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종횡사해/한반도-동아시아

바람 잘 날 없는 9·19군사합의, "안보공백 초래" 주장 따져보니

by betulo 2023. 10. 12.
728x90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 방공망을 뚫고 기습공격에 성공한 것을 계기로 정부·여당은 9·19 남북군사합의 효력정지 추진 여론전에 나서고 있다.

9·19 군사합의에서 규정한 비행금지구역 탓에 우리 군의 대북 감시·정찰자산 운용에 제약이 생겼고, 북한(정식명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이하 조선)의 임박한 도발 징후를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한미동맹의 첨단 감시정찰자산으로 북측 움직임을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는데도 정부·여당이 이스라엘·하마스 무장충돌을 빌미로 효력정지 명분을 삼으려 한다는 지적과 함께 9·19 합의가 없어지면 남북 우발적 충돌을 막을 방안이 없다는 점에서 논란은 이어질 전망이다.

신원식(국방부 장관)은 11일 육군 지상작전사령부 대화력전수행본부를 방문해 “9·19 군사합의로 인해 대북 우위의 감시정찰 능력이 크게 제한됐고, 국가와 국민의 자위권이 위협받고 있다”고 밝혔다. 신원식은 전날 “최대한 신속하게 효력정지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전날 국방부 기자실을 방문한 자리에선 “9·19 군사합의에 따른 비행금지구역 설정으로 북한의 임박한 전선지역 도발 징후를 실시간 감시하는데 굉장히 제한된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달 25일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국회 국방위원회에 보낸 답변서에서도 “9·19 군사합의로 인한 군사적 취약성이 매우 많다”면서 ‘비행금지구역 설정으로 대북 감시정찰 능력 저하 및 근접정밀타격 제한’을 첫번째 근거로 꼽았다.

9·19 합의에 따라 남북은 군사분계선(MDL)을 기준으로 고정익항공기는 동부와 서부 각각 40㎞와 20㎞, , 무인기는 동부와 서부 지역 각각 15㎞와 10㎞, 회전익항공기는 10㎞, 기구는 25㎞를 비행금지구역으로 설정했다. 이를 문제삼는 이들은 유사시 휴전선 인근에 배치된 300여문의 조선인민군 장사정포는 취대 위협으로 간주되는데 감시정찰자산 활동이 제한된 탓에 임박한 도발 징후를 포착하기 어려워 선제 타격이 여의치 않다는 논리를 편다. 가령 신종우(국방안보포럼 사무국장)는 "감시정찰자산은 다다익선이다. 많을수록 더 효과적이다. 특히 근접정찰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면서 "그런 점에서 본다면 비행금지구역은 감시정찰능력에 제약이 된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과연 이 주장은 얼마나 타당할까. 반론을 들어봤다. 군사합의 당시 공군참모총장이었던 정경두(전 국방부 장관)는 “정찰기 띄워서 눈으로 적군을 살피던 시대라면 비행금지구역이 큰 의미가 있겠지만 지금은 21세기"라고 꼬집었다. 그는 "우리 군과 주한미군은 비행금지구역을 무시해도 될 수준의 최첨단 감시정찰자산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비행금지구역 자체는 군사합의 이전부터 존재했다. 유엔사에서는 군사분계선 남쪽 5마일을 기준으로 비행금지구역을 운영해왔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군 관계자는 “현재 군에서 보유한 공중정찰자산은 충청남도 상공에서도 북한 전역의 항공기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신원식의 주장 자체가 '육군 중심 사고방식'이라는 비판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전 국방부 고위관계자는 “비행금지구역에 초점을 맞추는 건 전형적인 육군, 그것도 20세기 육군 사고방식”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비행금지구역으로 인해 감시정찰에 영향을 받는 건 사실상 육군에서 운영하는 무인기 ‘송골매’ 정도밖에 없다. 송골매는 정찰 가능 거리가 5㎞가 채 안된다”면서 “군사합의 이전에도 송골매는 감시정찰에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비행금지구역은 군사분계선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한강하구부터 백령도에 이르는 지역은 적용대상이 아니다”면서 “그 지역은 공중정찰이 중요하기 때문에 일부러 군사합의에 포함시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비행금지구역 문제와 관련해선 유엔군사령부에서 어떻게 보는지도 중요하다. 정경두는 “유엔군사령부에서도 군사합의 때문에 작전에 영향을 받는 건 없다고 결론내렸다”고 밝혔는데, 이는 2018년 당시 국방부 발표와도 일맥상통한다. 국방일보는 2018년 10월 12일 보도에서 국방부 관계자를 인용해 “판문점 선언 이후 9·19 군사합의 체결을 위한 남북장성급(실무)회담 개최 전후 유엔사 및 주한미군 측과 수십 차례에 걸쳐 고위급 및 실무급 차원의 긴밀한 협의를 진행했다”면서 “특히 비행금지구역 설정 등을 포함한 지상·해상·공중에서의 상호 적대행위 중지 관련 내용은 남북 간 최초 논의단계부터 유엔사 측에 정보공유 및 의견수렴 과정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9·19 합의의 효력을 정지한다면 우발 충돌을 어떻게 막을 수 있는지도 문제다. 한미연합사 부사령관(대장) 출신 김병주(더불어민주당 의원)는 라디오에 출연해 “하마스 공격과 9·19 합의는 함수관계가 없다”면서 “효력을 정지한다면 우발적 충돌이나 훨씬 많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엽(북한대학원대 교수)도 “9·19 합의는 군사적 충돌을 예방할 수 있는 마지막 안전핀”이라고 밝혔다.


북측에서 협상 당시 무리한 요구했다?

최근에는 9·19 군사합의 협상 과정에서 북측의 무리한 요구사항이 단편적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을 부추겼다.

가령 '일부' 정부여당에서 흘리고 '일부' 언론에서 '단독기사'라며 보도하는 것 중에는 북측이 사전협상 격인 2018년 6월 남북장성급 회담 등에서 군사분계선(MDL) 기준으로 60㎞까지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고, 이 구역에서 공대지 유도무기 사격훈련을 하지 말라는 요구를 했다는 주장도 있다. 당시 남측 협상단은 북 요구를 거부하지도 않고 검토를 지시했고, 이에 합동참모본부가 반발하는 등 협상이 졸속으로 진행됐다는 의혹 제기까지 ‘국회 국방위, 합동참모본부 관계자 발(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주장은 과연 얼마나 신빙성이 있을까. 취재 결과, 북한이 협상 당시 비행금지구역과 공대지미사일 사격훈련 중단 등을 요구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국방부 역시 “북한이 협상과정에서 우리 측의 대북 군사대비태세를 약화시키기 위한 다양한 요구를 한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한 국방부 관계자는 “‘다양한 요구’ 중에는 MDL 60㎞이내 공대지훈련 내용도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조선이 협상장에서 무리한 요구했다고 해서 그 자체로 문제가 되는 건 결코 아니다. 실제 9·19 군사합의 결과물에는 반영되지 않았다는 게 중요하다. 

2018년 협상 상황에 밝은 군 관계자는 협상 과정에서 북측의 무리한 요구를 확대 해석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당시 북한이 협상 초기에 기선 제압하기 위해 무리한 요구 내놓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국방부 고위관계자는 “비행금지구역 요구는 당시에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도 않았다”면서 “북한 요구대로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면 서울 이남까지 전투기가 못다니게 되는데 말이 되겠느냐”고 말했다.

2018년 국방부 대북정책관 자격으로 남북장성급회담 수석대표를 맡았던 김도균은 “우리도 북한이 보기에 말도 안된다고 할 만한 상상 이상의 요구사항 여러 가지를 제기했다”면서 “(북측이) 던졌던 의제 가운데 하나만 쏙 빼서 전부인 양 얘기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남측 대표단이 협상 중 북측 요구에 반대 의견을 내지도 못했고, 국방부와 합참의 의견대립이 거셌다는 주장 역시 신뢰도가 떨어진다. 당시 남북회담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특히 북과의 협상에선 말도 안되는 요구라도 일단은 끝까지 들어줘야 한다. 중간에 말을 끊게 되면 ‘다 듣고 얘기하라. 협상 자세가 그게 뭐냐’며 회담 자체가 공전하기 쉽다”고 설명했다. 국방부와 합참의 갈등설에 대해 김도균은 “국방부와 합참, 해군 관계자들이 함께 먹고 자면서 준비했다. 의견대립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서울신문 2023년 9월21일자10월12일자 기사를 바탕으로 수정보완했음.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