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소에서 일하는 간호사 이모씨는 다음달부터 소아 폐렴구균 예방접종을 무료로 해주기로 했다는 소식을 발표 다음날 신문보고 알았다. 예방접종 시행을 위해 필요한 백신을 확보하고 주민들에게 홍보하는 모든 업무가 이씨 몫이다. 그는 이 모든 준비를 20일 안에 마쳐야 한다. 심지어 예방접종을 위해 필요한 예산조차 새로 계산해서 마련해야 한다. 이제는 놀랍지도 않다.
“보건소 근무 10년차인데 항상 이런 식이거든요. 예산이요? 추경을 하든가 예비비를 쓰든가 그것도 아니라면 지방채라도 발행해야겠지요. 정부에선 나중에 지방재정건전성 악화됐다며 난리치겠죠 뭐.”
보건복지부가 10일 발표한 ‘소아 폐렴구균 무료접종 시행’을 두고 지방자치단체가 속앓이를 하고 있다. 이들도 그동안 정부지원이 없었던 소아 폐렴구균을 무료접종 대상으로 지원한다는 취지엔 동의한다. 하지만 정부가 변변한 재원마련 대책이나 의견수렴도 없이 사업시행 20일 전에 덜컥 발표해 놓고는 지자체에겐 무조건 시행하라고 하는건 너무 심한것 아니냐고 입을 모은다.
정부는 무료접종 시행 재원을 국고보조사업으로 하기로 했다. 국고보조율은 서울 30%, 지방 50%로 돼 있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사업비 중 77억원만 국비에서 지원받고 시에서 94억원, 구에서 85억원을 새로 마련해야 한다. 경기도는 절반인 177억원은 국가지원을 받지만 나머지 절반은 도와 시군이 1:2로 배분해서 조달해야 한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시 자치구 관계자는 “폐렴구균은 4회 접종해야 하는데 접종비가 약 50~60만원이나 되는 최고가 백신”이라면서 “무료접종을 위해서는 약 4억원을 새로 마련해야 하는데 병원에 외상이라도 져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복지부에 ‘한시적으로 올해만이라도 국비추가지원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복지부에선 ‘법규에 없다’며 거부했다”고 말했다.
복지부에서 지자체에 너무 촉박하게 통보하는 바람에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해강 경기도 복지예산팀장은 “올해 예산안을 편성할때는 물론 예산을 확정할 때까지도 정부에선 폐렴구균 접종사업 얘길 해주지 않았다”면서 “정부가 사업시행결정을 발표한 같은 날 우리에게 통보해줘서 준비하는데 여유가 너무 없다”고 말했다. 이씨는 “솔직히 정부가 사업시행 한 달 전에만 통보해주기만 해도 더 바랄 게 없다”면서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주민들에게 홍보를 하는 것도 무책임한 노릇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용어설명: 폐렴구균
급성 세균감염 질환으로 세균성 폐렴·뇌막염·중이염의 주요 원인이 된다. 직접 접촉이나 기침·재채기로 전파되고, 고열과 호흡곤란 혹은 구토 증상을 보인다. 생후 2개월 이상 만 5세 미만 소아에게 접종하면 예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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