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났던, 그 모든 순간들 13>
지방선거가 끝났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선거였고, 우여곡절도 많았다. 누군가 표현했듯이, 이기긴 이겼는데 진 것 같고, 지긴 졌는데 이긴 것 같은 결과가 나왔다. 누군가에겐 다 이긴 경기에서 막판 동점골을 엊어맞은 기분이겠고, 또 어떤 이에겐 패색이 짙었던 경기에서 극장골로 무승부를 만든 기분일 듯 하다. 물론 어떤 분들에겐 “오염된 선거”라 “재선거를 해야 한다”고 외쳤던 선거에서 승리했다고 하니 기분이 오묘할 듯도 싶다.
생각해보니 내가 투표권을 가지고 나서 첫 선거는 1995년 지방선거였다. 역사적인 제1회 전국지방동시선거를 눈앞에서 놓쳤다. 어쩌다보니 구치소에 있어서 투표를 할 수가 없었다. 1996년 총선은 군대에 간 직후라 투표를 못했다. 1997년 대통령 선거는 군대에서 부재자투표를 해야 했는데, 부대 전체가 선거를 하러 가는 와중에 나만 열외가 됐다. 뭔가 행정착오가 있다고 했다. 역사적인 정권교체를 구경만 하는 기분이라니.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 1998년 지방선거는 꼭 투표하리라 굳게 마음먹고 아침 일찍 투표소로 갔다. 공무원이 나를 한쪽으로 불렀다. 그 공무원 얘기를 듣고서야 왜 군대에서 투표를 할 수 없었는지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집행유예 기간에는 투표권이 없습니다.’ 그날 애꿎은 담배 여럿 죽였다. 하필이면 1999~2000년에는 미국에 있었는데 그 덕분에 2000년 국회의원 선거도 놓쳤다. 결국 처음 투표를 해본 건 2002년 6월 제2회 지방선거였다. 20대 중반에 처음 투표라니 쑥쓰럽기도 했다. 물론 그 뒤로는 빼놓지 않고 투표했다.
선거철이 될 때마다 모순된 감정을 느끼곤 한다. 한편으론 공식선거운동을 한다며 지하철역마다 색색이 옷을 입은 사람들이 마음에도 없는 ‘수고하셨습니다 기호 OO번 XXX입니다’라고 합창을 하는 게 시끄럽고도 귀찮다. 시대착오적인 구시대의 산물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색색이 옷을 입은 사람이 안 보이기라도 하면 ‘저런 것조차 조직을 못하는걸 보니 한심하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런 와중에도 선거운동 기간이 너무 짧은 건 분명해 보인다. 공식선거운동 자체도 길다고 할 수 없는데다, 사전투표까지 한다고 치면 후보들을 살필 시간은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솔직히 말해서 시장이나 구청장까진 공약과 이력을 꼼꼼하게 살피는 편이지만, 시의원이나 구의원까진 이름도 제대로 기억을 못한다. 거대 양당제가 강화되다보니 선택지가 좁아지는 문제도 물론 있을 것 같다. 기초의원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공약이 과연 얼마나 변별력이 있을지도 솔직히 의문이 드는 게 사실이다. 물론 어느 구의원 후보가 제시한 공약은 지금도 기억이 난다. 그 구의원 후보는 ‘어린이대공원에 대규모 뉴타운 건설’을 공약했다. 선거공보물에는 어린이대공원 안에 수십층짜리 고층아파트가 들어선 모습이 한 장 가득 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참신성 면에서는 최고였다. (그리고, 그 분이 당선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후보를 제대로 살피지 못하면 정당에 따라 찍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걸 큰 문제라고 지적하는 전문가들 얘기는 자주 들었다. 하지만 솔직한 내 대답은 이렇다. 글쎄 그게 꼭 문제일까. 유권자가 모든 후보를 검증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 아닌가. 그래서 필요한 게 정당의 역할 아닐까. 어떤 물건을 살 때 일일이 비교해보기 힘들 때 우리가 특정한 브랜드의 신뢰도를 기준으로 삼듯이 선거 국면에서 우리는 그 후보를 어느 정당이 내세웠는지 보게 된다. 내 눈에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우수한 후보를 발굴하고 육성하고 선별하는 것이야말로 정당의 존재이유일 테니까.

그런 면에서 나는 정당공천을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을 개혁이랍시고 주장하는 분들을 매우 한심하게 생각한다. 한때 안철수가 새정치라는 명분을 내세워 정당공천 배제를 주장했는데, 나는 그게 새정치라는 주장 자체가 우습게 느껴진다. 마찬가지 이유로 교육감 선거야말로 제도실패의 전형이라고 생각한다. 심하게 말해서 교육감 선거는 엉망진창이다. 정치적 중립성을 위한다며 정당공천을 배제했는데, 교육감 후보들은 파란 옷, 빨간 옷을 입고 선거운동을 하며 눈 가리고 아웅한다.
학생인권조례를 강조하는 후보, 좌파 동성애 교육 척결을 주장하는 후보를 보고 있으면 애초에 교육감이 정치적으로 중립이어야 한다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는 분들 얘기가 현실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형식상 무소속이다보니 정당의 필터링도 거치지 못하고 후보들은 후보들대로 선거 경험도 없이 헤매기 일쑤다. 중고등학생은 유권자 자격이 없는데 학교교육에 아무 관심도 이해관계도 없는 사람들이 뽑는 교육감이라는 기묘한 불일치는 더 말해 무엇할까 싶다.
더 근본적인 문제제기는 지방선거가 과연 필요한 것인가 하는 회의감이 아닐까 싶다. 물론 엉터리 단체장이나 쭉정이 기초의원을 보면 한심하기도 하고 자괴감이 들기도 했던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선거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일 잘해서 효능감을 과시하는 이재명이 두각을 나타낸 게 성남시장 시절이었다는 걸 잊으면 안된다. 실제 여러 구청을 취재해보면, 일 잘하는 구청장과 그렇지 못한 구청장의 차이가 분명히 보인다. 그리고 그건 구청의 전반적인 역량, 행정만족도까지 전반적인 차이로 이어진다.
또 한가지, 더 좋은 정치인을 육성할 수 있는 훈련장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돈이 많이 들더라도 국가의 미래를 위해 정말 중요하다. 능력있고 열정 넘치는 구청장이나 기초의원들을 여럿 만난 적 있는데 그 분들이 나중에 국회의원도 되고 장관도 되며 중견정치인으로 성장했다. 나는 그것이 한국 정치의 발전을 보여주는 선순환 구조라고 믿는다.
| 초고는 선거 열흘 전에 인권연대 기고문으로 썼다. 선거를 마친 뒤 대폭 수정 보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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