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취재뒷얘기/시민의신문 기사

“이주노동·인신매매 경계 불명확해진다” (2004.9.15)

by betulo 2007. 3. 16.
728x90
“이주노동·인신매매 경계 불명확해진다”
렉스 바로나 아시아이주노동자센터 사무국장
2004/9/15
강국진 globalngo@ngotimes.net

“이주노동을 합법화해야만 국제적 인신매매를 줄일 수 있다. 그것이 인신매매를 강력하게 단속하는 것보다 더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이주노동을 규제하면 할수록 인신매매는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13일부터 서울에서 열리는 제9차 아시아이주노동자회의에 참가하기 위해 홍콩에서 서울을 찾은 ‘렉스 바로나’ 아시아이주노동자센터 사무국장은 아시아에서 이주노동과 인신매매의 경계가 점점 애매해진다고 경고한다. 그가 이번 아시아이주노동자회의에서 발제한 발표문 제목도 ‘모호한 이주노동과 인신매매의 경계’였다. 바로나는 “인신매매란 자신들의 이득을 목적으로 하는 알선업체를 통해 불법으로 은밀하게 입국이 이뤄지는 것”이라며 “그 과정에서 강제와 협박이 이뤄진다”고 규정했다.

 

“아시아에서 이주노동자 대부분은 가사노동이나 공장노동, 성산업에 종사한다. 고용주들은 계약서가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이들과 고용주의 관계에 강압적인 부분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주노동과 인신매매를 명확하게 구분한다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밀입국은 문제를 더 복잡하게 한다. 알선업체들은 금전적 이득을 목적으로 밀입국을 알선하기도 한다. “넓은 의미에서 이것이 밀입국인지 이주노동인지 인신매매인지 모호하기만 하다.”

 

인신매매의 지구화?

 

그렇다면 자신의 의사에 반해 부모의 결정으로 국제결혼하는 경우도 인신매매에 들어갈 수 있을까? 도로 주변 곳곳에서 “착하고 아름다운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세요”라고 써 놓은 플랭카드를 볼 수 있다. 돈을 매개로 한 결혼에는 이를 통해 돈을 버는 알선업체가 있다. 바로나는 “사실 그 문제는 오랫동안 논쟁꺼리”였다고 털어놨다. “사랑으로 맺어진 결혼이라면 인신매매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누가 그 사랑을 결정할 것인가.”

 

물론 아시아이주센터가 모든 이주노동을 넓은 의미에서 인신매매에 따른 강제노동 피해자라고 말하는 건 아니다. 바로나는 “홍콩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 대부분이 여성”이라며 “인신매매만 부각하게 되면 모든 이주노동자가 인신매매 피해자인 것처럼 오해받을 수도 있다”고 경계했다.

 

국경을 넘나드는 인신매매는 철저하게 음지에서 이뤄진다. 사회단체에서 정확한 통계를 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아시아이주노동자센터는 그럼에도 꾸준한 상담을 통해 국제 인신매매의 양상을 파악해 왔다.

 

태국, 버마, 베트남 등에서 한국, 일본, 대만 등으로 유입하는게 아시아 이주노동의 흐름이다. 인신매매도 예외는 아니다. 이주노동자 가운데 많은 수가 여성인데 브로커들은 제대로 된 계약을 체결하지 않거나 거짓 계약을 맺어 여성들을 유입국으로 데려간 다음 성산업이나 가사노동에 종사하게 한다. 바로나는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중국, 필리핀, 태국 등지에서 유럽, 미국 등으로 가기도 한다”며 “인신매매는 전지구적 차원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바로나는 “동남아시아 송출국의 경우 딸을 가진 부모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며 “부모들은 딸을 내보낼 때 수수료를 목돈으로 받는다”고 지적했다. “이 경우 피해여성의 부모도 피해자가 된다.” 이주노동자가 되기 위해선 큰 돈을 빚내 브로커에게 줘야 하기 때문이다.

 

           13일부터 19일까지 서울에서 열리는 제9차 아시아이주노동자회의는 이주노동자 관련

              단체활동가와 연구자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이주노동자운동을 모색하는 회의다. 이번 아시

              아이주노동자회의에는 19개 나라 70여명, 국내에서 70여명이 모였다.


바로나는 타이완을 예로 들었다. “타이완에는 베트남 여성 이주노동자가 5천명 이상이나 된다. 나이 지긋한 타이완 남성이 베트남에 가서 결혼 상대자를 찾는 것처럼 속여 베트남 여성들 타이완으로 데려온다. 베트남 여성이 막상 타이완에 가보면 결혼은 휴지조각이 되고 성산업에서 일할 수밖에 없게 된다.” 바로나는 “이와 비슷한 유형이 필리핀과 태국에서 1980-90년대에  매우 많았다”고 말한다.

 

바로나는 요즘 두드러진 다른 예를 들려줬다. “인도네시아 미성년자 여성들이 싱가포르나 홍콩, 말레이시아, 중동 지역 가정부로 많이 유입한다. 그 과정에서 제대로 된 임금정보, 근로조건을 알리지 않고 나이를 속여 유입국으로 데려간다. 그러나 막상 유입국에 가보면 들었던 것과 상황이 너무나 다른 경우가 많다.”


한국, 시민사회는 좋은 본보기 정부는 나쁜 본보기

 

홍콩에서 오랫동안 이주노동자들의 인권과 지위향상을 위해 노력해온 바로나. 그는 한국의 이주노동자상황과 운동을 어떻게 생각할까?

 

그는 곧바로 “아시아이주노동자포럼(MFA)에서는 한국을 좋은 본보기로 인식한다”고 추켜세운다. 그는 “한국은 미등록노동자 비율이 높고 근무환경이 안좋다”고 꼬집으면서도 “시민단체가 많은 노력을 한 덕분에 많은 진전을 이뤘다”고 말했다. 바로나는 한국에서 시민단체가 이끈 가장 큰 업적으로 의료보험 적용을 미등록 노동자에게까지 적용한 점을 들며 “아시아 다른 나라에선 찾아볼 수 없는 경우”라고 말했다. 그는 “아시아 경제위기 이후 한국내 모든 사람들이 자기만 생각하기 급급할 때 한국 활동가들은 이주노동자 합법화를 위해 노력했다”며 그걸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표현했다.

 

“한국 시민사회단체가 199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운동을 벌였기 때문에 한국정부는 외국인노동자를 들여오는데 신중해졌다. 필요하면 그냥 데려왔다가 필요없으면 쫒아버리면 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이제는 이주노동자를 신중하게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함부로 내쫓을 수 없으니까 말이다.”

 

“이주노동자들과 관련한 한국운동은 짧은 시간에 급성장했다. 그러나 한국정부의 정책은 너무나 뒤쳐져 있다.” 바로나는 한국정부를 비판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는 대표적인 사례로 “한국정부가 여전히 작년에 발표한 유엔 이주민협약을 비준하지 않았다”는 점과 “산업연수생제가 지금도 남아있다는 점”을 들었다.

 

바로나는 앞으로 이주노동자운동이 가야할 방향을 묻는 질문에 “국제연대를 위해 시민단체들이 각국 정부에게 공통된 인식을 갖도록 운동을 해야 한다”고 단언했다. 그는 “아시아에서 다섯 나라만 이주민협약을 비준했으며 그것도 모두 송출국”이라고 꼬집은 뒤 “공통된 상황인식을 기초로 한 국제연대를 통해 각국 정부가 ILO나 유엔이주민협약을 비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각국 정부는 국제회의에서 항상 자기나라를 예외로 해달라고 한다. 우리는 그러지 못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인권에 예외는 없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2004년 9월 15일 오전 11시 36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