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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생각/보건복지분야

기초연금 논란 따라잡기: 공약과 파기 그리고 진영 장관 사퇴까지

by betulo 2013. 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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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26일, 정부가 대선공약이었던 기초연금 시행을 위한 정부안을 공식 발표했다.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소득기준 하위 70%에게 국민연금 가입기간과 연계해 매달 10만 원에서 20만 원까지 기초연금을 지급하는 방안이었다. 기초연금 정부안 발표와 함께 1) 소득에 따른 차등 지급, 2) 국민연금 가입기간과 반비례, 3)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의 갈등 요소라는 세 가지 ‘봉인’도 함께 풀렸다.


노인 100명 중 빈곤인구 비율
(출처: OECD, 'Pensoin at a Glance', 2009)
(재인용 출처: 우리는 행복한 노후를 꿈꿀 권리가 있다)


대선 끝나자 애물단지 전락한 '기초연금'

정부는 오는 11월 기초연금법 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법제화를 거쳐 내년 7월부터 시행한다는 일정표를 제시했다. 현실은 녹록지 않다. 당장 대통령 박근혜는 9월 27일 국무회의와 28일 대한노인회 간부 초청 오찬에서 잇달아 공약을 못 지켜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주무부처 장관인 진영(복지부 장관)은 국민연금 연계방식에 반발하며 장관 자리에서 물러나 버렸다.


지난해 18대 대선 당시 박근혜가 ‘모든 노인에게 20만 원 지급’을 공약하면서 논란은 시작됐다. 새누리당이 발표한 18대 대통령선거 공약집에는 “현행 기초노령연금과 장애인연금을 기초연금화하고, 국민연금과 통합 운영함으로써 사각지대나 재정 불안정이 없는, 모든 세대가 행복한 연금제도로 개편하고, 기초연금 도입 즉시 65세 이상 모든 어르신과 중증장애인에게 현재의 두 배(약 20만 원) 수준으로 인상하여 지급하겠다”는 약속이 선명히 실려 있다.


"어르신 소득 안정 위해 기초연금 도입" 새누리당 18대 대선 공약집 (57쪽)
"어르신 소득 안정 위해 기초연금 도입"
새누리당 18대 대선 공약집 (57쪽)


대선 승리에 효자 노릇을 했던 기초연금 공약은 대선이 끝나자마자 애물단지가 됐다. 논란 끝에 인수위원회는 2013년 2월 21일 소득 하위 70%는 국민연금 수령 여부에 따라 월 14만~20만 원을, 상위 30%는 국민연금을 받지 않는 경우 약 4만 원, 국민연금을 받을 때는 가입기간에 따라 4만~10만 원을 차등지급한다는 방안을 내놨다. 국민연금 연계방식이 처음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국민연금 집단 탈퇴 소동이 벌어져 정부가 진땀을 뺐다. 그리고 지난 7월 17일에는 국민행복연금위원회 권고안이 나오기도 했다(1).


'국민연금 연계' 방식을 처음 선보인 인수위 안 
(2013년 2월 21일)


'정부안' 어떤 내용 담았나 

정부가 내놓은 정부안에 따르면 기초연금 대상자는 자산 조사를 통해 파악된 소득인정액을 기준으로 하위 70%이다. 현재 소득 기준으로는 홀몸노인이 83만 원 이하, 부부노인은 132만8천 원 이하이면 소득 하위 70% 경계선에 해당한다. 소득인정액은 근로소득 중 45만 원을 뺀 금액에 부동산·금융재산을 소득으로 환산한 액수를 더하면 된다.


국민연금과 연계 상위 30% 노인을 지급대상에서 제외한 정부의 기초연금제
(2013년 9월 26일)


예를 들어 대도시 지역에서 공시지가로 3억 원 이상 주택을 보유한 홀몸노인 혹은 4억 6천만 원 이상 주택을 보유한 노인부부라면 소득이 전혀 없어도 기초연금을 받지 못한다. 자기 명의의 부동산이 없어도 홀몸노인이 2억 천만 원 이상, 부부노인이 3억 4천만 원 이상의 금융재산을 가졌다면 기초연금 수령 대상자에서 제외된다. 현재 기초노령연금 대상자라면 기초연금 대상에도 들어간다.


기초연금 수준은 최소 10만 원에서 최대 20만 원이다. 이는 현재 가치 기준이며, 실제 수령액은 물가인상분을 반영해 계산한다. 개인이 받는 기초연금 규모는 국민연금 수령액에 따라 달라진다. 이는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길수록 지급액수가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득 하위 70%라면 모든 노인에게 최소 10만원을 보장해주고, 나머지 10만원은 ‘국민연금 균등부분’에 비례해 줄어들도록 설계했다. 국민연금 균등부분은 국민연금 전체 가입자의 3년 평균소득액을 말하며, 통상 'A값'(혹은 'A급여')이라고 부른다.


기초연금 산정 공식(아래 공식 참조)에 따르면 현재 기초연금 지급대상자 391만 명 가운데 353만 명은 20만 원을 모두 받고, 20만 명은 15만~20만 원, 18만 명은 10만~15만 원을 받게 된다. 국민연금 가입기간으로 따지면 가입 11년까지는 20만 원을 모두 받지만 이후 가입기간이 1년 늘어날 때마다 기초연금 수급액이 약 1만 원씩 줄어들어, 20년 이상 가입자는 10만 원만 받을 수 있다. 내년 이후 국민연금에 가입하는 젊은 세대는 가입기간이 16년이 되는 해부터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1년씩 늘어날 때마다 기초연금 수령액이 6,700원씩 줄어드는 구조다.


기초연금액 산정 공식
기초연금액 산정 공식


기초연금 재원은 전액 조세로 하고, 국민연금기금은 사용하지 않을 방침이다. 현행 기초노령연금 제도를 유지할 때 2014~2017년 동안 필요한 재정은 약 26조 9천 억 원이다. 기초연금 정부안을 적용하면 4년간 소요재원은 39조 6천 억 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국민연금 장기가입자와 청장년에 불이익

정부가 발표한 방안은 격렬한 반발에 부딪혔다. 무엇보다 국민연금 장기가입자일수록 불리한 제도 설계 때문에 성실납부자와 청장년층에 불이익을 주고 국민연금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이를 의식한 듯 복지부는 물론 청와대,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서 “국민연금을 훼손하지 않는다”고 거듭 밝히며 파문을 막는데 부심하고 있다.


정부안은 기본적으로 국민연금 가입자의 가입기간이 길수록 기초연금 수령액이 적기 때문에 국민연금 성실 납부자를 역차별한다는 논란을 피할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장기가입에 따른 장점이 사라지면 국민연금의 근간이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뒤에서 자세히 밝히겠지만, 이번 기초연금 정부안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다).


생애 평균소득이 2013년 기준으로 200만 원인 평균소득자 A씨가 20년간 국민연금에 가입하면 나중에 현재가치로 40만 원, 40년 동안 가입하면 80만 원에 해당하는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다. 그동안 정부는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늘어날수록 더 많은 연금액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안정된 노후를 위해 장기가입을 권장해왔다. 그런데 이제 와서 장기가입자가 상대적 불이익을 받게 된 셈이다. 기존 정부정책과 모순된다.


'미래의 노인' 30~50대의 상대적 박탈감 심화


국민연금 장기납부자에게 불리하다는 말은 곧 정부안이 ‘미래의 노인’인 30~50대에게 불리하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대부분 20년을 초과하는 청장년층은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길다는 이유로 기초연금액이 줄어들기 때문에 현행 제도보다 더 손해를 보게 된다. 현행 기초노령연금법은 2028년 이후에는 국민연금 가입 여부와 상관없이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소득 하위 70%에게 현재 화폐가치로 20만 원 가량을 지급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정부안을 시행하게 되면 기초연금을 20만 원까지 받을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거의 없다. 역설적이지만, 현재 노인세대에겐 당장 눈에 띄게 혜택이 늘어난다는 점도 젊은 세대로서는 상대적 박탈감을 키우는 요소다.


현행기초노령연금을 2028년까지 20만 원으로 지급하도록 규정한 것은 그냥 나온 규정이 아니다. 이는 애초 2007년 국민연금개혁을 통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기존 60%에서 장기적으로 40%까지 낮추는 대신, 기초노령연금 소득대체율 10%라는 보완장치를 통해 소득대체율을 50%로 맞추기 위해서였다. 청장년층 입장에서 기초연금 정부안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감소에 더해 기초노령연금보다 못한 기초연금액이라는 이중의 부담인 셈이다.


국민연금 존재 기반 무너진다... 파장에 전전긍긍

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에서 가장 신경을 곤두세우는 부분은 국민연금에 오래 가입할수록 수령액이 줄어드는 기초연금 정부안 때문에 자칫 지난 2월 인수위원회 발표 직후 나타났던 국민연금 집단 탈퇴 움직임이 재연될 가능성이다.


국민연금 12년 이상 가입하면 해마다 1만 원씩 기초연금 수령액 줄어 

기초연금 정부안에 가장 예민할 수밖에 없는 건 국민연금 지역가입자와 임의가입자라고 할 수 있다. 월급에서 국민연금 보험료를 원천 징수하는 직장가입자와 달리 지역가입자는 납부를 기피해 가입기간을 12년 아래로 유지하면 보험료 부담도 줄고 기초연금 20만 원(현재 가치 기준)도 다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안은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11년보다 길어지면 1년마다 수령액이 1만 원씩 떨어지다가 20년 이상은 최소 수령액인 10만 원만 받는 식이다. 만약 11년만 가입한 뒤 국민연금 납부를 중단하면 되니까 성실납부자, 그리고 장기가입자가 많은 청장년세대에 불리하다는 논란이 불가피하다. 물론 복지부에선 “국민연금 가입에 따른 혜택이 더 크다”고 말한다. 박근혜가 강조하는 것도 이 부분이다.


문제는 상황이 칼로 물 베듯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다. 당장 생활이 어려워 생계자금을 빌려 쓰는 40∼50대 처지에선 일단 지금 9% 보험료를 포기해 생계에 보태는 게 더 합리적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게다가 현재 직장가입자들은 국민연금 보험료를 납부하는 평균 기간이 23년가량이고 50대 전후로 퇴사를 하는 게 일반적이다. 명퇴 이후 치킨집으로 입에 풀칠하는 50대라면 국민연금은 그렇잖아도 먼 나라 얘기였는데 이제는 국민연금 더 내봐야 별다른 이득도 없다는 강력한 신호를 정부가 보내고 있다.


청장년층 '절대적 불이익'보다 '상대적 불평등'에 분노

거기다 박 대통령이나 복지부가 강조하는 지점은 논란의 핵심과 동떨어져 있다. 청장년층으로선 ‘절대적 불이익’이 아니라 ‘상대적 불평등’과 ‘현행 기초노령연금과 비교했을 때 명백한 손해’에 더 분노한다.


결국, 모든 논란은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에 상처를 입힐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 임의가입자는 2010년 1월에는 3만 8,113명이었고, 2013년 1월에는 20만 8,754명까지 증가했지만 지난 2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기초연금 방안 발표 후 5개월 동안 2만 210명이 빠져나갔다. 인수위 방안은 국민연금에 오래 가입할수록 유리한 방식이었는데도 두 연금이 연계된다는 사실 자체에 반발이 컸다(임의가입자: 임의가입자란 법적으로 가입의무가 면제된 전업주부, 27세 이하 학생, 군복무자 등이 자발적으로 국민연금에 가입한 것을 말한다).


2028년까지 현재 가치 기준 20만 원을 소득 하위 70%에게 주게 돼 있는 기초노령연금법을 시행한 지 6년만에 현행법보다도 보장수준이 후퇴하는 것도 제도에 대한 신뢰성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김연명(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은 이렇게 경고했다.

“연금은 계속 삭감된다는 것을 국민들이 일반적인 정서로 받아들이면 공적연금의 존재 기반이 무너진다.” (김연명)

민주당 의원 이언주는 ‘국민연금 연령별, 납부기간별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 기초연금 감액 대상자가 될 것으로 예상하는 12년 이상 국민연금 가입자는 모두 473만 3400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연령별로 보면 40대 209만 6,068명, 50대 200만 4,036명, 30대 63만 396명으로 청장년층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20년을 넘어 기초연금을 10만원 만 받는 인원도 127만 7,482명(50대 73만 330명, 40대 53만 3,448명)이었다.


박근혜 해명과 재반박



9월 26일 박근혜 대통령은 공약 불이행 이유로 "세수 부족"과 "재정 상황"을 들었다
(사진은 9월 26일 국무회의 주재하는 모습, 출처: 청와대) (합성)


박근혜는 9월 26일 국무회의에서 기초연금 대선공약 후퇴를 사과하면서 ‘공약대로 할 경우 2040년 157조 원 재정소요’을 언급하며 ‘과도한 재정부담’을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이는 재정부담을 실제보다 부풀리도록 하는 착시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장기재정추계를 할 때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불변가격이 아니라 경상가격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김연명(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은 “절대액이 아니라 기초연금액의 GDP 비중을 기준으로 재정부담 가능성을 판단해야 한다”면서 “수십조 원 수백조 원이 들어간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꼬집었다.


"불변가격과 경상가격의 차이"

불변가격과 경상가격의 차이를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국민행복연금위원회 자료를 보면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20만 원(현재 가치 기준)을 내년부터 지급할 경우 소요재원은 2040년에는 경상가격 기준으로 161조 원이었지만 불변가격을 기준으로 하면 72조 4천억 원으로 두 배가량 차이가 난다.


불변가격(실질가격)은 물가변동을 제거한 개념이고, 경상가격(명목가격)은 물가변동을 제거하지 않은 개념이다. 불변가격 개념을 쓰는 것은 물가변화를 배제하지 않으면 비용변화를 제대로 살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기초연금 수급액을 현재 가치 기준으로 20만 원이라고 강조하거나, 국민연금공단이 가입자들에게 미래 받을 수 있는 연금 수급액을 ‘현재 가치’를 기준으로 통지하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가령 국내총생산(GDP) 추이를 살필 때도 가격변동 효과를 배제하지 않으면 진정한 생산활동을 측정하는 게 불가능하다. 가격이 모두 두 배 올라 국내총생산이 두 배 증가했다고 해서 그 나라의 재화와 서비스생산이 두 배로 늘었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물가상승에 따른 효과를 제거해 생산활동의 진정한 변화를 측정하기 위해 ‘실질 GDP’라는 개념을 쓴다. (참고: 클릭! 경제교육)


우리나라 국민연금 지출액 GDP 대비 0.9%에 불과

박근혜가 강조한 “미래세대에게 과도한 부담을 넘기는 문제”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현실을 호도하는 발언”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국민연금 바로세우기 국민행동’에 따르면 2010년 기준으로 OECD 28개국이 공적연금으로 GDP 대비 평균 9.3%를 지출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국민연금 지출액이 GDP 대비 0.9%에 불과하다.


GDP 대비 노후대비를 위한 공적지출 비교(2010)  (출처: OECD, 'Pension Outlook, 2012)  (재인용 출처: 우리는 행복한 노후를 꿈꿀 권리가 있다)
GDP 대비 노후대비를 위한 공적지출 비교(2010)
(출처: OECD, 'Pension Outlook, 2012)
(재인용 출처: 우리는 행복한 노후를 꿈꿀 권리가 있다)


'연금행동'에 따르면 대선 공약처럼 모든 노인에게 차별 없이 20만 원을 기초연금으로 지급할 경우 GDP 대비 지출액은 정부 계산대로 해도 2020년 0.9%, 2040년 2.1%, 2050년 2.4%였다. 2050년에 국민연금이 차지하는 GDP 대비 지출액 5.5%와 합해도 2050년에 GDP 대비 공적연금 비중은 7.9% 수준이다. OECD 28개국과 유럽연합(EU)이 2010년에 공적연금지출 투자한 평균 예산이 GDP 대비 8.4%와 9.4%였다는 것과 비교하면 한마디로 ‘새 발의 피’인 셈이다(주2).


공무원·사학·군인연금 등 특수직역연금을 포함하더라도 국제수준에 못 미치기는 마찬가지다. 오건호(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장)에 따르면 2050년 국민연금과 특수직역연금을 합한 공적연금 재정소요액은 GDP 7.9%를 넘고, 여기에 모든 노인에게 20만 원을 지급하는 기초연금 공약에 따른 5.5%를 더하면 대략 13% 안팎이 된다. 하지만 여기서도 고려해야 할 변수가 있다. 2050년에 OECD는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중이 28.7%이지만 한국은 37.4%로 8.7%p 차이가 난다. 다시 말해, 기초연금을 대선공약대로 시행하더라도 공적연금지출 비중이 크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는 수준이다.


최원영 반박과 재반박

논란이 계속되자 이번에는 최원영(청와대 고용복지수석)이 나섰다. 그는 29일 기자회견을 열고 ‘일부에서 오해하거나 잘못 알고 있는’ 4대 쟁점에 대한 청와대 입장을 설명했다. 최 수석은 먼저 “국민연금을 성실하게 장기 납부할수록 손해를 본다는 것은 결코 사실이 아니다”면서 “국민연금에 오래 가입하면 할수록 (국민연금에 기초연금을 더한) 총 연금이 더욱 많아져서 이득을 보게 된다”고 말했다.




9월 29일 직접 해명에 나선 최원영 청와대 고용복지수석
(사진은 임명장 수여 장면, 출처: 청와대) (합성)


그는 “청·장년층이 현 노인세대보다 불리하다는 말도 결코 사실이 아니다”면서 “세대별로 받게 될 기초연금의 평균 수급액을 산출해보면 후세대가 더 많은 기초연금을 받도록 설계돼 있다”고 말했다.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을 연계시키는 문제에 대해 “이번에 정부가 도입하는 기초연금은 국민연금제도와 연계를 해서 앞으로 국민연금이 성숙, 발전하는 것과 함께 기초연금의 장기적인 재정지속을 담보할 수 있게 하고, 후세대 부담을 완화시켜줄 수 있는 좋은 장점이 있는 시스템”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국민연금 재정을 기초연금에 쓰려 한다는 오해가 있다”면서 “기초연금은 전액 조세로 충당한다”고 강조했다.


최 수석 발표에 "숫자놀음" "언론플레이" 비판

최원영이 이날 발표한 내용은 하나같이 핵심은 모두 비켜간 채 기존 입장만 강변하는 데 그쳤다. 일각에선 “숫자놀음에 불과한 발표로 국민들을 현혹하려는 언론플레이에 불과하다”고 비판까지 나왔다. 먼저 최원영은 국민연금 장기가입이 유리하다고 강조했지만, 국민연금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낸 보험료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오래 가입할수록 더 많이 되돌려받는다는 것은 동어반복에 불과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연금전문가는 이에 대해 “국민연금 장기가입자가 유리하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국민연금 제도 특성 덕분이지 기초연금과 직접 관련이 없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최원영이 제시한 ‘국민연금 가입기간별 총연금액(20년 수급 가정)’이 오히려 청장년층이 현 노인세대보다 불리하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준다는 지적도 나왔다. 최원영이 제시한 자료를 보면 국민연금 20년 가입자는 기초연금을 월 15만 8,127원(이하 현재 가치 기준) 받고 30년 가입자는 월 10만원 받게 된다(주3).


김연명 교수 "젊은 세대 받는 기초연금 장기적으로 10만 원 수렴"

김연명(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연금행동 집행위원장)은 “국민연금을 장기가입자일수록 기초연금을 적게 받는다는 점을 최 수석 스스로 인정했다”면서 “젊은 세대일수록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길다는 점을 감안하면 결국 젊은 세대가 받을 수 있는 기초연금은 장기적으로 10만 원으로 수렴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연금행동 집행위원장)
(사진: 송주민) (합성)


최원영이 현행 기초노령연금과 정부가 시행하려는 기초연금을 비교하지 않은 채 “기초연금은 청장년 등 미래세대에게 더 유리하도록 설계됐다”고 강조한 점도 비판을 받았다. 현행 기초노령연금법은 현재 10만 원 가량을 지급하는 기초노령연금을 2028년까지 20만 원까지 늘리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기초연금 시행으로 인해 청장년 세대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셈이다. 최원영이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국민연금 20년 가입자와 30년 가입자는 기초연금제도 시행으로 인해 각각 월 4만 1,873원과 월 10만 원씩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최원영이 현행 기초노령연금제도가 지속가능성이 없다고 말한 것도 “무책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연명은 “기초노령연금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낮추는 과정에서 여야 정치권이 어렵게 합의한 제도”라면서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근거를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와 진영 장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기초연금 정부안 발표를 하루 앞둔 9월25일 사우디아라비아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진영(보건복지부 장관)은 “무력감을 느꼈다”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며칠도 안돼 기초연금을 둘러싸고 청와대와 복지부 사이에 빚어진 의견대립이 바로 진영이 말한 ‘무력감’의 정체로 드러났다.




진영 장관의 사표는 9월 30일 수리됐다
(사진 출처: 진영 홈페이지) (합성)


기초연금 공약 후퇴 책임을 지고 진영이 사의를 표할 것이라는 소식은 진영이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 중이던 22일 언론보도를 통해 처음 공론화됐다. 진영은 이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다가 귀국 직전 “와전됐다”고 해명했다. 그는 9월25일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면서 기자들과 만나 “사퇴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 저를 믿고 맡겨준 대통령에 대한 도리이고 책임있는 일이라 생각한 것은 맞다”며 사퇴의사를 확인했다. 국무총리 정홍원은 이날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진 장관을 면담하고 “없던 일로 하겠다”며 장관직을 유지하도록 당부했다. 진영은 이 자리에서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진영은 26일 국무회의에 굳은 표정으로 참석했다. 애초 진영이 국무회의 자체에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25일 밤에 돌기도 했다. 25일 밤 이영찬 차관은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진영이 국무회의에 불참한다는 말이 있더라”는 질문을 받고 “아직은…”이라고 주저한 뒤 “현재로선 결정된게 없다. 내일 아침이 돼 봐야 안다”는 여운을 남기는 답변을 했다.


출입기자에게 '메일' 로 사퇴 의사를 밝히다

진영은 27일 상당히 파격적인 방법으로 사퇴 의사를 재확인했다. 그는 이날 출입기자들에게 ‘보건복지부 장관직을 사임하면서’라는 메일을 보내 ‘오늘 보건복지부 장관으로서의 책임을 통감하기 때문에 사임하고자 한다. 그동안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린 점에 대해서 송구하게 생각하며 국민의 건강과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기원한다’고 밝혔다.


그는 ‘장관으로서의 책임’을 언급했지만, 복지부 주변에선 “무책임하고 상식에도 어긋난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출입기자들에게 사임 발표를 하는 형식이나 과정도 매끄럽지 못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기관인 복지부 대변인실이 아니라 국회의원 보좌관이 개인 메일로 출입기자들에게 사임 의사를 전했다. 그나마 장관 취임 당시 명단으로 보내는 바람에 복지부 출입기자 중에서도 적잖은 기자들이 메일 자체를 받아보지 못했다. 장관 비서실은 물론 복지부 대변인실조차 사전 통보를 받지 못해 대변인실 관계자들이 기자들에게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촌극도 벌어졌다.


진영은 이날까지는 ‘장관으로서의 책임’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정홍원은 곧바로 보도자료를 내 사표를 반려했다. 정홍원은 주말인 9월 28일에도 업무복귀를 촉구하는 보도자료를 냈다. 진영은 29일 오전 복지부 직원 결혼식장에 나타났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식으로 사퇴의사를 재확인했다.


직원 결혼식에서 작심한 듯 속내 드러낸 진영 장관

진영은 이 자리에서 작심한 듯 “사퇴를 결심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기초연금이다. 기초연금을 만들면서 여러 가지 의견이 있었지만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지급을 연계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은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이 문제를 두고 청와대와 갈등이 있었음을 분명히 했다. 진 장관이 자신의 사퇴 이유를 공개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는 “그동안 반대해 온 기초연금안에 대해 제가 장관으로서 어떻게 국민과 국회, 야당을 설득할 수 있겠느냐”면서 “이것은 장관 이전에 저 자신의 양심 문제”라고 강조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그런 의견을 충분히 개진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주무장관으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 “내가 반대하는 안에 대해 자기를 바쳐 설명하는 것은 부적합하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물러나는 것이 대통령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진 장관은 또 사퇴 결정이 정치적 리스크가 될 것이라는 전망에는 “정치적인 면을 생각하기에 앞서 그런 안이 결정되면 장관을 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했다. 직원들한테도 그 안으로 결정되면 내가 장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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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 장관의 예식장 발언


사실로 드러난 청와대와의 갈등

진영이 드디어 입을 열면서 그동안 추정에 머물런 ‘기초연금 정부안 확정 과정에서 청와대와 알력을 겪었다는 갈등설’이 사실로 드러났다. 취재에 따르면 청와대와 복지부는 소득하위 70%까지 기초연금을 차등 지급하는 것에 대해서는 큰 이견이 없었다.


문제는 국민연금과 연계하는 방안이었다. 한 관계자는 “복지부는 애초에 ‘소득하위 70% 대상으로 소득인정액에 따른 차등지급’이다. 이는 국민행복연금위원회가 제시한 대안 중 첫 번째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8월 30일 이런 방안을 박근혜에게도 보고했다.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실에서는 복지부 방안에 이견을 제시했다. 며칠 뒤 청와대는 박근혜가 일관되게 제시했던 ‘국민연금 가입기간 연계’를 복지부에 확정 통보했다. 하지만 이는 국민연금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복지부는 물론 새누리당 정책위원회에서도 우려를 표시했다고 한다.


결국 정부안은 박근혜 대통령 "연계안" 의중 반영

이영찬 복지부 차관이 23일 기자설명회에서 “인수위가 당초 전체 노인 대상 40조 원의 예산을 할당한 것을 바탕으로” 했다고 말한 것에서 드러나듯 복지부는 청와대가 정해놓은 예산 범위 안에서 기술적인 미세조정 역할에 그쳤다. 장관으로서 할 수 있는게 별로 없는 셈이다. 이 과정에서 진 장관의 사퇴설이 흘러나왔다.


결국 정부안은 박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은 이미 지난 1월 28일 인수위 고용복지분과토론회에서 “20만 원이 안되는 부분만큼 재정으로 채워주는 방식으로 하면 국민연금의 장기 안정성에도 변함이 없다”며 국민연금 연계안을 제시한 바 있다.


복지부의 인식 '연계안은 국민연금 근간 훼손'

이에 반해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을 연계시키면 국민연금의 근간이 훼손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복지부의 인식이다. 기초연금 정부안 발표 직후 복지부의 한 국장급 인사가 사석에서 “국민연금이 타격을 받는 일이 있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말을 여러 차례 강조한 것도 국민연금제도 주무 부처인 복지부가 느끼는 부담감을 반영한다.


진영은 이미 3월 6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기초연금을 국민연금과 연계시키는 것에 회의적인 입장을 내비친 바 있었다. 당시 진 장관은 “제가 봐도 국민연금 가입자가 손해 보는 것 아니냐는 생각도 든다”며 “인수위 안은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해서 만든 안이지만, 저희가 직접 실행하는 건 다시 한 번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진영이 그동안 안팎으로 고립감을 느낀 것도 이번 사태 파동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8월 초 최원영이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으로 임명된 뒤 대선 공약 이행 방안을 자신이 직접 보고받는 등 진 장관을 배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는 게 복지부 안팎의 설명이다. 무상보육에 대해서도 진 장관은 지방정부에 더 많은 지원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이 역시 기획재정부의 반대에 막혔다. 이 과정에서 친정인 새누리당도 별다른 지원사격을 해주지 않았다.


9월 30일, 박근혜는 진영의 사표를 수리했다. 진영은 이날 오후 6시30분 이임식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기초연금만 해도 우리가 얼마나 논의 많이 했나. 여러분이 준 자료가 집에 가져간 것만 해도 바닥에서 책상까지 쌓여있다. 국민연금공단을 방문했을 때가 생각난다. 공단 직원들에게 건의사항을 말해보라 해서 들어보니 ‘기초연금은 국민연금에 연계시키지 말아달라’는 한마디로 수렴됐다. 그분들에게 장관으로서 죄송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1. 국민행복연금위원회 권고안 (2013년 7월 17일)

국민행복연금위원회 권고안 (2013년 7월 17일)  출처: 보건복지부
국민행복연금위원회 권고안 (2013년 7월 17일)
출처: 보건복지부


2. 대안별 기초노령연금 지출액의 GDP 대비율

대안별 기초노령연금 지출액의 GDP 대비율
(출처: 국민연금 바로세우기 국민행동)


3. 청와대 고용복지 수석이 제시한 '기초연금 주요쟁점 설명자료' 중에서 '국민연금 가입기간별 총 연금액 (20년 수급 가정)'

국민연금 가입기간별 총연금액  (출처: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실)
국민연금 가입기간별 총연금액
(출처: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실)



이 글은 2013년9월23~30일 기간 동안 취재와 기사를 바탕으로 했으며, 슬로우뉴스(http://slownews.kr/14254)에 실린 글과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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