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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생각

통일세? 독일 방식이라면 찬성한다, 하지만...

by betulo 2010.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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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8․15경축사에서 ‘통일세’를 언급했다. 그는 “통일은 반드시 온다. 그날을 대비해 통일세 등 현실적인 방안도 준비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며 “이 문제를 우리 사회 각계에서 폭넓게 논의해 주기를 제안한다.”고 말했다.

통일세는 말 그대로 세금의 일종이다. 국가정책 차원에서 재원이 필요할 경우 세금을 신설하는 건 원칙적으로 반대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분단 상황에서 ‘통일’을 염두에 둔 목적세를 신설하겠다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우선 방법이 문제가 된다. 직접세로 할까 간접세로 할까. 세금을 걷는 목적도 고려해야 할 뿐 아니라 다른 정책과 충돌할 가능성은 없는지 ‘정책일관성’도 따져봐야 한다. 물론 상대방인 북한의 반응도 고려해야 한다.


1. 독일식으로 할까 부가가치세 인상으로 할까

내 의견을 피력하자면 나는 독일식으로 통일세를 신설하는 것에는 찬성한다. 하지만 정부가 그렇게 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0%라고 본다.

먼저 독일식 통일세가 어떤 것인지 알 필요가 있다. 작년 11월30일에 블로그에 올렸던 글을 인용해본다. (http://www.betulo.co.kr/1439)

독일은 통일 이듬해인 1991년 개인소득세와 법인세의 7.5%를 1년 기한으로 추가징수했다가 1992년 폐지했습니다. 하지만 이 세금을 1995년 다시 도입해 지금까지 시행하고 있죠. 세율은 1998년부터 소득세나 법인세의 5.5%로 낮아졌고요. 독일은 통일 이후 20년 동안 옛 동독지역에 1조 유로(1741조원) 이상의 예산을 지원했으며 이중 1850억유로는 통일연대세를 통해 거둬들인 것입니다.

위키피디아에서 독일 세금제도를 검색해보니 “소득세의 5.5% 비율로 추가부담하는 이른바 연대세(Solidaritaetszuschlag)”에 대한 항목이 나옵니다. 만약 당신의 소득세율이 25%라면 여기에 연대세율 5.5%를 추가부담한다. 결국 최종소득세율은 25*5.5=26.375(%)가 됩니다.

우베 뮐러가 쓴 <대재앙 통일>(이봉기 옮김, 2006, 문학세계사)에 따르면 통일 당시 재정을 마련하는 방법은 재정지출 축소, 세금인상, 부채에서 충당 세 가지가 있었는데 서독 정부는 당장 편한대로 부채에서 끌어다 통일사업 재원을 마련했다고 합니다.

“서서히 재정압박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1991년 4월 실업보험 납입액이 상승하더니, 1994년 1월에는 연금보험금이 상승했다. 1991년 3월에는 걸프전을 핑계로 전후 사상 최대의 세금인상이 취해졌고, 1994년 유류세가 도입되었다. 1992년 시한이 만료되어 폐기되었던 특별세인 '연대세(Solidaritatszuschlag)'가 1995년 다시 부활되어 무기한으로 연장되었고, 현재 소득세의 5.5%를 차지하고 있다(163~164쪽).”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독일식 ‘통일세’는 직접세라는 점이다. 이는 쉽게 말해 돈이 더 많을수록 세금을 더 내게 돼 있다. 그래서 독일식 통일세라면 찬성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독일식 통일세는 현 한국 정부의 정책기조인 ‘부자감세’와 정면으로 상충된다는 점이다.

소득세와 법인세를 인하하고 종합부동산세 체제도 사실상 무너뜨린 현 정부에게 ‘부자감세’는 ‘종교 교리’나 다름없다. 오는 2012년에는 추가 감세도 예정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사실상 ‘증세’를 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보는 것이다.

직접세 방식이 아니면서 세금을 신설하겠다면 남는 방식은 간접세, 즉 부가가치세 인상이 가장 유력하다. 현 정부 들어 정부의 의중을 가장 잘 전달한다는 평가를 받는 동아일보는 16일자에서 <통일세 신설때 ‘부가세 인상안’ 유력>이란 기사를 내보냈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청와대 사정에 밝다는 한 여권 관계자는 “부가세를 2, 3% 포인트 올리는 형식이 가장 효과적이다.”라고 말했다. 현행 10%인 부가가치세 비중을 12~13%로 인상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동아일보도 지적했듯이 부가가치세가 중․저소득층에 더 큰 부담이 된다는 점이다. 전에도 지적했듯이 “소득세를 올리면 돈을 더 많이 버는 사람일수록 더 많은 세금을 내게 된다. 과속딱지는 ‘공식적으로는’ 티코와 리무진을 구분하지 않는다.” (http://www.betulo.co.kr/1485)

2.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통일세를 거두는 목적이 과연 무엇인지, 그리고 기존 정책과 충돌할 가능성은 없는지 등도 중요하게 살펴야 할 문제다.

뷰스앤뉴스는 “일각에서는 4대강사업 등으로 재정건전성이 급속 악화되면서 정부 일각에서 거론돼온 부가가치세 인상이 여론의 반발에 직면하자 통일세 신설로 변형된 게 아니냐는 해석까지 낳고 있어 거센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66313)

부자감세를 하고 나서 부족해진 재원을 간접세로 메꾸는 것은 사실 수십년전 영국 대처 정부가 보여준 적이 있다. 미국에서도 레이건 정부는 부자감세 이후 주정부 지원금과 복지혜택을 깎는 방식으로 부족해진 재원을 마련했던 전례가 있다.

동아일보는 청와대 관계자를 인용해 “남북협력기금은 분단상황을 관리하는 기금이고, 통일세는 훗날 통일 이후에 쓸 돈”이라고 말했다는데 말장난도 이정도 수준이면 예술의 경지다.

남북협력기금은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설치한 기금이다. 남북협력기금법 제8조(기금의 용도)를 보면 주된 용도는 다음과 같다.

http://likms.assembly.go.kr/law/jsp/Law.jsp?WORK_TYPE=LAW_BON&LAW_ID=A1293&PROM_NO=10303&PROM_DT=20100517&

△남북한 주민의 남북 간 왕래

△문화·학술·체육 분야 협력사업

△교역 및 경제 분야 협력사업 촉진

△위 사업 추진 중 경영 외적인 사유로 인한 손실을 보상하기 위한 보험

△민족의 신뢰와 민족공동체 회복에 이바지하는 남북교류·협력 사업

 

쉽게 말해 남북협력기금은 분단을 관리하는 기금이 아니라 통일을 준비하는 기금이다. 기금이란제도 자체가 ‘특수한 때, 특수한 목적’을 위해 별도 통장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남북협력기금으로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간 대북인도적지원하려고 할 때 ‘퍼주기’라며 결사반대해서 발목 잡았던 게 누구였나? 그 중 한 명이 현 대통령인건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결국 10년간 북한에 정부 차원에서 현물지원한 게 2조원 가량이다.


이런 상황에서 통일세를 신설한다는 것은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대북인도적지원이 묶이면서 남북협력기금이 거미줄 치는 현 상황에 대한 고민부터 필요하다.

3. 북한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상대방인 북한이 어떻게 반응할지도 중요한 지점이다. 오마이뉴스는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를 인용해 이렇게 전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430938&PAGE_CD=N0000&BLCK_NO=3&CMPT_CD=M0006)

“뜬금없이 통일세를 논의하자는 것은 북한 붕괴론이 그 배경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 어떤 경로와 과정을 거쳐 통일로 가느냐에 따라 통일비용은 달라지는 것 … 김대중 정부에서 남북 교류협력의 확대를 통해 사실상의 통일상태를 만들어가자고 한 것은 이것이 통일비용을 줄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 남북관계를 악화시키면서 통일비용을 극대화해온 현 정부가 통일세를 만들자는 것은 그 비용을 국민들이 부담하라는 것”

뷰스앤뉴스는 15일 일본 언론을 인용해 "MB의 통일세 제안에 북한 강력 반발할듯"이라고 보도했다. (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66332)

이 보도에 따르면 일본의 <마이니치> 신문은 인터넷판에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건강 악화와 권력승계에 의한 북한 정세의 급변을 전제로 한 제안으로 북한의 강한 반발이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이 대통령 제안의 배경이 되는 것은 2008년 여름이래 뚜렷해진 김 위원장의 건강악화다. 여기에다가 북한이 내달 개최를 예고한 '노동당대표자회'에서 김 위원장의 3남 김정은에게 권력승계 준비가 표면화되면 북한은 불안정한 체제이행기에 들어서면서 한반도정세에는 긴장이 계속될 전망” 신문은 “이와 함께 국민에게 단결을 호소함으로써 정권의 구심력을 높이는 기대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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