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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출구조조정이라는 요술방망이

예산생각

by betulo 2020. 5. 11.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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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여곡절 끝에 긴급재난지원금을 둘러싼 논쟁이 일단락됐다. 모두가 처음 겪어보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이제껏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 정책이 현실화됐다. 그 과정에서 심각한 논쟁이 발생했다. 대체로 더불어민주당과 일부 광역자치단체장, 총선 전 미래통합당이 논쟁의 한 축이었다. 기획재정부와 총선 뒤 미래통합당이 또 한 축이었다. (청와대는 어느 쪽이었는지 모르겠다. 뭐, 별로 중요한 문제도 아니니 그냥 넘어가자.)
 

 긴급재난지원금을 둘러싸고 다양하게 벌어진 논쟁은 하나같이 국가운영의 방향에 대한 철학, 더 깊게는 세계관을 바닥에 깔고 있는 주제였다. 특히 재정건전성은 두고 두고 생각해봐야 할 문제인 듯 하다. 기획재정부가 얼마나 강력한 권력을 갖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것도 두고두고 생각할 주제다. 그에 덧붙여 하나 더, 지출구조조정이라는 마술방망이를 거론해보고 싶다.

 지출구조조정은 중요하다. 현재 한국 예산운용에는 낭비 요소도 많고 불합리한 점도 많다. 구조조정이란게 외환위기 트라우마가 워낙 강해서 그렇지 필요없는 거 덜어내고 필요한 거 더하는 과정이다. 구조조정은 언제나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에서 지출 구조조정은 긴축과 재정건전성 담론을 위한 유력한 수단으로 기능했다는 점 역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교과서보다는 1997~98년 벌어졌던 구조조정에 훨씬 더 가까운게 정부에서 입만 열면 얘기하는 지출구조조정이다.

출처: 연합뉴스


 지출 구조조정이란 사실 역대 정부마다 강조했던 오래된 유행가였다. 그 시작을 열었던 건 물론 박정희였다. 박정희는 1974년 1월 연두 기자회견에서 “소비 절약에는 정부가 앞장을 서야 되겠다. 그래서 정부는 이번에 세출 예산서에 약 500억원을 절감하여 유보하기로 했다”고 했다. 전두환은 “만성적으로 팽창되어 온 예산구조를 영점 기준에 의하여 재점검하겠다”(1982년 10월 4일)고 했다.

 김영삼은 “모두 고통을 분담해 주십시오. 정부가 앞장서겠습니다. 청와대 예산을 먼저 줄이겠습니다. 각종 행사는 물론 청와대의 식탁까지도 낭비요소를 철저히 없애도록 하겠습니다. 작고 생산적인 정부가 되겠습니다. 올해는 공무원 봉급을 올리지 않겠습니다. 정원도 늘리지 않겠습니다(1993년 3월 19일 신경제 관련 특별담화문)”라고 말했다.

 박정희와 전두환, 김영삼 사람은 시바스리갈과 백담사와 외환위기로 임기를 마무리했다. 우리는 그들 임기에 정부 지출이 줄었다는 어떤 증거도 갖고 있지 않다. 당연한 것 아닌가. 1년에 10%를 바라볼 정도로 경제가 성장하고 물가가 급증하고, 인구는 나날이 늘어나는데 정부지출이 줄어든다는 발상 자체가 신기할 따름이다.

 지출구조조정에 이명박과 박근혜가 빠질 수 없다. 이명박은 2010년 제11차 라디오연설에서 “10% 예산 절약을 목표로 정부 조직도 줄이고 씀씀이도 더 효율적으로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근혜도 취임 초기에는 증세에 대해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박 전 대통령은 2013년 2월 27일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공약재원 마련을 위해) 요즘 증세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국민세금을 거둘 것부터 생각하지 말라. 먼저 최대한 낭비를 줄이고 지하경제를 양성화하는 등의 노력을 해달라”고 주문했다.

 산업화 기억이 너무 강렬해서 그런지 ‘허리띠 졸라매기’는 국민들한테도 칭찬받기 좋은 소재다. 틈만 나면 보도자료가 쏟아지는 ‘복지 부정수급 척결’은 저비용 고효율 홍보마케팅의 교과서다. 하지만 복지 부정수급을 막겠다며 심사를 철저히 하고 사용처 하나 하나 따지는 동안 시급한 복지혜택이 필요한 이들이 도움을 못받는 기회비용은 어떻게 계산할 것인가. 그런 점에서 보면 ‘마른 수건 쥐어짜기’ 담론은 돈 쓸 곳은 많은데 세금 인상은 피하려는, 욕먹는걸 피하는걸 최우선으로 하는 정신개혁운동에 다름아니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면 3월 30일 문재인 대통령이 “(긴급재난지원금을) 신속하게 집행하도록 정부는 뼈를 깎는 세출 구조조정으로 2차 추가경정예산안을 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밝힌 것부터가 혼란을 부른 첫단추, 메시지실패가 아니었나 싶다.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긴축을 주문함으로써 재정건전성이라는 금송아지 말고 다른 신은 모르는 기획재정부의 손을 들어준 셈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기재부가 지출구조조정을 위해 질병관리본부와 지방 국립병원 소속 공무원들의 연가보상비를 삭감하는 걸로 나타났다. 코로나19 때문에 주말에도 일하는 사람들에게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욕을 푸짐하게 먹었다. 그러자 기재부는 형평성을 맞춘 후속대책을 내놨다. 4월 21일 해명자료에서 “금번 추경은 어려운 경제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신속한 국회 심사 및 통과가 불가피한 상황임을 고려해 연가보상비 감액 부처를 최소화하였다”던 기재부는 하루 뒤 해명자료에선 “공공부문의 고통분담 차원에서 올해 모든 부처와 헌법기관의 연가보상비를 지급하지 않기로 결정”했단다.

 그런 점에서 보면 우리가 두고두고 곱씹어야할 건 2006년 1월 18일 노무현 신년연설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재정의 효율성을 높이고 지출 구조를 바꾸더라도 재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미래를 위해서 해결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라면, 어디선가 이 재원을 조달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럼에도 오히려 감세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론조사를 해보아도 세금을 올리자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껴 쓰고, 다른 예산을 깎아서 쓰라고 합니다. (중략) 그러나 이러한 정책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 않으면 안 됩니다.”

 “상상력에 제한을 두지 말라”는 건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노릇이다. 천재가 아닌 보통 사람들은 그래서 책을 읽는다. 대통령에게 <노무현 대통령 연설문집>을 읽고 상상력을 키우시라고 권해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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