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급작스럽게 한국 아이돌그룹 공연을 주제로 현지 기획기사를 쓰라는 취재지시를 받았다. 당시 편집국 부장단회의에선 나한테 아이돌 공연 취재를 맡기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고 한다. '과연 저 친구가 아이돌그룹 이름이나 제대로 알까?'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란다.
귀국하고 나서 그 얘길 들으면서 나는 '역시 언론사 짬빱은 대단하구나' 싶었다. 사실 나는 아이돌그룹 이름도 제대로 모른 채 취재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공연을 시작하고 나서 어떤 아이돌그룹이 춤추고 노래하는 걸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샤이니는 언제 나오나... 공연 순서표에는 샤이니라고 돼 있는데 재네는 누구지?'
걔네는 바로 샤이니였다. 샤이니라는 이름을 공연 시작 전 받아본 공연 순서표에서 처음 인식한 나는 이들이 당연히 걸그룹일 거라고 생각했다. (샤이니... 여성스럽지 않나?) f(x) 역시 존재 자체를 그날 처음 들어봤다. (얘네는 걸그룹이란 걸 제대로 맞췄다.)
공연을 한 아이돌그룹은 소녀시대, 슈퍼주니어, 동방신기, f(x), 샤이니 등이었다. 샤이니가 보여준 노래와 춤을 본건 무척이나 행운이었다. f(x)도 감히 훌륭했다고 말할 수 있다. 동방신기는 두 명 밖에 남질 않아 '동방'으로 전락했다곤 하지만 그래도 엄청난 카리스마를 느낄 수 있었다. 슈퍼주니어는 선입견과 달리 꽤 노래를 잘하는 (구성원을 몇 명 보유한) 그룹이었다.
소녀시대는 아홉명 모두 예쁘다는걸 내 눈으로 확인했다. (이들의 노래실력에 대해서는 역지사지하는 마음으로 거론하지 않으련다.) 아울러 '윤아'가 소녀시대 대장이 아니라는 걸 귀국하고 나서야 알았다. 나는 그런줄도 모르고...
공연은 세 시간이 넘게 진행됐다. 난 사실 그날 하루종일 취재때문에 이리 뛰고 저리 뛰느라 진이 다 빠져 있었다. 공연을 굳이 보고 싶은 마음도 안 날 정도로 지쳐 있었다. 만약 어떤 사진기자가 괴성을 지르고 방방 뛰는 관람객들 한가운데서 혼자서 팔을 괴고 몸을 웅크린채 심드렁하니 앉아있는 내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다면 꽤 그럴듯한 작품이 되지 않았을가 하는 생각도 해봤다.
어쨌든 취재는 취재다. 엉덩이 붙이고 앉아있는 와중에도 나는 취재는 했다. 사람들 반응을 살피며 보고 듣고 느낀 걸 쉴새없이 수첩에 적었다. 그리고 사진도 몇 장 찍었다. 그런데 내 작은 사진기로는 공연 모습을 제대로 담을 수가 없었다. 좀 좋은 카메라라도 들고 있었으면 내 모습이 조금이나마 덜 없어보이지 않았을까....
적어도 나는 샤이니가 남자애들 그룹인걸 몰랐고 f(x)는 고등학교 수학시간 이후로 처음 접했지만 왜 파리에서 공연이 그렇게 성공했는지, 성공요인이 무엇이고 파리 젊은이들이 공연을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혹시 우리가 지레 호들갑떠는건 아닌지 끊임없이 '다르게' 생각하려 노력했다. 그래서 내가 쓴 파리 공연 기사는 그 어떤 기사보다도 '삐딱했다'. 다들 '한류열풍'과 '파리 점령'을 외칠때 최소한 '한국문화에 개방적인 프랑스 파리의 문화역량'을 주목했다는 건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걸로 위안을 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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