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140대 국정과제를 발표하면서 네번째로 ‘안전과 통합의 사회’를 제시했다. 박근혜 정부는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개편해 국민안전을 담당하는 총괄조정부처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면서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을 대폭 개정해 지난 2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통합재난대응시스템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중심으로 구축하고 본부장을 맡는 안전행정부 장관이 중앙사고수습본부를 지휘할 수 있도록 법률에 명확히 규정해 지휘권을 강화했다.
법 개정 논의 당시부터 전문가들 사이에선 안행부가 준비가 덜 돼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그 경고는 현실이 됐다. 중대본은 현장을 책임진 해양경찰청을 지원하거나 지휘하는 건 고사하고 각 기관이 보고하는 숫자를 모으는 역할조차 제대로 못한 채 우왕좌왕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재난관리 방향이 정부기관 위주로 돼 있는 반면 실제 인적 재난 상당수는 다중이용시설이나 선박, 공장 등 민간 부문에서 발생한다는 것도 되짚어 봐야 할 대목이다. 특히 사회가 고도화 첨단화 ,산업화 도시화 되면서 정부부처가 지원·협력·조정·네트워크(연계) 기능을 더 강화할 필요가 있지만 최근 정부 분위기는 장관들조차 청와대 눈치만 보며 지시만 바라본다는 지적이 많다. 현장 판단이 들어설 자리가 더 좁아진 셈이다.
‘정부3.0’ 구호를 무색하게 만드는 팩스와 전화통화로 이뤄지는 업무처리는 정부 신뢰를 스스로 떨어뜨려 버렸다. 중대본은 사고 발생 당일 해양경찰청으로부터 구조·실종·사망자 현황을 상황보고서 문서를 통해 계속 보고받았다. 전산 시스템이 아니라 팩스 등을 이용한 종이 문서 보고 방식이었다. 만일 해경에서 파악한 인명 피해 현황을 전산 시스템으로 처리해서 중대본 상황실과 중대본을 구성하는 각 중앙부처, 사고 현장 일선에서 활동하는 지방자치단체가 모두 볼 수 있도록 했다면 구조·실종자를 파악 과정에서의 혼선을 줄이고 현장 근무자들이 구조·수색 및 구호 활동에 더욱 전념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남는다.
현재 정부는 중대본 외에 해양수산부, 보건복지부, 교육부 등으로 중앙사고수습본부를 구성했다. 규정상 중앙사고수습본부는 필요시 해당 재난안전대책본부에 지원 요청을 할 수 있다. 이렇다보니 부처 협업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면 일관성 있는 현장 지휘체계가 이뤄지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자칫 현장인력들에게 업무가 몰리는 ‘깔때기’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중대본이 제구실을 못하자 이번에는 국무총리가 나서 법에도 없는 대책본부를 구성하며 중대본이 유명무실해졌다. 중대본이 준비 없이 대형 사고를 만난 상황에서 수습 역량이 부족했지만, 그나마 법으로 정한 재난대응 컨트롤타워를 사실상 ‘무의미한’ 존재로 만들어 버린 셈이다.
박근혜(대통령)가 현장을 찾아 대응방침을 제시한 것이 되레 기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기회를 없앤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공무원들이 시스템에 따라 재난 대응을 하는 게 아니라 대통령의 의중과 지시만을 바라보는 현상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실종자 가족들은 “누구 하나 대답해 주는 사람이 없다”고 정부를 성토한다. 사고 발생 초기는 물론이고 지금도 여전히 총괄조정과 지휘를 할 수 있는 ‘지도부’가 제대로 자리잡지 못했다는 것을 반증한다. 최근 전남 진도 팽목항과 진도실내체육관을 둘러본 이동규(동아대 석당인재학부 교수)는 그는 “주도권을 쥐고 현장을 장악하고 지위하는 주체가 없다”면서 “현장에서 지휘체계가 없으니 자원봉사자들 활동조정조차 제대로 안된다”고 지적했다.
조원철(연대 토목환경공학과 교수)은 “지휘체계가 작동하지 않는 것은 현재 시스템이 완전히 거꾸로 돼 있기 때문”이라면서 “비상 대응 시스템을 현장 중심으로 재구성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재난상황이 발생하면 현장을 가장 잘 아는 곳이 주도권을 잡고, 안행부와 중대본은 뒤에서 지원해줘야 한다”면서 “안전문제는 정부청사가 아니라 현장에서 발생한다”고 말했다.
안전 관련 전문가들이 강조하는 원칙으로 ‘하인리히 법칙’이 있다. 큰 사고가 하나 있기 전에는 비슷한 원인을 가진 사고가 29번이 존재했고, 또 그 전에는 300번은 위험에 노출된 경험이 있었다는 것이다. 즉 이번 여객선 침몰 이전에도 수십번이나 되는 경미한 사고가 분명히 있었지만 놓쳤다는 것이다. 한 전문가는 “안전과 환경은 규제 완화의 대상이 되선 안된다”면서 “조그만 사고가 많이 나는 부분을 선제적으로 보고, 대형사고를 가정한 시뮬레이션을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세월호 침몰사고가 발생한 2월16일부터 2월22일까지 '서울신문'에 썼던 여러 기사를 수정보완 종합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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