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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뒷얘기/시민의신문 기사

목소리유권자·인권·문화교육 펼치는 동포NGO활동가들 (2004.11.12)

by betulo 2007. 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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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동포 NGO대회 참가자들 목소리

2004/11/12

“유권자운동 미 정치권 관심 성과”

김동찬 미국 한인유권자센터 사무국장

“한인들이 미국사회에서 보호받고 싶다면 투표에 참여해 스스로 영향력을 높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정부든 미국정부든 누구도 우리를 보호하지 않는다.”

미국에서 유권자등록운동을 펼치는 김동찬 한인유권자센터 사무국장은 “한인들이 한국만 쳐다보지 말고 스스로 정치력을 높여야 미국 사회에서 뿌리내릴 수 있다”고 강조한다.

96년 생긴 한인유권자센터는 뉴욕․뉴저지를 중심으로 △한인사회 정치력 높이기 △뿌리교육 △새일꾼 양성을 목표로 활동하는 시민단체이다. 이 가운데 가장 중심활동은 ‘유권자등록과 선거참여 운동’이다.

그가 유권자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LA흑인폭동이었다. 그는 “당시 가장 큰 피해자는 한인들이었지만 보상은 전혀 없었다”며 “미국 정치인 가운데 누구 하나 한인들을 위해 나서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결국 우리 스스로 정치력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유권자등록운동을 벌인지 벌써 8년째. 성과는 적지 않다. 김씨는 “뉴욕에 2만3천명 정도 한인유권자가 있는데 그동안 6천4백명을 유권자에 등록시켰다”며 “센서스에 따르면 한인 시민권자의 유권자 등록율은 78%”라고 소개했다. 그에 따르면 미국인 평균 등록율은 53%이다.

“뉴욕의 경우 한인들은 55%가량이 민주당을 28% 가량은 공화당을 지지한다. 지난 대선에서는 전화조사를 한 결과 투표율은 뉴욕이 약 74%, 뉴저지가 약 62%였다. 예전보다 투표율이 40-50% 늘어났다. 38%는 공화당을 지지했고 나머지는 민주당을 지지했다.” 김씨는 이와 함께 “이번 선거에서는 뉴저지 팰리사이즈파크 시의원에 제이슨 김, 뉴욕시 하원22지역 파트B 민주당 지구당 대표에 테렌스 박이 당선됐다”고 소개했다.

미국은 선거제도가 무척 복잡하다. 모든 선거는 매년 11월 첫째주 화요일에 열리고 주마다 선거제도가 제각각이다. 시민권자라 하더라도 유권자등록을 안하면 선거권이 없다. 선거운동도 커뮤니티를 돌면서 하고 그나마 투표율이 낮은 커뮤니티는 관심을 안갖기 때문에 선거를 하고 싶어도 후보자 정보가 없는 경우가 생긴다.

김씨는 “한인유권자가 지난 대선 정도 투표율을 보여준다면 뉴욕시장 선거에서 당락을 결정할 수 있을 정도”라며 “캐스팅보트 효과가 생기니까 민주당과 공화당에서도 한인 커뮤니티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유권자 등록율과 투표율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한인사회의 정치적 영향력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인권차별받는 소수자들 보듬어야”

배안 일본 가나가와현 외국인 거주지원센터 이사

“자기방어의식을 벗어나 시야를 넓혀야 한다. 일부 서양인들을 빼고는 모든 외국인들이 재일동포가 겪는 차별과 본질적으로 같은 차별을 겪는다.”

일본 가나가와현은 98년 ‘외국적 현민 가나가와회의’를 만들었다. 인구 8백만인 가나가와현에는 재일동포가 4만, 중국계 4만이 거주하다 보니 외국인 문제 해결에 나서게 된 것이다. 당시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배씨는 “외국인 취직문제와 조선학교 졸업생들의 국립대 입학 문제 등 재일동포 상황을 알리기 위해 가나가와회의에 지원했다”고 말한다.

“재일조선인 2명, 재일한국인 2명, 중국인 2명, 화교 1명, 대만인 1명으로 위원이 구성됐다. 막상 위원들과 얘기를 해 보니 모두가 본질적으로 같은 차별 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었다.” 가나가와회의는 “일본에 사는 외국인들이 공통적으로 살 집을 구하기 어렵다고 호소한다”는 점에 착안해 가나가와현을 설득해 ‘가나가와 외국인 거주지원센터’를 만들었다.

그러나 집을 구하기 쉽게 해준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었다. 배씨는 “활동을 하면서 부모님 세대 재일조선인이 얼마나 큰 차별을 당하며 살았는가를 깨닫게 되었다”며 “자연스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게 됐다”고 회상했다. 배씨는 요코하마에서 의료통역 자원봉사자를 모아 교육시키는 일에 참여하고 재일코리안 여성들을 위한 핫라인 ‘자매’를 만들어 가정폭력 피해자 전화상담을 하는 일을 돕고 있다. 특히 배씨가 주력하는 일은 민관협력단체인 ‘함께 사는 동네 만들기 네트워크’이다.

배씨는 재일조선인, 다시 말해 국제법상 무국적자이다. 그 자신 조선학교를 다닌 배씨는 아이들이 길거리에서 폭행을 당하고 저고리가 찢기는 폭행을 당할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올해 조선학교 입학식 때 지역 풀뿌리단체 운동가들이 참가했다. 그들은 ‘우리가 일본인으로서 어린 조선학생들을 지켜주자. 이들이 공격받는 걸 우리가 막아주자’면서 재일조선인 학생 지키기 운동을 벌였다. 이들이 학교 주변에서 오렌지색 리본을 가슴에 달고 캠페인을 벌이는데 열흘 동안 2백명이 넘는 시민들이 자원봉사로 동참해 주었다.”

배씨는 당시 경험을 얘기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는 “지역에서 벌이는 작은 활동이 쌓이고 쌓여 큰 흐름을 만들었다”며 “작은 운동이 지역사회를 바꾸고 정부를 바꾼다”고 힘주어 강조했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문화교육 통한 정체성 찾기 최선”

최영숙 한독문화협회 회장

“독일에는 코리아타운이 없다. 다른 사람은 어떨 줄 모르지만 나는 그게 재독한인 사회의 좋은 점이라고 생각한다. 독일인을 비롯한 외국인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최영숙 한독문화협회 회장은 “민족교육보다는 다문화교육”을 강조한다. 그는 “나치 잔재에 대해 민감한 독일에서 ‘민족교육’은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고 다른 소수민족과 어울려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한다.

“2세 중에는 ‘왜 우리가 한국문제만 매달려야 하는가. 다른 문제와 동등하게 대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민족주의만 강조하는 게 2세들에게 좋다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2세들 자체가 민족주의 강조에 거부감을 갖는다. 이방인과 어울리는 법을 배운 사람은 자기 뿌리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그 다음에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문화를 배우려 한다.”

최씨는 “서독이 동독을 흡수통일한 이후 서독 사람은 동독 사람을 차별하고 동독 사람은 외국인을 차별한다”며 “사회주의 시절 외국인과 함께 사는 경험이 부족했던 것도 한 원인”이라고 다문화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독문화협회는 2세들에게 문화교육을 하고 정체성찾기를 도와주는 활동을 한다. 다양한 사물놀이패를 조직해 자율적으로 활동하게 하는데 독일인들도 즐겨 찾는 문화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는 이것을 “문화교육을 통해 정체성 찾기를 도와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간호사로 일하던 최영숙씨는 1966년 처음 독일땅을 밟았다. 한국정부가 ‘인력수출’ 차원에서 독일에 보냈던 간호사와 광부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노동권 보장 요구 투쟁을 벌이면서 자연스럽게 민주화운동에 참여하게 됐고 최씨도 예외는 아니었다.

“70년대에는 나 자신 갈등이 무척 컸다. 수십년간 교육받은 반공반북 이데올로기는 너무가 강력했다. 무척 힘들었다. 그런 갈등을 해결해준 것이 광주민중항쟁이었다. 신심을 갖고 민주화운동을 하게 됐다.”

최씨는 “독일에서 간호사로 처음 일할 때부터 독일 사람들과 거의 동등한 임금을 받고 비교적 평등한 대접을 받았다”며 “한국이 그런 점을 꼭 배웠으면 좋겠다”고 꼬집기도 했다. 그는 “한국에서 이주노동자 인권침해가 심각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한국도 외국에 이주노동자를 많이 내보냈는데 외국인 이주노동자를 탄압하는 것은 ‘딸 시집보내고 며느리 구박하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2004년 11월 12일 오전 6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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