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감세 정책을 지지했던 것은 내 실수였다.”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17일(현지시간) 블룸버그TV와 가진 인터뷰에서 “지금 재정적자 문제를 해소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더욱 큰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면서 올해로 시한이 종료되는 감세정책을 연장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10년 사이에 그와 미국에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2001년 임기를 시작할 당시 부시 전 대통령은 3년 연속 재정흑자를 달성한 건실한 나라살림을 물려받았다. 그는 재정여력이 있다며 잇달아 대규모 감세 조치를 시행했다. 전임 클린턴 행정부 당시 39.6%였던 최고소득세율을 35%로 줄였다. 자본이득세와 주식배당세도 20%에서 15%로 낮아졌다.
부시 행정부는 세금을 깎아주면 여유자금이 생긴 부자들이 소비를 더 많이 해 경기를 활성화시키고 이는 다시 세입 증대로 이어진다는 ‘낙수효과’ 논리였다. 하지만 이 논리는 지금껏 입증된 적이 없다. 입증된 것은 감세조치가 소득불평등을 급격히 악화시켰다는 점뿐이다.
이미 부시 행정부 당시에도 의회예산처(CBO)는 감세 정책 혜택의 3분의1은 연간소득 120만달러 이상의 최상위 1% 소득계층에게, 3분의2는 상위 20% 소득계층에게 돌아갔다고 밝힌 바 있다. CBO는 “최상위 1%에 속하는 소득계층의 세금이 개인 평균 7만 8460달러 줄어든 반면 연간소득 5만 7000달러인 중간 20% 소득계층은 1090달러, 하위 25%에 속하는 소득계층은 단지 250달러만 세금이 줄었다.”고 지적했다. 감세 정책이 부자들 좋은 일만 시킨 셈이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막대한 전쟁비용을 지출하는 와중에 시행한 감세정책은 재정적자를 초래했다. 당장 2003년 재정적자가 3780억달러로 2년 전보다 5000억달러 가까이 재정건전성이 나빠졌다. 2008년 금융위기로 인한 세입감소는 불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었다. 전문가들은 2010회계연도(2009년 10월~2010년 9월) 재정적자가 1조3000억달러 안팎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난 14일 미 재무부는 연방정부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9.2%에 이른다고 밝혔다.
부시 행정부의 감세조치 시한은 올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별도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감세조치는 자연스럽게 종료된다. 오바마 대통령은 올해로 일몰을 맞는 부시 행정부의 조세감면 정책을 중산층에 대해서만 연장하겠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지도부도 같은 의견이지만 중산층에 대해서도 기간을 1~2년으로 한정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 반면 감세조치 연장을 주장하는 공화당과 일부 민주당 의원들의 공세도 강해진다.
일단 정부 입장은 확고하다. 티머시 가이트너 미국 재무장관은 25일 감세조치를 예정대로 종료할 방침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ABC방송 시사 프로그램인 ‘이번주’에 출연해 “미국 인구의 2~3%에 해당하는 최고 소득계층에 대한 감세혜택을 연장하지 않고 종료시키는 것이 책임있는 조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가이트너 장관은 그린스펀 전 의장이 감세조치 종료를 “최악과 차악 사이에서 차악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설명한 것에 대해서도 “이번 조치가 경제성장에 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NBC의 '언론과의 만남'에서도 현재 15%인 최고 자본이득세율을 20%로 인상하는 방안을 지지한다고 강조했다.
감세조치 종료를 반대하는 전형적인 입장은 벤 버냉키 연준 의장한테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지난 22일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 증언에서 “감세안 연장이 여전히 부양을 필요로 하는 미국 경제 강화에 도움을 줄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합리적인 재정 부양 수준을 유지해야 하며 감세안 연장 역시 하나의 방법이다”라는 취지로 발언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현재 여야 합동으로 구성된 재정적자대책위원회에서 집중적인 논의를 진행하고 있으나 접점을 찾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결국 11월 중간선거 결과가 논의의 향방을 가를 것”으로 예상하면서 “기업인들은 당장 내년에 세금을 얼마나 내야 하는지도 모르는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2010년 7월20일자 서울신문 18면에 실린 기사를 일부 수정보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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