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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說

아기 낳으면 바로 강제출국

by 자작나무숲 2007. 3. 22.
<2007년 3월21일 짤린 기사>

“단속 걱정없이 자유롭게 바깥출입을 하고 싶어요. 필리핀에 있는 딸도 만나고 싶구요. 저 같은 이주노동자들이 한국 경제에 큰 도움이 되는 건 사실 아닌가요? 일한만큼 대접받고 싶습니다.”


서울시 성동구 송정동에 있는 좁고 어두운 길을 따라 어느 집에 들어선다. 집에서도 모퉁이를 돌아 구석에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가니 단칸방에서 레티(31)씨가 수줍은 듯 웃으며 모습을 드러낸다. 다음달이 출산 예정일이라 몸이 많이 무거워 보이는 레티는 아이를 낳는다는 기쁨보다도 5월14일로 예정된 강제출국이 더 걱정인 듯 가볍게 한숨을 내쉰다.


2001년 9월에 필리핀으로 일자리를 찾아 한국에 온 레티는 종이컵 공장, 칫솔공장, 의류공장 등을 전전하며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지금 그를 기다리는 건 강제출국 뿐이다. 한국에서 만난 남편과 2004년에 낳은 첫 딸은 벌써 ‘강제출국’당했다.


지난달 26일 휴대전화요금을 내러 휴대전화회사 대리점에 들어선 레티에게 낯선 남자가 다가왔다.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이었다. 그는 신분증을 요구했고 레티가 불법체류자라며 체포했다. “나는 임신했으니까 봐달라고 했지만 전혀 통하지 않았어요.”


목동 출입국사무소의 차가운 시멘트와 쇠창살에서 지내는 것은 임신 8개월인 레티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레티의 지인들과 인권단체들이 출산 때까지 만이라도 풀어달라고 하자 출입국사무소는 보증금 1000만원을 요구했다. 레티에겐 너무 큰 돈이었다. 결국 레티는 필리핀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항공사가 임신 32주를 넘긴 여성은 탑승할 수 없다고 통보해 와 그마저도 어렵게 됐다. 결국 출입국사무소는 보증금을 300만원으로 낮췄고 주변의 도움으로 겨우 풀려날 수 있었다.


레티는 2004년에 낳은 첫딸 라니도 필리핀에 있는 친척에게 맡겼다. 당시 합법신분이었던 레티는 “아이를 필리핀으로 보낼 때 출입국사무소에 벌금 10만원을 냈다.”면서 “부모가 합법신분이라도 아이는 자동으로 불법신분이 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확인결과 ‘과태료’ 10만원은 레티가 행정당국에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제때 출생신고를 기한내에 했으면 됐는데 한국말도 서툴고 한국 법제도를 제대로 몰라 생긴 오해였다. 그럼에도 단속에 걸려 차가운 콘크리트에 갇혔던 레티의 마음속에 굳은 “한국은 비정한 국가”라는 인식은 쉽게 없어질 것 같지 않았다.


레티는 “딸이 있는 필리핀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필리핀에서는 일자리가 없다.”면서 “한국에 남아 돈을 벌고 싶다.”고 말했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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