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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뒷얘기/기록관리.정보공개

지방정부3.0, 중앙정부0.3

by 자작나무숲 2015. 1. 13.
 지난주 충남도청에서 열린 간담회에 초청을 받았다. 충남지사 안희정을 비롯해 계명대 행정학과 교수 윤영진 등 재정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충남도의 재정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솔직히 말해서 무척이나 강한 인상을 받았다. 이미 3년 전부터 ‘업무 누수율과 업무공백, 민원 요구 누수율은 제로로 하고, 도정 업무는 100% 공개’하자는 ‘제로-100’ 프로젝트도 인상적이었다. 지자체 차원에서 정부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구체화되는 것은 어쨌든 국민들에게 좋은 일이다.

 그렇다면 정부3.0을 강조하는 중앙정부는 어떨까. 정부 투명성과 공공데이터 개방의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정보공개포털(www.open.go.kr)에서 새롭게 생긴 변화가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 싶다. 행정자치부가 관리하는 정보공개포털은 지난해 11월부터 정보공개청구를 할 때마다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도록 하는 새로운 실명확인절차를 시행중이다. 행자부는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에 따라 정보공개법에 관련 규정 없이 회원가입시 등록하였던 주민번호는 현재 수집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보공개포털에 회원가입을 위해 주민번호를 입력해야 하는 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1월9일 행자부는 보도자료를 내고 주민번호 수집 법정주의 시행 100일을 맞아 “불필요하게 주민번호를 요구하는 관행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은 고질적인 개인정보 유출을 막자는 취지였다. 핵심은 주민번호 수집 법정주의다. 법령에 근거가 있거나 급박한 생명·신체·재산상 이익을 위해 명백히 필요한 경우 등 예외적인 경우에 한하여 주민번호 수집·이용이 가능하도록 했다. 오른손으론 불필요한 주민번호 요구가 사라지고 있다고 자화자찬하고 왼손으론 주민번호를 추가로 요구하는 행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주민번호 요구 덕분에 담당 공무원이 일하는데 더 편리해지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라고 익명을 요구한 기록연구사는 증언한다. 그는 “행자부의 고질적인 ‘통제적 발상’과 부서별로 나눠진 업무체계”를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원문공개 서비스 확대에 대해서도 “서울시만 해도 원문공개를 정부투명성을 위한 시작단계로 보고 더 쉽게 정보를 제공하는 방안을 고민하는 반면, 행자부는 ‘몇 건 공개’하는 실적만 강조한다”고 비판했다. 거기다 툭하면 먹통이 돼 버리는 시스템 불안정은 정보공개청구를 막기 위한 방편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중앙정부가 “나를 따르라”고 외치며 지방자치단체를 선도해 왔다. 하지만 점점 “시키는대로 하라”며 윽박지르는 목소리만 커진다. 정보 투명성만 놓고 보면 현실은 이미 지자체가 중앙정부를 앞서나가고 있다. 사실 정보공개청구 제도도 지자체 조례에서 처음 시작됐다. 정부로서는 현재 미국 정부가 국정목표 중 하나가 ‘정부2.0’이라는 점, 그리고 “정보공개 수준이 10년전 참여정부 때보다도 못하다”는 현장 목소리부터 귀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서울신문 2015년 1월13일자 30면, <오늘의 눈>에 실린 기자칼럼을 옮겨놨습니다. 인명표기는 제 블로그 원칙에 맞춰 수정했습니다. 
 
주민번호 요구 관행,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서 제동

정보공개청구를 할때마다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는 행정자치부 방침에 대해 대통령 소속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제동을 걸었다. 그동안 과도한 개인정보 침해라며 문제제기를 해온 시민단체들은 5일 논평을 내고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결정을 환영하고 나섰다. 

 행자부가 운영하는 정보공개포털(www.open.go.kr)은 지난해 11월부터 회원가입 뿐 아니라 정보공개청구서 작성을 할때도 반드시 주민번호를 입력해 실명확인을 하도록 했다. 그전까지는 회원가입을 할 때만 주민번호를 입력했지만 개인정보 강화 정책에 따라 회원가입시 주민번호를 수집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게 이유였다. 행자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 “자신과 관련한 정보를 정보공개청구하는 사례가 있으며, 본인 여부를 알아야 답변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와 진보네트워크센터에 따르면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최근 심의에서 “정보공개청구 절차에서 주민번호의 처리가 불가피하지 않다”고 결정했다. 특히 “전자서명, 아이핀, 휴대전화 등 인증수단을 통해 청구인 혹은 이의신청인에 대한 본인확인을 할 수 있는 점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이유를 들어 “제3자에게 공개하지 않도록 본인확인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방문이나 팩스로 정보공개청구를 할 때도 청구서와 위임장, 이의신청서 등에 주민번호를 기재하도록 하는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시행령과 규칙 등에 대해서도 “주민번호 처리는 불가피하지 않다”고 결정했다. 공공기관에 직접 출석해 청구서를 제출할 때는 신분증을 통해 본인확인이 가능하고, 우편이나 팩스로 제출할때도 청구인 본인확인을 할 수 없어 주민번호 자체가 필요하지 않은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이번 결정은 행자부가 정보공개 등 기록관리와 개인정보 보호 등 각 정책을 제대로 조율하지 못한다는 현실을 드러내 버렸다. 행자부 안에서도 정보공개청구에 주민번호를 요구하도록 한 부서와,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 이 문제를 심의·의결해줄 것을 요청한 부서가 서로 달랐다. 시민단체들이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결정을 환영한다는 논평을 내는 날 행자부에서 “법령상 근거없는 주민번호 수집 단속 및 처벌 강화”를 천명하는 보도자료를 낸 것도 얄궂은 대목이다.

 행자부는 “주민번호 수집법정주의 계도기간이 6일 종료됨에 따라 7일부터 불법적인 주민번호 수집 행위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무단 수집행위를 엄정 처분할 것”이라고 밝혔다. 행자부는 앞서 작년 7월부터 지난달까지 한국인터넷진흥원과 함께 개인정보를 대량으로 수집·처리하는 공공기관과 각종 협회·단체 웹사이트 15만 8936곳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여 약 5800곳을 확인하고 시정조치한 바 있다. 내년 8월까지는 이미 수집한 주민번호를 파기하도록 했다.


강성국 정보공개센터 활동가는 “민간영역에서는 주민번호 처리가 적지 않게 제한되었으나, 공공영역은 아직 가야 길 멀다”면서 “여전히 주민번호를 처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령이 1000여개가 넘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공공영역에서도 주민번호 처리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개인정보보호위원회와 행자부가 견제와 균형을 유지하며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토대를 다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서울신문 2월6일자 12면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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