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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뒷얘기/시민의신문 기사

"제종철씨 사인규명위해 진상조사위 구성할 것"

by betulo 2007.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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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중생 범대위 "사인규명 위해 진상조사위원회 구성할 것"
2003/11/21
강국진 globalngo@ngotimes.net

<3신 오후 4시 20분>



제종철 여중생 범대위 상황실 부실장의 죽음과 관련해 여중생 범대위는 성명을 내고 "제씨는 자살할 사람도 아니거니와 당일의 행적과 주변인물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타살임이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여중생 범대위는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여중생 범대위는 성명에서 "경찰이 사인의 정확한 규명도 없이 제씨가 자살한 것으로 추정하며 언론에 이를 유포하고 있다"고 경찰을 비판하면서 "철두철미하게 사인규명에 나설 것을 경찰에 촉구한다"고 밝혔다.



여중생 범대위에서 제씨의 죽음을 의문사로 규정하는 것은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는 판단 때문이다.



무엇보다 제씨가 사고 직전 부인과 통화하면서 "지금 바쁘다. 나중에 다시 통화하자"며 늦은 시간까지 다음 일정에 대해 주변 사람들과 계속 통화를 했다는 점을 들었다. 특히 사고 직전 민주노총 관계자와 동두천 시민운동가들과 만나 다음 약속까지 잡았다는 점을 들어 자살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여중생 범대위는 △자살을 결심한 사람은 선로 위에 눕는 데 반해 선로와 선로 사이에 반듯하게 누운 채 있었던 점 △기차의 밑부분과 지면의 거리가 상당해 두개골에 외상을 주기 어려운데도 두개골 골절이 있는 점 △유서를 작성하지 않은 점 등의 의문점을 제기했다.


강국진 기자 sechenkhan@ngotimes.net



▲사건 당일 제종철씨의 행적


-오후 5시-6시 10분경: 홍재웅(59세, 목수)씨와 함께 있었음. 홍씨와 민주노동당 동두천 양주 지구당을 만드는 문제를 협의. 다음 약속까지 잡고 헤어짐.


-오후 7시 10분: 촛불시위를 시작할 때는 김모 의정부 경찰서 형사만 있어 시위를 원만하게 마무리하자며 집회를 시작함.


-오후 7시 25분경: 김모 의정부경찰서 정보계장이 집회현장에 나타나 집회를 그만두라고 해 제씨와 실랑이 벌어짐.


  <당시 대화내용>


  정보계장-  야간집회는 불법이다. 상부지시니 빨리 해산해라
  고인과 민태호씨- 자진 해산할테니 경고방송은 그만해라.
  정보계장- 20분까지 끝내라
            * 마무리 연설, 노래 부르면서 30분 되어 집회 정리함
            * 집회가 끝나고
  고인- 1년 동안 계속 해왔는데 너무 세게 나오는 것 아니냐
  정보계장- 야간집회는 불법이고 상부에서 지시가 내려온거다. 앞으로는 야간촛불시위를 할 수 없다. (강경한 목소리)
  고인- 의정부 역 앞에서 매일 촛불시위(오후 6시 30분부터 8시 30분까지)를 하고 있다. 그것은 왜 그냥 두는가?
  정보계장- 그것도 앞으로는 못한다.
  고인- 의정부 역 앞에서 못하면 2사단 앞으로 와야겠다.
  정보계장- 촛불시위 할거면 광화문으로 가라
  고인- 이렇게 되면 충돌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
  정보계장- 상부에서 강력 대응하라고 했다. 야간촛불시위 연행하는게 방침이다.
  고인- 앞으로 계속 2사단 앞에서 촛불시위 하겠다.   
-오후 7시 41분: 민태호씨와 전화통화
  고인- 오늘 집회가 계획대로 진행이 되었나?
  민태호씨- 1시간 예정이었는데 경찰들이 독촉해서 일찍 마무리 했다. 계획을 세부적으로 못 짰고 돌아가면서 발언하고 노래하면서 그렇게 정리했다.
  고인- 할건 다 했네.(호탕하게 웃음)
-오후 9시 경: 의정부청년회 회장과 집회 관련해 비슷한 내용으로 통화
-오후 11시 10분 경까지: 민주노총 간부 2인과 사업논의를 하며 소주 3병과 맥주 두 잔을 마심. 취하지는 않았고 아주 밝고 기분 좋은 표정으로 헤어졌다고 함.
-오후 11시 10분 경: 부인과 통화(시댁 진주에 잘 내려갔는지 안부를 묻고, 지금 어디냐는 질문에 의정부라고 대답, 바쁘니 끊자고 얘기 함. 
-오후 11시 53분 경: 의정부역에서 북부역 방향 50미터 지점 철로 가운데에서 사망. (집회장소인 2사단 앞과 의정부역은 승용차로 15분 거리)



▲사건 당시 기관사가 경찰조서에 진술한 내용 (요약)


11시 53분에서 54분경 의정부역에서 정차한 후 의정부 북부역으로 발차하여 약 25미터 가량을 지나 속도가 시속 30-35km정도 붙었을 때 철로 안 중앙에 이상한 물체가 누워있는 것을 발견하고 급제동을 걸었고 30미터 정도를 지나쳐서 열차가 멈춰 섰다.


열차 2번째 칸 중간쯤 아래에 사람이 있었고 시급히 무전으로 보고하고 119에 연락을 취했다. 다음 날 새벽 0시 6분경 열차가 다시 발차하기 전까지 119 구급대원들이 와서 차량 밑으로 들어가 사람을 들어냈다. 119대원들이 주고받는 이야기에서 아직 숨을 쉬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주변에는 가방과 동전 몇 개, 핏자국이 있었다.


기관사는 열차가 지나가면서 부딪히는 충격소리나 진동은 감지하지 못했다. 운전석 앞부터 충격이 있었다면 감지가 됐을 것이라는 것이 기관사의 진술내용이고 사람이 선로중앙에 엎드려 있을 때 전동차 바닥의 장치가 사람신체에 타박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한 판단은 경험이 없어 불가능하다는 것이고 차량의 높이를 고려해서 과학적인 조사를 해보면 판단이 가능할 것이라는 소견을 밝혔다.



▲당시 출동한 119 대원과 여중생 범대위가 면담한 내용


7~8명의 대원이 함께 사건현장에 출동을 했는데 다른 분들은 퇴근해서 만나지 못했고 현장에 있었던 여자분 한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 신고를 받았을 당시 숨을 쉬고 있다는 상황실 무전을 받고 7~8명의 대원이 출동했으나 현장에 가보니 환자는 호흡도 없었고 맥박도 없는 상태여서 심폐소생술을 시도하였다.


고인은 선로 안쪽에  머리를 차량진행 반대방향으로 두고 엎드려 누워있는 상태였고 머리쪽에 핏자국이 있었으나 피가 막 나는 상태이거나 퍼지지는 않은 상태였다. 사건현장에 직접 가서 확인한 바로도 출혈이 많은 상태는 아니었고 침목과 자갈에 조금 떨어져 있었을 뿐이다.


옷은 바지가 무릎 쪽이 찢어진 상태였으며 호흡과 맥박은 없었고 병원에 가서야 두개골 골절인 것을 알았다. 시신의 상태는 차량바닥에 걸리거나 끼인 것이 아니라 가지런한 상태였고 주변에서 핸드폰, 동전, 디스켓을 확인할 수 있었다.


종합적인 당시의 정황은 출동한 대원전체의 말을 들어봐야 세부정황을 파악할 것 같다. 


강국진 기자 sechenkhan@ngotimes.net

2003년 11월 21일 오전 7시 52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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