의성·탄력성·임기응변성을 전혀 담보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이계수 건국대 법대 교수도 “현행 집시법은 집회·시위를 보장하는 법이 아니라 못하게 막는 법”이라며 “법 자체가 위헌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위헌 조항이 너무 많아서 사실상 위헌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이들이 말하는 기본권 침해는 집시법의 전 영역에 걸쳐 있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사례로 든 것이 바로 국회의사당, 각급법원, 헌법재판소, 대통령·국회의장·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 공관, 국무총리공관(행진은 예외), 외국공관, 외국공관 숙소 주위 1백미터 이내에서는 옥외집회와 시위를 금한 집시법 제11조이다. “이게 말이 됩니까? 외국은 국회의사당 앞에 담장도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난 2002년 여중생 사건 때 한국인들은 백악관 앞에서 시위도 했지요.” 한 교수의 말이다. 집시법이 열거한 장소들은 항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은 곳이어서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귀를 기울여야 할 곳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한 교수는 “집시법은 경찰이 치안유지권을 발동할 수 있는 고리가 너무 많아서 결국 국민들이 모든 걸 경찰에게 묻고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상황을 만든다”며 “그게 바로 경찰국가”라고 우려했다. 그는 “집시법이 아니라도 공무방해죄, 교통방해죄, 소요죄, 경범죄처벌법 등 불법집회를 규제할 수 있는 법은 많다”며 “집시법 없앤다고 사람들이 그렇게 할 일없이 데모하지 않으니 경찰은 걱정 붙들어 매라”고 꼬집었다. 집회·시위는 일차적으로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처리하고 시위대열 보호 등은 자치경찰이 담당해야 한다는 게 한 교수 의견이다. 경찰-시민사회 불신 조장 한 몫 경찰이 먼저 인권경찰을 강조하고 인권보호를 위한 다양한 조치를 내놓으면서 경찰을 바라보는 시민사회의 눈도 조금씩 호의적으로 바뀌고 있다. 하지만 집회·시위를 둘러싼 갈등은 이 모든 것을 물거품으로 만든다. 평택 평화축제나 울산 플랜트노조 파업, 오산 수청동 사태 등은 항상 경찰 이미지에 먹칠을 하는 ‘블랙홀’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경찰폭력이 갈수록 심해집니다. 예전에는 시위대를 방어한다는 명분으로 화염병이나 쇠파이프를 사용했지만 요즘은 그런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최루탄 안 쓰는 것 빼고는 더 심하게 대응합니다. 집회·시위에서 시민들이 다쳤다면 이는 시민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경찰 책임이라는 것을 상기시켜야 합니다. 경찰은 불법 행위자를 잡을 권한은 있어도 맞대응할 권한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맞대응을 넘어 더 강경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횡행하는 실정이지요. 범인 체포할 때도 정당방위를 넘는 과도한 폭력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까.” 김치성 원불교 인권위원회 간사의 말이다. 그는 “2004년 1월 집시법 ‘개악’ 이후 경찰의 대응이 훨씬 더 폭력적으로 변했다”고 단언한다. 그는 “지난 7월 10일 평택 평화축제가 대표적”이라며 “시위에 참가한 민간인 모두를 적으로 규정하며 강경진압을 독려한 선무방송은 경찰의 현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당시 시위진압을 지휘했던 이종우 경무관은 지난 7월 27일 집시법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당했다. 이런 일이 끊이지 않는 것은 현행 집시법의 근본적인 한계 때문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집시법이 일선 경찰서장에게 너무 광범위한 권한을 부여하고 경찰은 집회·시위를 일단 막고 보려 하면서 자의적인 권한남용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경찰은 법질서 수호 논리를 강변하지만 그건 경찰은 언제나 옳고 국민들은 틀렸다는 것입니다. 자신들만이 궁극적인 판단자라는 전제를 갖고 자기들이 걱정하는 것은 자기들이 막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바로 경찰국가의 기본 틀이죠. 모든 판단 중심에 국가 있다는 사고 방식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항상 사전예방하겠다고 하죠. 사전예방은 결국 사전단속, 예비검속으로 이어집니다. 그게 바로 국가보안법의 논리입니다. 주체사상 읽으면 빨갱이 될지 모르니까 때려잡겠다는 게 바로 그런 데서 나오는 것 아닙니까?” 한상희 건국대 법대 교수의 지적이다. 시민사회 대안모색 움직임 지난해 6월 동국대 앞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 반대시위가 벌어지던 한켠에서 드문 광경이 벌어졌다.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집회와시위에관한법률(집시법) 등을 위반했다며 서울시 경찰청 기동대 중대장을 고발한 것이다. 집회관련 표현물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집회장에서 나오려는 사람들의 출입을 강압적으로 통제했고 이에 항의하는 시민단체 활동가를 밀친 다음 발로 밟았다는 이유였다. 고발당한 중대장도 그렇지만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들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파출소에 사건을 접수시키고 경찰서를 서너차례 드나든 끝에 집시법을 위반한 중대장한테 사과를 받아냈다. 당시 중대장은 ‘본의 아니게 이렇게 돼서 미안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당시 사과를 받아냈던 이들은 인권단체를 중심으로 결성된 ‘경찰폭력감시단’ 소속 활동가들이었다. 대규모 집회·시위가 있을 때마다 인권단체에서 자원자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경찰폭력감시단은 집회·시위현장에서 벌어지는 권한남용과 경찰폭력을 감시하고 공론화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폭력 집회·시위 논란은 그동안 항상 ‘누가 더 폭력적인가’ ‘누가 먼저 폭력을 썼는가’에 치우친 경향이 있었다. 최근 시민사회 일각에서 집회·시위 과정에서 경찰의 역할을 주목하며 적극적으로 경찰문제를 고민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이들은 행정대집행, 집회시위 등 경찰관련 현안을 연구하는데 그치지 않고 경찰개혁까지 고민을 넓혀나가고 있다. 원불교 인권위원회, 다산인권센터, 인권운동사랑방, 평화인권연대, 불안정노동철폐연대, 민주노동당 인권위원회 등을 중심으로 지난 6월 결성된 ‘경찰대응팀’이 바로 그것. 이들은 정기적으로 경찰관련 법규 등을 연구하고 있다. 김치성 원불교 인권위원회 간사는 “한국 사회에서 경찰이 저지르는 폭력은 대단히 중요한 인권문제”라며 “그런데도 경찰을 다루는 연구는 전무하다시피 하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진보와 인권이라는 기준으로 한 경찰론을 구축하려는 게 경찰대응팀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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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9월 5일 오후 15시 2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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