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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4. 20. 18:18

'무상' 화장실


 4년 전 취재를 위해 영국 런던을 방문했을 때 “런던에서 가장 붐빈다”는 워털루역을 찾은 적이 있다. 영화 ‘본 얼티메이텀’에 등장하는 현장을 직접 보고 싶어서였지만 정작 눈길을 사로잡은 건 그 넓은 기차역 한가운데 자리잡은 공중화장실이었다. 화장실 입구에는 30페니, 한국 돈으로 500원 가량 내라고 큼지막하게 써 있었다. 한켠에는 동전 교환기도 있었다. 투덜대며 화장실에 들어섰다.

 지하철 개찰구처럼 돼 있는 곳에 동전을 넣으려고 보니 고장났다고 적힌 팻말이 걸려 있었다. 결국 돈을 내지 않고 화장실을 이용하면서 쓴웃음만 났다. 가뜩이나 맛없는 음식과 비싼 공공요금, 끔찍하게 느리고 비싼 인터넷환경에 지쳐있던 외로운 여행객은 고장난 유료 화장실을 보며 “유럽은 도버해협에서 끝난다”는 말을 되뇌었다.

 내 눈엔 공공장소 화장실조차 수익성으로 따지는 영국식 신자유주의와, 그마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영국의 현실을 보는 듯했다(런던 워털루역에서 느낀 영국의 비극과 희극). 영국 드라마 ‘셜록’에 등장하는 매력적인 도시와 직접 경험한 런던은 너무나 달랐다.


 외국에 갔다가 화장실 때문에 낭패를 봤다는 경험담을 손쉽게 들을 수 있다. 누구나 아무때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중화장실은 한국에서나 가능한 얘기일 뿐이다. 프랑스 파리에서 일하는 코트라 관계자는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있으면 일단 들어가서 무조건 볼 일을 보는게 유럽에 살면서 터득한 '생활의 지혜'"라고 얘기해주기도 했다. 

  우리는 깨끗한 공중화장실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한다. 가까운 지하철역이나 공원, 웬만한 큰 건물, 하다못해 식당이나 가게에서도 큰 문제 없이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유럽이나 미국만 해도 공중화장실을 찾는 것 자체가 쉽지 않고, 식당이나 가게 화장실은 손님한테만 열려 있을 뿐이다.

 한국은 화장실에 관한 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무상’ 정책을 시행하는 나라가 아닐까 싶다. 이런 ‘무상’ 화장실은 외국인들한테도 유명세를 타고 있는 듯 하다. 최근 한 지인은 공원에 놀러갔다가 우연히 외국인 관광객을 만났는데 그 관광객은 건축학도로서 “한국의 공중화장실을 직접 관찰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고 한다. 혹자는 새로운 한류상품이나 되는 양 자랑스러워할지도 모르겠지만 무상급식 논란에 대입해도 그런 말이 나올지 의문이다.

 왜 정부는 내외국인 가리지 않고, 소득과 상관없이, 수급자의 자격을 따지지 않는 ‘무상’ 화장실을 없애지는 못할 망정 더 늘리려고 하는 것일까. 왜 우리는 ‘이건희 손자’에게도 공짜로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혜택을 주는 것일까. “간디학교 같은 귀족학교” 학생들까지 무상으로 공중화장실을 이용하게 하는 것은 낭비 아닌가.

 ‘무상’ 화장실은 국민들을 “노예의 길”로 이끈다는 비판도 가능할 것이다. 사회주의적 정책 때문에 국민들이 자기 집이 아니라 밖에 나와서 볼 일을 보는 바람에 막대한 예산낭비를 초래한다. 무상 화장실만 자꾸 만드는 정책은 "복지과잉으로 가면 국민이 나태해진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괄약근 조절운동이 건강에도 좋다는데 '어딘가 화장실이 있겠지' 하는 안일한 마음으로 운동을 게을리하게 만드는건 국민건강에 도움이 안된다. 

대안으로 저소득층만 무상으로 공중화장실을 이용하게 하는 건 어떨까. 자신이 얼마나 가난한지 증명을 하지 못하면 바지에 실례를 해도 별 수 없다. 화장실마다 관리인도 필요하겠다. 아니면 공중화장실을 민간에 위탁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꼭 그게 아니더라도 화장실 운영으로 인해 누적되는 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경영평가를 강화하는 조치도 필요하다.(여기) 최근 다시 울려 퍼지는 무상급식 비난 목소리를 듣다보니 다음 차례는 ‘무상’ 화장실이 아닐까 싶다.

2015년 4월20일자 서울신문에 실린 기자수첩을 수정보완한 글입니다.  


국민 세금으로 만든 이렇게 좋은 공중화장실을 이건희 손자가 돈 한 푼 안내고 이용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1) 똥오줌 앞에선 모두가 평등하다 (2) 이건희 손자에게 똥오줌값을 받아야 한다. (3) 이건희 손자는 어차피 이런 화장실 이용 안한다.




Trackback 0 Comment 14
  1. BlogIcon Jkc 2015.04.26 02:50 address edit & del reply

    대체로 영국은 공중 화장실 시설이 잘 되어 있고 휴지도 언제나 비치되어 있습니다. 경험하신 영국 특히 런던 중심지역의 화장실은 관광객등 사람들이 유독 붐비는 곳에 위치해 있어서 그런 건 아닌가 싶네요.

    • BlogIcon 자작나무숲 2015.04.27 14:03 신고 address edit & del

      사람이 가장 붐비는 곳이 바로 공중화장실이 가장 필요한 곳이 아닐까 싶습니다. ^^

  2. BlogIcon 나는느 2015.04.26 13:52 address edit & del reply

    왜 한국사람들은 가진자들을 괴롭히지 못해서 난리인가? 무상복지에는 반대의견은 공감하나 왜 이건희 손자를 걸고 넘어져야하는지 의문. 부자는 무상화장실도 이용하지 말란 말인가? 솔직히 까고 말해서 그들을 까는 서민들보다 수백 수천배의 세금을 더내는데?

    • BlogIcon 보노 2015.04.26 21:36 address edit & del

      이 글의 위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신것 같군요. 무상급식 논란이 있을때 "이건희손자도 공짜로 밥먹어야 하나?" 라는 말도 안되는 논리를 희화한 글입니다. 말씀하신대로 더 버는 사람이 세금을 더 많이 내고, 복지는 평등하게 받으면 그만이라는 얘기죠. 누진세+보편적 복지라는 심플한 정답이 있는데도, 감정적으로 선동하는 이상한 논리에 휘둘리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 BlogIcon 자작나무숲 2015.04.27 14:04 신고 address edit & del

      뭐 제가 하고 싶은 대답은 보노님께서 대신 해주셨으니 제 대답은 그걸로 갈음이 될 듯 합니다. ^^

  3. BlogIcon 보미동 2015.04.26 22:40 address edit & del reply

    특정인을 지칭해서 이야기를 하는건 잘못된거죠..보편적인란 논리도 사실 모순입니다..
    강자를 잡으려면 동등한 힘을 가져야 할겁니다..

    모두가 평등한 사회는 공산주의를 의미합니다..공산주의를 따라 북으로 간 사람들의
    지금의 모습을 어떻게 생각 하시는지요?

    • BlogIcon 자작나무숲 2015.04.27 14:11 신고 address edit & del

      맞습니다. 이명박, 이재오, 정운찬 등등 비판받을 사람 아주 많습니다.

  4. BlogIcon 보미동 2015.04.26 22:40 address edit & del reply

    특정인을 지칭해서 이야기를 하는건 잘못된거죠..보편적인란 논리도 사실 모순입니다..
    강자를 잡으려면 동등한 힘을 가져야 할겁니다..

    모두가 평등한 사회는 공산주의를 의미합니다..공산주의를 따라 북으로 간 사람들의
    지금의 모습을 어떻게 생각 하시는지요?

  5. BlogIcon ㅎㅎ 2015.04.27 09:19 address edit & del reply

    풍자 재밌네요 ㅎㅎ

  6. BlogIcon jh 2015.04.28 14:20 address edit & del reply

    화장실은 편위를 위한 일종의 공공재인데 비유가 잘못되었네요.

    • BlogIcon 자작나무숲 2015.04.28 16:17 신고 address edit & del

      적어도 한국에서 화장실은 공공재이고, 정부가 국민들에게 당연히 제공해야 할 기본적인 서비스라는게 상식처럼 돼 있지요. 하지만 그 역시 제도적/담론적 맥락 속에서 구성된 겁니다. 니 괄약근은 니가 알아서 해라 하는 곳이 적지 않습니다. 똥싸고 싶으면 돈내라 하는 곳도 많고요. 제 고민이 시작하는 지점은, 화장실이 국가의 의무로서 무상으로 제공하는 곳이 될 수 있다면 학교급식이나 보육료, 아동수당과 병상수당이라고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겠는가 하는 겁니다.

  7. BlogIcon 김풍 2015.04.28 15:07 address edit & del reply

    무슨말씀을..한국의 공중화장실은 엄청 더러웠습니다.
    일본사람들이 항상 한국에 오면 하는말은 같습니다.
    음식은 맛있다. 하지만 화장실은 최악이다 라고
    그만큼 화장실이 더러웠고 그게 나라의 이미지까지
    이어지게 된다고 생각해서 요즘은 고쳐가는중이 아닐까
    좋게 바라보는 입장입니다만~~

    • BlogIcon 자작나무숲 2015.04.28 16:19 신고 address edit & del

      말씀대로, 예전에 화장실 너무 더럽고 지저분해서 들어가기도 싫었던 기억이 납니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에 보면 화장실에서 뇌물 나누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때 화장실이 그 시대에 비하면 오히려 깨끗해 보일 정도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