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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을 생각한다/경찰 개혁론

과거청산 없이 경찰개혁 없다

by 자작나무숲 2007. 3. 29.
과거청산 없이 경찰개혁 없다
[경찰개혁] 반민특위와 경찰
2005/11/28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경찰청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는 많은 기대에도 불구하고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는 우려와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 24일 토론에서는 경찰청이 과거사위원회가 선정한 10대 사건에 대해 대단히 비협조적이라는 성토가 쏟아지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일각에서는 왜 10대 사건에 반민특위 해체가 포함하지 않았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반민특위 습격사건과 해체는 경찰 60년 역사에서 최대 치욕으로 평가할 만한 사건이다. 경찰은 이 과정에서 시종일관 단순한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반공을 무기로 일제잔재 청산과 신국가건설 운동을 와해시키는데 직간접으로 관여한 존재”라는 것이 이강수 국가기록원 연구원의 설명이다.

삼팔선 이남을 점령한 미군정이 친일파를 적극 등용하는데 친일경찰도 예외가 아니었다. 1946년 10월까지 임명된 서울시내 10개 경찰서장 가운데 9명이 친일경찰 출신이고 1명은 일제시대 군수 출신이었다. 경기도 21개 서장 가운데 13명이 일제 경찰 출신이며 전국 140명 경찰서장 가운데 110명이 일제시기 경찰을 지냈던 사람들이다. 1946년 11월 현재 재직중인 경위 이상 경찰 1천157명 가운데 949명이 일제 경찰출신이었다. 더구나 이들은 미군정 시기 승진가도를 달렸다.

경찰은 내무부 등과 함께 반민특위 방해공작을 주도했다. 1948년 9월 23일 개최된 반공대회를 빙자한 반민법 반대집회 당시 경찰들은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주민들을 협박해 시민들을 강제동원했다. 경찰고위직을 차지한 친일경찰 출신들은 반민특위 관계자들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꾸미다가 사전에 발각돼기도 했다. 1949년 반민특위를 반대하는 집회에서는 현직 국회의원들이 경찰관이 보는 앞에서 시위대에 구타당하는 사건이 일어났으며 일부 시위대가 반민특위 사무실에 난입하기도 했다. 

이 연구원은 지난 23일 경찰청 60년사편찬팀과 치안정책연구소가 공동주최한 ‘한국경찰 60년사의 쟁점과 과제’ 세미나에서 “해방직후 경찰은 미군정의 친일파 활용정책에 따라 재등용됐고 이승만 정권의 최대 물리력으로 작동했다”며 “경찰의 과거사청산은 친일파가 왜곡한 한국사회 개혁의 문제이고 과거사에 대한 객관적 반성을 기초로 민족화합과 사회통합을 준비하는 작업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6월 6일 현충일은 동시에 반민특위 습격사건이 일어났던 날이기도 하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올해 6월 “허준영 경찰청장이 가야 할 곳은 현충원이 아니라 반민특위 터”라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반민특위는 명동 롯데백화점 맞은편 국민은행 자리에 있었으며 1990년 9월 민족문제연구소가 세운 조그만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2005년 11월 28일 오전 7시 43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시민의신문 제 625호 6면에 게재
* ‘빅브라더 꿈’ 버려야 "민중지팡이" 강국진
[경찰개혁] 종합토론 1부 "경찰의 과거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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