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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뒷얘기/시민의신문 기사

종교간대화 강조하던 이찬수 강남대 교수가 겪는 시련

by betulo 2007.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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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사학재단 교수가 불상 앞에 절을 했다. 그 모습은 교육방송 ‘똘레랑스’에서 2003년 10월 방영됐다. 신학과 불교학으로 각각 석사학위를 받고 비교종교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불교와 부처에 대한 존경심을 ‘절’로 표현했다.

일요일마다 무보수 목사로 봉사하느라 대학교회에서 열리는 주일예배에 출석하지 않았다. 이찬수 강남대 교수는 바로 그런 이유로 자신이 재임용에서 탈락했다고 믿는다.

이찬수 교수는 1999년 9월부터 강남대학교 강의전담교원으로 임용되어 6년 6개월 동안 교양필수과목인 ‘기독교와 현대사회’를 강의했다. 재임용 거부를 당한 이유는 ‘강의 내용이 창학이념인 기독교정신에 위배된다’는 것이었다. 강남대의 창학이념은 “기독교정신과 홍익인간의 이념을 바탕으로 ‘하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한다(敬天愛人)’를 실천하는 인재를 양성한다”이다.

강남대를 설립한 이호빈 목사도 신학생 시절 수학여행에서 대웅전 본존불 앞에서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여 퇴학당할 뻔한 적이 있었다.

1946년 중앙신학원이라는 이름으로 개교한 강남대는 독실한 불교신자인 차재윤씨가 1948년 땅 30만평을 아무 조건 없이 기부해 초석을 다질 수 있었다.

강남대는 이호빈 목사의 뒤를 이어 윤도한 장로가 이사장으로 재직했다. 지금은 그의 부인인 방순열씨가 이사장이고 아들인 윤신일씨가 총장이다. 학교 교직원들은 주말예배 출석을 승진에 반영한다.

이 교수에 따르면 한번 출석하면 0.5점씩 점수가 붙고 20점까지 점수에 반영한다. 창학이념 구현 기본점수가 20점이기 때문에 20점을 채우면 재임용에 문제가 없다. “강남대 창학이념은 대학교회 주말예배 출석”이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교수는 지난 1월 6일 재임용계약 부적격 의결 통지서를 받았다. 1월 11일에는 교내 재심요청서를 제출했지만 1월 31일 재심요청 수용불가라는 최종통지서를 받았다. 2월 15일에는 교육부에 교원소청심사청구서를 제출했다. 교육부 소청심사위원회 결과는 5월 1일 나올 에정이다. 강남대 학생 500여명이 지난 2월 20일 재임용탈락에 항의하고 복직을 요구하는 서명서를 작성해 교목실에 총장실에 제출했다.

강남대가 내세우는 이 교수 재임용 탈락의 또 다른 명분은 이 교수가 강의전담 계약직 교원으로서 계약이 만료돼 당연퇴직처리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교수측은 “1999년 교육부가 전임교원으로 인정하는 강의전담교원으로 임용되었지만 2001년부터 교육부에서 강의전담교원을 전임교원으로 인정하지 않게 되자 학교측에서 교육부와 대학교육협의회에 자신을 전임교원인 조교수로 보고해 왔다”고 주장한다.

“2001년 10월부터 강남대에서는 강의전담조교수로 승진발령받아 전임교원 인사규정에 준한 신분으로 재직해 왔다”는 것이다. 강남대 교수협의회도 지난 4월 4일 2006년 정기총회에서 “강의전담교수의 법적 지위는 일반 교수와 차이가 없다”고 결의했다.

이 교수는 “한국사회에서 반기독교 정서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며 “그것은 개신교의 배타성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종교의 역사는 상호교류의 역사이고 기독교의 근본정신은 포용성에 있다”며 “자기 중심적이고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것은 오히려 반기독교적”이라고 설파했다. 그는 “강남대의 행태는 강남대 창학이념에 비춰봐도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꼬집었다.

이 교수가 교육방송 ‘똘레랑스’에서 2003년 10월 21일 ‘단군상, 이성과 우상의 경계에서’에 출연한 것은 그가 재임용탈락하는데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는 이 프로그램에서 단군상 문제에 호의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그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당시에도 한국인이 민족형성 근원에 대한 고민없이 제대로 된 기독교인 될 수 없다고 봤습니다. 뿌리는 중요하지요. 하지만 단군을 특정 이미지로만 형상화하는 것은 종교학적으로 문제가 있습니다. 한가지 이미지로만 고착시키는 것은 오히려 민족의 뿌리를 협소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지요. 다양한 형상으로 민족의 시원을 상징하는 조형물은 찬성합니다. 그리고 단군에 대해, 민족에 대해 열린 자세로 토론하고 논쟁해야 한다고 봅니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종교적 이상과 현실 거리 너무 멀다”
이찬수 교수 신앙고백

13일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찬수 교수는 자신의 심경을 신앙고백으로 대신했다. 그는 이 자필 신앙고백을 통해 "지금이 자신의 인생에서 세번째 전환점에 와 있다"며 "앞으로도 종교간 대화와 관용을 실천하고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 교수의 허락을 얻어 신앙고백 전문을 게재한다. /편집자주

길지 않은 삶입니다만, 돌이켜보면 제 삶에 세 번의 전환점이 있었습니다. 목사가 되어서 소외된 이웃들과 함께 살겠다고 결심했던 대학시절이 첫 번째였고 그에 따라 학부와 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하다가 불교와 동양사상을 만나 세계관의 전환을 경험했던 것이 두 번째였습니다.

특히 불교를 알면 알수록 저의 기독교적 세계관도 훨씬 넓고 깊어졌습니다. 이런 체험을 하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그 뒤 목회를 통해, 대학에서의 강의를 통해 다소 조심스럽게나마 이런 체험들을 나누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계는 자기(집단)중심주의가 워낙 강했습니다.

자기의 영역을 벗어난다 싶으면 금새 적으로 간주하는 분위기가 컸습니다. 이런 현실을 잘 알았기에 나름대로 현실적 눈높이에 맞는 강의를 하고 목회를 해왔습니다. 그러나 결국 대학을 그만두어야 하는 상황까지 오게 됐습니다.

제 자신이 이십여년 전부터 공부해왔고, 또 인류 지성사의 큰 축을 담당해온 불교의 심오한 진리 앞에 예를 표한 행위가 기독교적으로 우상숭배에 해당하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그러나 여러 걸음 양보해 생각해도 그런 개인적인 행위가 대학을 그만두어야 하는 사유가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공식교재의 순서에 따라 한국의 전통적 종교와 문화에 대해 강의한 것이 어찌 교수 재임용 탈락의 정당한 근거가 될 수 있겠습니까?

종교적 이상과 현실의 거리가 너무 멀다는 것이 바로 현실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절감하면서 이상과 현실의 거리를 좁혀가는 일에 더 앞장서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제 인생의 세 번째 전환점인 것 같습니다. 정말 종교적 사랑과 자비가 더 넓게 구체화할 수 있는 종교와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해주시는 여러분 정말 고맙습니다.

4월 13일 이찬수 드림

2006년 4월 13일 오후 15시 59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시민의신문 제 645호 27면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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