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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뒷얘기

구호로 그친 '안전', '탈출'해버린 위기관리시스템

by 자작나무숲 2014. 4. 23.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미국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를 보면 의사당에 배달된 우편물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흰가루가 유출되는 장면이 있다. 현장에 도착한 안전요원들은 현장 주변 인물들을 모두 격리시키고 의사당을 폐쇄한다. 이 모든게 매뉴얼에 따라 결재 없이 즉시 조치가 이뤄졌다. 현직 부통령조차 아무 소리 못하고 사무실에 하루 종일 갇혀 있어야 했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현장 책임자에게 전권을 부여하는 ‘사고 지휘 시스템’(ICS)이다. 주관부처 장관은 현장 책임자가 제 역할을 하도록 연락·예산·공보 등 ‘후방지원’을 한다.

 2월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는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붕괴사고가 발생한 지 불과 두 달 만에 일어났다. 정부가 지난 2월 완성했다는 재난대응체계는 실전에서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국민 안전을 책임져야 할 정부는 머리와 손발이 따로 놀았다. 현장에선 허둥댔고 총괄조정기구는 구조해야 하는 사람이 몇 명이고 몇 명을 구조했는지 파악도 못했으며 대통령은 “책임자 엄벌”만 외칠 뿐이었다.

 지난해 2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140대 국정과제를 발표하면서 네번째로 ‘안전과 통합의 사회’를 제시했다. 박근혜 정부는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개편해 국민안전을 담당하는 총괄조정부처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면서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을 대폭 개정해 지난 2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통합재난대응시스템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중심으로 구축하고 본부장을 맡는 안전행정부 장관이 중앙사고수습본부를 지휘할 수 있도록 법률에 명확히 규정해 지휘권을 강화했다.



 법 개정 논의 당시부터 전문가들 사이에선 안행부가 준비가 덜 돼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그 경고는 현실이 됐다. 중대본은 현장을 책임진 해양경찰청을 지원하거나 지휘하는 건 고사하고 각 기관이 보고하는 숫자를 모으는 역할조차 제대로 못한 채 우왕좌왕했다.


 정부가 지난해 발표한 140대 국정과제만 놓고 보아도 세월호 침몰 사고의 주관부처가 안행부인지 국토부인지, 그것도 아니면 해수부인지 모호하다. 국정과제 83번인 ‘총체적인 국가 재난관리’는 주관부처가 안전행정부이고 84번인 ‘항공, 해양 등 교통안전 선진화’ 항목은 주관부처를 국토교통부로 명시했다.

 한국행정연구원 연구위원이 낸 최근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중앙부처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재난상황에서 정부부처간 업무협조가 잘 안된다는 응답은 33.4%나 됐다. 눈여결 볼 대목은 그 원인이다. ‘기관간 역할 및 책임 불명확’이 38.5%였고, ‘불명확한 추진주체(컨트롤타워)’가 23.1%였다. 이런 결과는 흔히 얘기하는 ‘부처이기주의’나 ‘철밥통’이라는 비판에 앞서 명확한 시스템이 먼저라는 점을 시사한다.

 현행법상 중대본을 이끌어야 할 강병규 안행부 장관은 물론 안행부  안전관리본부 간부 상당수 역시 재난안전 전문가가 아니라 일반 행정직들이다. 양기근 원광대 소방행정학과 교수는 “중대본이 전면에 나서는 것은 비전문가가 현장을 지휘하는 꼴이나 다름 없다”고 꼬집었다. 노진철 경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건의 모든 정보는 현장에 있고, 이를 정확히 가려내고 판단하는 것이 최종 책임자의 역할”이라면서 “전문가가 현장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정부는 사고 발생 직후 중대본을 구성했다. 법에 따라 강병규 안행부 장관이 본부장을 맡았다. 사회재난은 심각상태 이전에는 주관부처에서 직접 대응하고 안행부는 통합·지원의 역할을 담당하지만, 심각상태 이후에는 안행부에서 중대본을 구성해 직접 총괄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이날 오전 내내 중대본이 보여준 낙관적인 상황발표와 ‘심각상태 이후 구성’하는 중대본은 앞뒤가 맞질 않는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민간 전문가는 “안행부가 정부조직개편 이후 사실상 첫 대형재난상황에서 존재이유를 부각하기 위해서 서둘러 중대본을 구성한 것 아닌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 조직개편을 통해 재난안전관리를 총괄하는 부처로 권한이 대폭 확대됐지만 안행부 내부에서 안전관리는 대외적인 위상과는 괴리가 컸다. 안행부에서 핵심부서이자 선호부서는 여전히 인사·조직·지방재정이다. 정지범 한국행정연구원 행정관리연구부장은 “재난관리 담당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가장 바라는게 무엇인지 조사를 한 적이 있는데 가장 많이 답한 게 바로 ‘다른 분야로 전출시켜 달라’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재난관리 방향이 정부기관 위주로 돼 있는 반면 실제 인적 재난 상당수는 다중이용시설이나 선박, 공장 등 민간 부문에서 발생한다는 것도 되짚어 봐야 할 대목이다. 특히 사회가 고도화 첨단화 ,산업화 도시화 되면서 정부부처가 지원·협력·조정·네트워크(연계) 기능을 더 강화할 필요가 있지만 최근 정부 분위기는 장관들조차 청와대 눈치만 보며 지시만 바라본다는 지적이 많다. 현장 판단이 들어설 자리가 더 좁아진 셈이다.


 ‘정부3.0’ 구호를 무색하게 만드는 팩스와 전화통화로 이뤄지는 업무처리는 정부 신뢰를 스스로 떨어뜨려 버렸다. 중대본은 사고 발생 당일 해양경찰청으로부터 구조·실종·사망자 현황을 상황보고서 문서를 통해 계속 보고받았다. 전산 시스템이 아니라 팩스 등을 이용한 종이 문서 보고 방식이었다. 만일 해경에서 파악한 인명 피해 현황을 전산 시스템으로 처리해서 중대본 상황실과 중대본을 구성하는 각 중앙부처, 사고 현장 일선에서 활동하는 지방자치단체가 모두 볼 수 있도록 했다면 구조·실종자를 파악 과정에서의 혼선을 줄이고 현장 근무자들이 구조·수색 및 구호 활동에 더욱 전념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남는다.


 현재 정부는 중대본 외에 해양수산부, 보건복지부, 교육부 등으로 중앙사고수습본부를 구성했다. 규정상 중앙사고수습본부는 필요시 해당 재난안전대책본부에 지원 요청을 할 수 있다. 이렇다보니 부처 협업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면 일관성 있는 현장 지휘체계가 이뤄지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자칫 현장인력들에게 업무가 몰리는 ‘깔때기’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중대본이 제구실을 못하자 이번에는 국무총리가 나서 법에도 없는 대책본부를 구성하며 중대본이 유명무실해졌다. 중대본이 준비 없이 대형 사고를 만난 상황에서 수습 역량이 부족했지만, 그나마 법으로 정한 재난대응 컨트롤타워를 사실상 ‘무의미한’ 존재로 만들어 버린 셈이다.


 박근혜(대통령)가 현장을 찾아 대응방침을 제시한 것이  되레 기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기회를 없앤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공무원들이 시스템에 따라 재난 대응을 하는 게 아니라 대통령의 의중과 지시만을 바라보는  현상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실종자 가족들은 “누구 하나 대답해 주는 사람이 없다”고 정부를 성토한다. 사고 발생 초기는 물론이고 지금도 여전히 총괄조정과 지휘를 할 수 있는 ‘지도부’가 제대로 자리잡지 못했다는 것을 반증한다. 최근 전남 진도 팽목항과 진도실내체육관을 둘러본 이동규(동아대 석당인재학부 교수)는 그는 “주도권을 쥐고 현장을 장악하고 지위하는 주체가 없다”면서 “현장에서 지휘체계가 없으니 자원봉사자들 활동조정조차 제대로 안된다”고 지적했다.


 조원철(연대 토목환경공학과 교수)은 “지휘체계가 작동하지 않는 것은 현재 시스템이 완전히 거꾸로 돼 있기 때문”이라면서 “비상 대응 시스템을 현장 중심으로 재구성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재난상황이 발생하면 현장을 가장 잘 아는 곳이 주도권을 잡고, 안행부와 중대본은 뒤에서 지원해줘야 한다”면서 “안전문제는 정부청사가 아니라 현장에서 발생한다”고 말했다.


 양기근(원광대 소방행정학부 교수)은 “안전을 강조한다고 한순간에 안전하게 되지는 않는다. 1~2년 안전을 강조한다고 되는 건 아닌 만큼 다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면서 “예컨대 선장을 비롯한 책임자를 처벌하면 모두 해결된다는 식의 접근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20여년 간 국가재난을 연구해 온 한 전문가는 “현재 재난 대응 총괄기구인 중대본이 다른 관련 부처나 현장 관계자에게 자료를 요구해도 협조가 잘 안 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차라리 중대본 위상을 총리급으로 격상시켜 체계적인 조정 능력을 발휘하게끔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재은(충북대 행정학과 교수)은 “모든 부처를 관장할 수 있는 국가위기관리위원회와 같은 독립기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안전 관련 전문가들이 강조하는 원칙으로 ‘하인리히 법칙’이 있다. 큰 사고가 하나 있기 전에는 비슷한 원인을 가진 사고가 29번이 존재했고, 또 그 전에는 300번은 위험에 노출된 경험이 있었다는 것이다. 즉 이번 여객선 침몰 이전에도 수십번이나 되는 경미한 사고가 분명히 있었지만 놓쳤다는 것이다. 한 전문가는 “안전과 환경은 규제 완화의 대상이 되선 안된다”면서 “조그만 사고가 많이 나는 부분을 선제적으로 보고, 대형사고를 가정한 시뮬레이션을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세월호 침몰사고가 발생한 2월16일부터 2월22일까지 '서울신문'에 썼던 여러 기사를 수정보완 종합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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