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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뒷얘기/시민의신문 기사

판사스럽다? (2005.6.3)

by 자작나무숲 2007. 3. 24.
판사스럽다?
[기자수첩] 희한한 판결 내린 서울행정법원
2005/6/6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지난 5월 31일 서울행정법원 제13행정부는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을 내렸다.

이호영씨는 공안문제연구소가 도서감정 등을 통해 국민을 일상적으로 감시하고 있다며 감정자료를 공개하라는 소송을 지난해 6월 제기했다. 그는 이미 지난해 3월 정보공개청구를 신청했다가 “국가안보”를 이유로 거부당한 적이 있었다. 1년 가까이 지루하게 이어진 소송에서 행정법원은 결국 이를 기각했다. 공안문제연구소의 논리를 그대로 수용한 셈이다.

소송을 제기했던 이호영씨는 판결 직후 “하다못해 부분공개 결정이라도 나올 줄 알았다”며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제가 정보공개청구소송을 제기한 공안문제연구소 감정목록은 이미 언론에 공개된 내용이라 국가안보와 하등 관련이 없었습니다. 행정법원은 공공연한 정보는 더 이상 국가기밀이 아니라는 대법원 판례조차 무시하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한마디로 어이가 없습니다.”

시민의신문 자료DB
공안문제연구소가 시민사회 활동가도 광범위하게 사찰해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감정목록.

행정법원의 이번 판결은 명백하게 국가 안보를 이유로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판결이었다. 더 큰 문제는 국민이 국가를 역감시하는 노력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점이다. 헌법의 기본 정신은 결국 인권일 것이다. 행정법원이 과연 이를 위해 얼마나 고민했을까. 지극히 비관적이다.

공안문제연구소 감정목록은 보안기관이 국민의 일상생활까지 감시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인권침해 증거였다. 게다가 이씨가 소송 대상으로 삼은 자료들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여러 언론에 보도되면서 세상에 다 알려진 것들이었다. <시민의신문>도 지난해 공안문제연구소가 시민운동가들의 저작 등을 감정했다는 사실을 밝혀내 보도한 바 있다. 이런 자료까지 정보공개를 막아버린 행정법원의 판결을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씨가 정보공개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은 행정기관의 지나친 비밀주의를 비판하고 바꾸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행정법원의 판결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법원의 비밀주의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행정법원은 판결문도 공개하지 않는다. 판결 요약문도 공개하지 않았다. 소송 당사자인 이씨조차 아직까지 판결문을 보지 못했다.

“공개해야 할 이유가 있나요? 이해를 못하겠다고 하시는데 우리가 그걸 이해시킬 필요는 없겠지요?” 행정법원 13행정부 관계자는 너무나 당당하게 ‘국민의 알 권리’를 무시했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2005년 6월 3일 오전 8시 58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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