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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을 생각한다/경찰 개혁론

박종철 열사 19주기 추모제 열려

by 자작나무숲 2007. 3. 30.
박종철 열사 19주기 추모제 열려
옛 남영동분실에서 울려퍼진 ‘벗이여 해방이 온다’
2006/1/13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1987년 1월 13일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간 서울대 대학생 박종철군은 바로 다음날 고문 끝에 사망했다. 6월항쟁의 기폭제가 된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이 벌어지고 19년이 흘렀다.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갔던 남영동 보안분실은 이제 경찰청 인권보호센터가 입주했고 인권기념관으로 바뀔 준비를 하고 있다. 바로 그 곳에서 박종철 열사 19주기 추모제가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인 박정기 옹 등 40여명의 시민과 학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 13일 열렸다.

박종철 열사 19주기 추모제에 참석한 한 학생이 박종철 열사 영정에 헌화하고 있다.
강국진기자 
박종철 열사 19주기 추모제에 참석한 한 학생이 박종철 열사 영정에 헌화하고 있다.

박종철 열사가 숨을 거둔 옛 남영동분실 509호 조사실.
강국진기자 
박종철 열사가 숨을 거둔 옛 남영동분실 509호 조사실.
한 추모제 참가자가 박종철 열사 영정 앞에 '열사의 삶과 죽음을 기억하자'라고 쓴 피켓을 올려 놓았다.
강국진기자 
한 추모제 참가자가 박종철 열사 영정 앞에 '열사의 삶과 죽음을 기억하자'라고 쓴 피켓을 올려 놓았다.

옛 남영동분실을 찾은 시민·학생들은 7층 강당에서 박정기 옹과 박경서 인권대사(경찰청 인권수호위원장)의 인사를 들은 다음 곧바로 박종철 열사가 사망했던 509호 조사실로 향했다. 미리 준비한 흰 국화를 헌화한 이들은 ‘벗이여 해방이 온다’는 노래를 부르며 박종철 열사의 뜻을 기렸다.

박정기 옹은 “작년까지는 서울대 교정에서 추모제를 했지만 올해는 종철이가 죽은 이곳에서 종철이를 만나고 싶었다”며 “그 때 그 자리를 후배 여러분들이 봐주는 것이 종철이 아버지로서 크나큰 영광이다”이라고 밝히며 눈시울을 적셨다.

그는 “두번 다시 종철이가 겪은 일이 일어나면 안된다”며 “지난 일을 되뇌이며 일생의 기억으로 남겨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509호 조사실을 원형 그대로 보존해준 경찰 당국에 고맙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박종철 열사가 고문끝에 숨진 옛 남영동분실 509호 앞에서 연설하는 박종철 열사 아버지 박정기 옹.
강국진기자 
박종철 열사가 고문끝에 숨진 옛 남영동분실 509호 앞에서 연설하는 박종철 열사 아버지 박정기 옹.
박경서 인권대사는 “박종철 열사의 죽음은 마치 예수의 죽음이 부활로 이어졌듯이 한국 민주화로 이어졌다”며 “우리가 할 일은 열사의 뜻을 어떻게 심어 나가느냐에 있다”며 “한국이 인권선진국으로 도약하도록 힘을 합치자”고 강조했다.

추모제가 끝난 뒤 참가자들은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의 안내를 받으며 옛 남영동분실을 견학했다. 한 학생은 “이 자리에 오니 많이 부끄럽다”며 “열심히 살아야 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박종철 열사와 같은 해 대학에 입학했다는 김학규 박종철 열사 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은 “형식적 민주화는 이뤘지만 박종철 열사가 그토록 갈망했던 실질적 민주주의는 여전히 우리의 과제”라며 “오늘 자리를 앞으로 살아가는데 근거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2006년 1월 13일 오후 16시 5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시민의신문 제 632호 2면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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