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났던, 그 모든 순간들 009>
일본어를 공부해라. 대학원에서 13세기 몽골사를 공부하겠다는 결심을 밝혔을 때 은사는 대뜸 그렇게 말했다. 이유는 딱 하나였다. 수많은 1차 사료가 일본어로 번역돼 있다. 과연 그랬다. 한문이나 몽골어 문헌은 말할 것도 없고 러시아어, 아랍어, 페르시아어, 심지어 아르메니아어나 티베트어 문헌까지. 물론 그 당시 결심은 결국 처절한 좌절과 오랜 방황으로 귀결됐을 뿐이지만, 그때 깨달았던 번역의 가치에 대한 기억만큼은 지금도 뚜렷하게 남아 있다. 번역 수준이 곧 학문 수준이고, 번역에 쏟는 정성이 곧 그 사회의 역량이다.
헤로도토스가 쓴 ‘역사’의 첫 한국어 완역본이 나온 건 2009년이었다. 거칠게 표현한다면, 한국의 인문학 수준은 일본보다 최소 반백년 뒤처져 있다는 말이 과하지 않다. 고대 그리스어 번역에 매진하다 4년 전 세상을 떠난 천병희가 없었다면 그마저도 언감생심이었다. 번역가에 대한 정당한 대우가 아쉽다는 얘기는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다. ‘이븐 바투타 여행기’는 전세계에서 세번째로 한국어 완역본이 나왔는데, 정수일이라는 걸출한 역사학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정수일 덕분에 한국의 인문학은 세계에 자랑할 만한 최고의 연구성과 하나를 갖게 됐다.
10여년 전 순회특파원으로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방문한 적이 있다. 헝가리어로 번역된 일본 관련 책 수백권이 일본문화원 벽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을 보고 충격받았다. 지난해 헝가리 작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가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때 한국에선 크러스너호르커이가 성(姓)이고 라슬로가 이름이라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여전히, 번역의 한계는 그 사회의 한계다.
좋은 번역은 그 자체로 새로운 작품 세계를 창조한다. 고전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가 요즘 흔히 하는 대로 ‘싱잉 인 더 레인’으로 번역돼 나왔다면 어떤 느낌일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 마지막 장면은 잘못된 번역의 영화 줄거리까지 뒤죽박죽으로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그렇기에 번역이란 엄청난 노력과 정성을 필요로 한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원문을 기계적으로 옮기는 기능공쯤으로 번역가를 치부하곤 한다.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좋은 번역은 금방 잊어버려도 나쁜 번역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는 것만 봐도 그렇다. 번역가의 고뇌가 정당하게 대우받고, '번역 수준이 곧 국격'이라는 인식이 뿌리내릴 때 비로소 우리 인문학의 지평도 확장될 수 있다.
책 내용보다도 악몽같은 번역이 더 기억에 남는 책이 여럿이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물론 ‘파리대왕’(민음사)이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윌리엄 골딩이 쓴 이 소설에서 다루는 내용이 내란과 탄핵이라는 시대 상황과 너무나 절묘하게 맞아떨어지기도 했지만, 사실 더 큰 이유는 번역 때문이다. 말 그대로 괴상한 번역의 향연이고 통번역대학원에서 교재로 쓸 만한 사례가 아닐까 싶다.
민음사가 펴내는 세계문학전집 가운데 하나인 이 책에서 번역이 괴상한 문장을 찾는 건 하나도 어렵지 않다. 아무 곳이나 들춰보면 된다. 가령 16쪽에는 “이내 그는 파리하고 뚱뚱한 알몸을 드러내었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몸이 마르고 낯빛이나 살색이 핏기가 전혀 없다’는 ‘파리하다’와 ‘뚱뚱하다’가 마치 ‘너무 추워서 더위 먹었다’ 같은 느낌을 준다.
“박쥐 같은 것은 태양의 직사(直射) 때문에 오그라들어, 종종걸음을 치는 발 사이로 검은 반점으로 화한 그림자였다. 일변 소라를 불면서도 랠프는 허둥거리는 검은 반점을 거느리고 고대에 꼴지로 당도한 한 쌍의 몸뚱이에 눈길이 갔다(24쪽).” 이 문장을 음미할 때마다 독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며 (비)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나저나 “그의 목소리에는 경고의 가락이 있었다… 박모(薄暮)를 배경으로 하고 이제 불꽃이 선연히 돋보였다(223쪽)”는 말은 도대체 무슨 뜻이고, “벼랑을 내려가려다가 랠프는 이 밀회에서 뽑아낼 수 있는 마지막 이득을 붙잡아 보려고 하였다(284쪽)”는 건 또 뭐란 말인가.
세상 모든 공부 가운데 제일은 역사공부라고 굳게 믿는 사람으로서, ‘마오의 대기근: 중국 참극의 역사 1958~1962’(열린책들)은 애증이 교차한다. 중국현대사를 다룬 이 책은 마오쩌둥이 주도한 대약진운동이 초래한 비극을 잘 분석했지만 악몽같은 번역으로 더할 나위 없는 비극을 선사한 책이기도 하다.
“막대기는 농촌에서 선호되는 무기였다. 그것은 값이 싼 데다 쓸모도 많았다(426쪽)” 같은 건 그냥 맛보기일 뿐이다. “생리를 이유로 휴식을 요청한 여성들한테 바지를 내리게 하는 피상적인 검사를 강요했다”는 “후난성 청둥 인민공사의 당서기인 쉬잉제”(376쪽)는 도대체 무슨 검사를 했던 걸까. “약 27t의 시트로넬라 기름을 국가에 인도하는 대신 상하이의 어느 향수 공장에 팔았다”는 “광둥성의 갈매기 농장”(297쪽)은 정체가 뭘까.
일본의 근대화는 자유, 평등, 책임, 인권, 민주주의, 시간, 공간, 철학 등 일본 지식인들이 번역하며 창안한 단어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아랍 문명의 번성은 고대 그리스 저작의 번역과 함께 시작됐고 르네상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19세기 독일의 문예부흥기를 살았던 괴테가 했다는 말을 인용하며 번역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제고를 촉구하고 싶다. 아울러 낯선 언어의 숲을 탐험하는 ‘번역 장인’에 대한 존경심도. 그들이 넓혀놓은 언어의 영토만큼, 우리의 세계도 그만큼 더 넓어지고 있다.
“독일어를 배우는 것은 잘하는 일입니다. 독일어를 잘 배워 두면 다른 많은 언어를 알지 못해도 상관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어와 라틴어 대표작들은 매끄러운 독일어 번역본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아주 특수한 목적이 아닌 한 그들 언어를 힘들게 배우느라 많은 시간을 들일 이유가 없습니다.”(요한 페터 에커만, 『괴테와의 대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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