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17일자 서울신문에 실린 기자수첩을 통해 서울시 정보공개시스템을 비판한 뒤 박원순 서울시장과 서울시가 내게 보여준 반응은 예상을 한참 뛰어넘는 것이었다. 박 시장은 내게 "기사 잘 봤다. 좋은 지적 고맙다."고 말했는데, 비판기사 쓴 뒤 비판받은 당사자한테 칭찬받기는 기자생활 10년만에 처음이었다.
2012/02/16 - 박 시장은 정보공개, 서울시는 복지부동?
기사가 나간 게 금요일인데 박 시장은 바로 그 다음주 월요일에 시청 실국장들을 모두 소집해 정보공개시스템 점검과 개선책 마련을 주문했다. 이 자리에서 실국장들은 “박 시장에게 엄청나게 깨졌다.”고 한다. 처음엔 박 시장이 평소 정보공개와 기록관리에 관심과 애정이 많아서 그런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지난달 일본을 방문해 요코하마 시청을 찾은 박원순 서울시장.
지난달 중순 박 시장은 야당인 새누리당 소속 초선 시의원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서울시가 저지른 중대한 잘못에 대해 사과했다. 지난 1월 말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김용석 시의원이 새로 취임한 박인배 세종문화회관 사장과 김홍희 시립미술관장에 대한 직무수행계획서 등 자료를 시에 요청했다가 퇴짜를 맞은게 발단이었다.
박 시장은 2010년 8월 한 자리에서 “민주주의가 잘 작동하게 하려면 국민에게 정보를 무장시켜야 한다.”면서 “제 소원은 대한민국 정부가 가장 투명한 정부, 숨길게 없는 정부, 하늘 아래 가장 당당한 정부가 되는 것입니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미 10여년 전인 참여연대 사무처장 시절엔 정보공개사업단을 만들어 투명한 정부를 만드는 운동을 벌였다.
틈날 때마다 ‘투명한 서울시를 위한 과감한 정보공개’를 강조해온 박 시장이 보기에 산하 기관장 직무수행계획서를, 그것도 시의원 요구사항인데도 대놓고 모른체하는 모습이 어떻게 보였을까. 그런 차에 ‘서울시 정보공개시스템이 엉망’이라는 보도가 나가자 박 시장의 분노가 폭발한 셈이다.
그 뒤 시는 다양한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서울시 역사상 처음으로 100명이 넘는 팀장들이 한 자리에 모여 정보공개 교육까지 받았다. 2012/03/18 - 서울시 정보공개시스템 전면 개편 작업 착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에게 그토록 어이없는 '굴욕'을 안겨준 서울시 행정시스템을 보면서 최근 한 지인이 들려준 어떤 얘기가 내내 씁쓸하게 머리를 맴돈다.
“오늘 서울시 책임자급 공무원 만났다. 시장이 한 번 지시한 건 그냥 듣고, 두 번 말하면 대꾸만 하고, 세 번째 언급해야 진짜하라는 걸로 알고 움직인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