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5/18
취업준비를 하던 건국대 학생 김용찬씨(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활동가)는 2003년 7월 11일 집 앞 약국에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연행됐다. 승용차 3대에 사복경찰관 10여명이 그 전에는 파출소에서 조사받은 적도 없었던 김씨를 데려간 곳은 바로 보안4과 청사, 이른바 홍제동 보안분실이었다.
“처음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신문실에 들어가니 처음엔 자술서를 쓰라고 하더라구요. 수사관 2명이 번갈아 들어왔는데 젊은 수사관은 고함치면서 윽박지르고 나이든 수사관은 달래더라구요. 젊은 사람은 ‘다 알고 있다. 너는 쓰기만 해라. 책 무얼 읽고, 누구한테 학습받았는지, 어느 집회에 참석했는지 쓰라’고 말했습니다. 나이든 사람은 담배도 주면서 ‘빨리 진술하면 바로 나갈 수도 있다. 요즘 세상에 누가 이런 일로 구속하겠느냐’라고 하구요.”
김씨는 자술서 쓰기를 거부했다. 그 다음날부터 보안수사관들은 아침 8시경 서대문경찰서 유치장에서 홍제동으로 김씨를 데려가 조사하다가 밤 11시-12시쯤 서대문경찰서 유치장에 데려다주는 생활을 되풀이했다. 구속영장에는 그가 2003년 7월 11일 23시 40분 서대문경찰서 유치장에 구금했고 7월 16일 경찰청 보안4과에 인치했다고 돼 있다.
“<범죄사실증명>이라는 5권 분량의 책이 있더라구요. 내 수사기록을 정리한 책자였습니다. 심지어는 내가 인터넷에 게재한 글과 댓글까지 들어있었어요. 압수한 책 내용 중 형광펜으로 밑줄 친 부분을 보여주면서 ‘이 내용에 동의하느냐’는 식으로 같은 질문을 계속했습니다. 심지어는 핸드폰 통화내역을 보여주면서 통화이유까지 꼬치꼬치 깨물었구요. 나중에는 수사관들이 말하는 내 행적과 생각이 진짜인 것 같은 착각이 들더라구요. 2001년부터 2003년까지 내가 어느 날 무얼 했는지도 다 알게 될 정도였습니다.”
증거는 없고 자백만
구속적부심은 7월 16일이었다. 김씨는 그 이후 5일 동안 또 조사받았다. “신문실에서는 검찰송치용으로 조서 쓰는 것이라고 하더라구요.” 검찰 조사받으러 가보니 <범죄사실증명>은 11권으로 늘어나 있었다. 구속영장에는 구속을 필요로 하는 사유로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으며, 도망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매우 높다”고 밝혔다. 결론은 “구속치 않으면 증거인멸 후 도망하여 소위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각종투쟁을 선전선동하거나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되어 있다.
김씨는 연행 당시 국가보안법 7조 1·3·5항 위반이었는데 기소될 때는 3항이 빠졌다. 7조 1항은 찬양고무 위반 혐의, 3항은 이적단체 구성·가입 혐의 5항은 이적표현물 소지 혐의에 관한 것이다. 김씨는 “그들이 처음에는 조직사건으로 묶으려고 하다가 무리가 따르니까 결국 단체구성죄를 뺏다”며 “무리한 구속수사라는 것을 스스로 자인한 셈”이라고 꼬집었다.
2003년 9월 2일 보석으로 풀려난 김씨는 그해 11월 징역6월, 집행유예 2년 선고를 받았다. 당시 1심 판결하던 판사는 그에게 “나도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인정하지만 어쨌든 실정법 위반이다”라고 서두에서 말했다고 한다.
참여정부 첫 국가보안법 구속돼
김용찬씨는 노무현 정권 출범 이후 첫 번째 구속자이다. “국보법 적용이 민감한 시기라는 걸 감안해 파장이 적으면서 눈에 안띄게 구속시킬 만한 사람으로 나를 고른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나는 한총련 간부도 아니고 전국조직에서 활동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첫단추로 만만하지 않았을까요.”
김씨는 지금도 자신이 조사받았던 홍제동분실 내부구조를 또렷이 기억한다.
“3층 건물이었어요. 1층은 면회실을 비롯해 잡다한 것이 있었고 2층과 3층은 구조가 같았습니다. ㄴ자 구조였고 한 층에 신문실로 쓰는 방이 32개 있었어요. 방은 보통 가정집 침실 크기였습니다. 나는 3층에서 조사를 받았죠. 창문이 하나 있지만 바깥은 시멘트로 막아놔서 대낮에도 형광등을 켜야 했죠. 벽은 가수들 음악연습하는 곳처럼 구멍이 여기저기 뚫려 있는 방음벽이었어요. 옆방에서 나는 소리를 전혀 들을 수 없었어요. 시계도 없어서 시간을 제대로 알 수 없더라구요.”
김씨는 “방에 들어가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고 한다. “수사관들은 ‘재소자 편의를 위해 화장실, 변기, 세면대를 설치했다’고 하지만 방에 들어가는 순간 고문용이라고 느꼈습니다. 변기 앞에 1m 높이 칸막이가 있는데 수사관이 늘 지켜보고 있어 용변도 맘 편하게 볼 수 없었구요.”
“무식하고 하는 일도 없더라”
김씨는 수사를 받으면서 “수사관들이 너무나 무식하다는 점”과 “정말 하는 일 없는 조직이라는 점”이 무척 놀라웠다고 말한다.
“한 건 하고 반년 쉬는 곳이라는 게 눈에 보이더라구요. 이런 사람들에게 국민의 혈세를 낭비한다는 게 너무 화가 났습니다. 조사받을 당시에도 방 32개 가운데 2개 빼고는 모두 비어 있었거든요. 의경이 우리가 조사받던 방 앞에만 지키고 서 있었습니다. 자기들끼리 ‘이 사건 끝나면 어디 가서 놀까’하는 얘기를 자기들끼리 하는 것도 들었습니다. 이들은 또 굉장히 무식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기본지식도 전혀 없고 운동노선이 어떻게 다른지도 모르더라구요.”
“한 수사관이 나에게 ‘너 간첩 아니냐’고 물은 적이 있다”는 김씨는 “내가 간첩이 아니라는 걸 그 사람이 더 잘 알 것”이라고 말한다. 김씨는 “그들이 빨리 제자리를 잡아 도둑이나 잡았으면 좋겠다”며 “그게 그들 자식들에게도 떳떳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안부서에서 일하는 젊은 수사관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나중에 아이가 자라서 ‘아빠 직업이 뭐예요’라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 건가 궁금합니다. 아이들이 사실을 알게 되면 뒷감당을 어떻게 할지 궁금합니다.”
2005년 5월 18일 오전 10시 38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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