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보육으로 인한 지방재정 대란이 임박하면서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
서울시에서는 당장 다음 달부터 양육수당 부족 사태가 벌어지고 7월부터는 보육료까지 모자라는 사태가 벌어진다. 지난해에는 부실한 예산추계로 인한 보육료 부족, 올해는 지난해보다 7배 이상 늘어난 양육수당 부족이 핵심이다. 전 국민이 보편적으로 누리는 복지서비스를 위한 재정을 누가 어떻게 부담할 것인지에 대한 제도 정비를 하지 않는 한 무상보육 대란은 연례행사가 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앙정부와 지자체는 책임소재를 둘러싸고 한 치도 양보없는 논쟁을 벌이고 있다. 무상보육을 두고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입장이 갈리는 지점은 자치단체들이 2013년도 예산안을 편성하면서 무상보육 대상확대에 따른 추가예산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해석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중앙정부 관점은 한 마디로 ‘자치단체들이 무책임하게 억지를 부린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반면 자치단체들이 바라보는 사태의 핵심은 ‘중앙정부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와 ‘생색은 다 내면서 부담은 지방에 전가한다’는 것이다.
진영 복지부 장관은 지난 15일 기자간담회에서 현 사태를 바라보는 중앙정부의 시선을 잘 드러냈다. 그는 먼저 “지난해 예산안 심의과정에서 지방비 부담 증가분 문제를 합의했다”면서 “예산부족사태는 자치단체이 제도변화를 감안하지 않고 예산을 예년 기준으로 편성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서울시에선 “정부는 ‘추가부담이 없도록 하겠다’는 지난해 약속을 어기고 있다”고 반박한다. 거기다 양육수당 문제는 지난해 국회예산안심의 과정에서 대상범위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지자체가 제대로 보조를 맞출 절대적인 시간 자체가 부족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무상보육은 크게 영유아보육료 지원사업과 가정양육수당 지원사업으로 구분할 수 있다.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만 0~5세 영유아에게 보육료를 지원하는 영유아보육료 지원사업 예산은 2조 5982억원이다. 지원아동수가 늘면서 지난해 대비 2069억원(8.7%) 증가했다. 어린이집을 이용하지 않는 만 0~5세 영유아(0세 20만원, 1세 15만원, 2~5세 10만원)에게 양육수당을 지급하는 가정양육수당 지원사업은 예산규모가 8810억원이다. 지난해보다 7784억원이나 늘어서 증가율이 758.7%나 된다. 두 사업 모두 소득과 상관없이 보편적으로 지원한다.
출처: 기획재정부
●“추가부담 없겠다” 약속해놓고는…
보건복지부와 서울시 입장이 갈라지는 출발점은 지난해 9월13일 김황식 당시 국무총리 주관으로 열린 중앙부처와 전국시도지사협의회장·임원단 간담회라고 할 수 있다. 당시 김 전 총리와 시도지사협의가 “보육료 지원방안에 대해 큰 틀에서 합의했다”고 했지만 두 가지 불씨를 남겼다. 하나는 “앞으로 지자체의 재정 부담이 발생하는 주요 시책과 제도 변경을 결정할 때 중앙정부와 지자체간 긴밀히 협의”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보육제도 운영에 따라 지자체의 재정 부담이 늘어나지 않도록 노력”한다는 대목이었다.
복지부에 따르면 올해 예산안을 심의하면서 국회와 정부, 자치단체들은 지방비 부담 증가분 7241억 가운데 77.7%인 5607억원을 중앙정부가 지원하기로 하고 예산을 확정했다. 추가 재정부담에 대해서는 중앙정부와 자치단체간 긴밀히 협의가 됐다는 것이다. 아울러 영유아보육사업 국고보조율을 서울시는 20%에서 40%로 늘려주고, 여타 자치단체는 50%에서 70%로 올려주는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이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중이라는 점도 거론했다.
이에 대해 자치단체는 상반된 시각을 드러냈다. 김상한 서울시 예산과장은 “추가부담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정부 약속을 믿고 2013년도 서울시 예산을 2012년도 정부예산안 수준으로 편성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서울시는 소득상위 가구가 많아 모상보육 확대에 따른 지방예산 부담을 가장 많이 받고 있데도 정부가 다른 자치단체는 국고보조율은 50%로 하면서 서울시에 대해서만 20%만 지원하는 것은 과도한 조치”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만 0~2세 무상보육을 시작했다가 지방예산 부족사태를 겪은 이명박 정부는 예전처럼 소득에 따른 보육료지원으로 후퇴시키려 했다. 하지만 국민여론과 국회의 압력에 밀려 ‘0~2세 소득상위 30% 보육료 미지급’과 ‘소득 상위 30% 가구 양육수당 미지급’이라는 절충안을 내놓았다. 2013년도 정부예산안은 이 기준에 따랐고, 자치단체들도 대부분 이에 맞춰 예산집행 계획을 마련했다. 하지만 국회예산안심의 과정에서 새누리당은 공약이었던 ‘0~5세 전면 무상보육’을 시행하기로 했다.
무상보육 관련 논의 추이
복지부에 따르면 올해 무상보육을 위해 자치단체는 국비 3조 4792억원에 대응해 3조 4599억원을 편성해야 하지만 실제 편성한 것은 2조 4995억원에 불과하다. 보육료 4832억원과 양육수당 4732억원이 부족하다. 여기에 국회에서 지원하기로 한 5607억원을 지원하더라도 부족액은 3957억원이나 된다. 특히 서울시는 보육료와 양육수당을 각각 5368억원과 2215억원을 편성해야 했지만 실제로는 각각 3741억원과 316억원만 편성했을 뿐이다. 서울시는 당장 다음달부터 양육수당, 7월부터는 보육료 부족사태를 겪게 된다.
올해 양육수당이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전계층 양육수당 지원이 국회에서 확정이 늦어지면서 자치단체들이 제대로 예산을 편성할 시간 자체가 적었다는 점, 그리고 추가부담은 없다는 중앙정부의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셈이다. 정부와 국회가 전면 무상보육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자치단체 부담을 경감해주는 조치를 취했다고는 하지만 사업을 직접 수행해야 하는 자치단체들 입장에선 턱없이 모자랐다는 것도 문제다.
이미 지난해 11월 13일 서울시구청장협의회 속속 24개 구청장들이 기자회견까지 열어 중앙정부에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당시 김영배 성북구청장은 “소득 하위 70% 지원안대로 하면 자치구 부담은 930억원, 거기에 국회에서 논의하는 전계층 지원안대로 하면 추가부담이 2320억원에 이른다”면서 “현실적으로 무상보육 예산편성 자체가 불가능해 내년 상반기중에 보육료가 바닥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을 통해 지방비 부족예산을 확보하도록 자치단체들을 독려하겠다”고 밝혔지만 실현 가능성은 낮다. 서울시 한 자치구 재정국장은 “추경을 하더라도 쓸 수 있는 재원이 30억원 가량인데 그걸로는 무상보육을 감당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른 자치구 관계자도 “추경은 고사하고 이미 편성해놓은 예산을 삭감하는 ‘감추경’을 고민해야 할 지경”이라고 털어놨다.
무상보육, 잘못꿴 첫단추
2010년 지방선거부터 2011년 서울시장 선거까지 한국사회를 가장 뜨겁게 달군 쟁점은 단연 ‘무상급식’이었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복지포퓰리즘 때문에 나라 망한다”고 외치다 주요 선거에서 연이어 패했다. 결국 정부·여당은 그 해 연말 보편복지라는 국민여론에 부합하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카드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다만 총선 승리만 생각하며 너무 서두르다 첫단추를 잘못 뀄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지방자치단체마다 아우성이 끊이지 않는 ‘무상보육’ 논란은 이미 관련 예산을 편성할 때부터 예견돼 있었다. 영유아보육료지원을 위해 정부가 제출한 2012년도 중앙정부 예산 규모는 당초 2조 215억원이었다. 하지만 2011년 12월30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는 해당 상임위에서도 제대로 거론조차 되지 않았던 0~2세 보육료지원 예산 3697억원을 갑자기 추가 책정했다. 영유아보육료 지원 예산은 그 다음날 본회의에서 2조 3913억원으로 의결됐다. 논의부터 의결까지 이틀밖에 안 걸렸다.
하지만 3697억원은 0~2세 무상보육을 하기엔 예산규모가 너무 적다는 것이 금방 드러났다. 정부·여당 계산서에는 그동안 0~2세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던 부모들이 이제 어린이집에 아이들을 보내게 될 것이라는 상식적인 예측이 들어있질 않았다. 정부는 0~2세 보육료 지원대상을 70만명으로 계산했지만 실제로는 연간 약 77만명에 이르렀다. 부실한 수요예측에 더해 정부는 자치단체들이 지난해 연초부터 거듭 경고한 지방재정위기 가능성을 무시했다.
무상보육 예산안을 심의할 당시 박재완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은 야당측 문제제기에 대해 이렇게 답변했다. “보육예산을 대폭 늘렸고 그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대안을 저희들이 검토하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여야 간사들과 협의했습니다.” 박 전 장관과 함께 무상보육을 옹호하던 김동연 전 기재부 제2차관은 반년이 지나 자치단체에서 본격적으로 예산부족 사태가 벌어지기 시작하자 이런 말을 남겼다. “재벌가 손자 보육지원이 공정사회에 맞는가. 지금 같은 보육지원 시스템이 과연 지속가능할 것인가 검토해야 한다.”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정부는 무상보육 후퇴가 아닌 유지를 선택했다. 김황식 당시 국무총리와 박원순 서울시장 등 시도지사협의회 대표들은 지난해 9월13일 간담회를 열고 무상보육에 따라 자치단체가 추가 부담해야 하는 예산 6639억원 가운데 중앙정부가 4351억원을 부담하기로 합의했다. 당시 시도지사협의회는 큰 틀에서 중앙정부에 협조하면서도 보육료지원에 대한 국고보조비율을 조정해 지방부담을 경감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 방안을 담은 법안은 현재 국회 계류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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