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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생각

누가 공무원을 생선가게 고양이로 만드는가

by betulo 2009. 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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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보통 공무원이 막대한 예산을 관리하는 것을 두고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다.’는 식으로 생각하곤 한다. 여기에는 두가지 논리상 허점이 있다. 첫 번째는, 생선 앞에 마음 약해지는 고양이가 공무원 뿐이냐는 것이고, 두 번째는 다소 괴변같지만 공무원은 고양이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점이다.

고양이와 생선 얘기는 학술적으로 표현하면 ‘주인-대리인’ 모형이 된다. 니스카넨, 피콕, 롤리 같은 학자들이 발전시킨 이 모형을 단순하게 표현하면 “주인인 국민은 그 대리인인 관료들이 공적 업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자기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를 감시할 수 없다는 점”을 현대 자본주의 각종 문제점의 근원으로 지목한다.

공무원만 생선 앞에 고양이가 되는 건 아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경제학과 교수 장하준은 <국가의 역할>에서 주인-대리인 모형에 대해 예리한 비판을 가한다. 그의 논의를 근거로 공무원과 고양이를 연결시키는 논리에 대한 첫 번째 비판을 해보자.

“주인-대리인 모형은 매우 정치성이 강한 논리였다. 자기중심적 행위라는 전제가 사적 부문은 물론 공적 부문의 대리인에게까지 적용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전개함으로써 복지국가의 자애로운 가부장제에 대한 대중적 신뢰를 뒤흔드는 한편 정부관료들의 자긍심과 업무책임감까지 타격을 가했다.”

주인-대리인 모형은 시장근본주의(신자유주의)에서 아주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이론적 근거다. 장하준은 “특정한 개별 사안에서는 알찬 접근 방식”이라고 인정하면서도 “그러나 일반적 수준에서는 당혹스런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꼬집는다. 다시 말해 “누가 주인이고 누가 대리인인가. 국가는 국민의 대리인이라고 하지만 사회복지 프로그램 문제에선 ‘국가’가 주인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현대 사회의 복잡한 정치과정을 충분히 감안하지 않는다면 주인-대리인 모델은 주요 쟁점들을 애매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으로 귀결될 뿐이다. 주인-대리인 모델은 정치-경제 과정의 복잡성을 반영할 수 없다. 이 모델이 주목하는 요소는 오직 ‘자신의 부를 극대화하려는 이기적 개인’밖에 없기 때문이다.”

공무원만 생선 앞에서 마음 흔들리는 게 아니다. 그건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얘기다. 공무원을 믿지 못해 민간에 맡기자고?

복지예산 관리를 삼성그룹이나 현대그룹에 맡기면 지금보다 복지예산관리가 더 잘될 거라고 자신하는 사람 있나? 공무원을 고양이로 환원시키는 프레임의 결과 우리가 얻는게 뭔가. 없다. 그나마 ‘공익을 위해 일한다’는 공무원들의 자존감만 갉아먹을 뿐이다.

공무원은 고양이가 아니라 사람이다

내가 두번째로 지적하고 싶은 건 괘변처럼 비칠 수 있겠지만 내 딴에는 중요한 얘기다. 고양이에겐 생선을 맡기느냐 안 맡기느냐 하는건 아무 의미가 없다. 고양이는 자기가 맡았건 안 맡았건 생선에 눈독을 들인다. 호시탐탐 생선을 노릴 뿐이다. 하지만 공무원은 고양이가 아니다.

그들이 생선에 눈독을 들이지 않도록 하는 부패방지시스템만 있으면 문제는 사실 간단하게 풀 수 있다. 복지수당 횡령? 하루종일 복지수당 입력 제대로 했는지 감시하는 일만 맡은 직원 한 명만 있어도 그 직원 인건비 이상으로 예산 절약할 수 있다.

우리는 자꾸 공무원을 고양이로 비하하면서 정작 공무원을 고양이가 아닌 사람으로 자리매김하는데는 소홀하다. 정부활동을 적극 공개하고 정보공개 대상도 확대하고, 정보공개제도 위반에 대해 제재조치를 두고, 모든 국민까지는 아니더라도 사회 지도층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의 세금납부 내역을 전면 공개하는 등 몇가지 조치면 공무원이 고양이로 둔갑하는 불행을 막을 수 있다.

거기다 공익제보 활성화를 위한 신분보장과 인센티브 제공, 고위공직자 비리 전담 수사기관, 각급 기관 감사인력 독립성 강화 등을 곁들이면 왠만한 국민 모두 고양이 될 걱정 없이 살 수 있다.

공적자금 감시시스템이 없다

꽤 긴 사설을 늘어놓은 발화점은 바로 오늘자 경향신문 보도다.

외환위기 11년만에 ‘공적자금’이 다시 나타났다. 그때와 다른 점도 물론 있겠다. 당시엔 그래도 체계적인 공적자금 관리시스템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 3월17일자 경향신문 보도 <공적자금 60조 ‘관치자금’ 전락하나> 기사는 그 점에 주목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공적자금 규모가 60조원이나 된다.


“정부는 은행자본확충을 위해 은행자본확충펀드를 조성키로 한 데 이어 금융기관 부실채권 매입과 구조조정 기업 자산매입을 위해 40조원의 구조조정기금(자산관리공사가 운용)을 조성할 방침이다. 또 모든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선제적 자금지원을 위해 금융안정기금을 조성키로 했다. 이에 따라 60조원이 넘는 공적자금이 조성돼 기업 구조조정과 금융기관 지원에 쓰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금융안정기금을 산업은행에서 분리하는 정책금융공사에 설치하기로 했다는데 한국정책금융공사법에는 공적자금 집행을 감시할 수 있는 제도가 없다고 한다. 은행자본확충펀드와 구조조정기금은 공적자금관리특별법 대상이 아니다. 금융위원회는 은행자본확충펀드 운용을 위한 운영위원회를 두고 있지만 9명 중 6명이 정부와 준정부 인사다. 공적자금관리위원회는 지난해 2월 폐지됐다.

외환위기 당시보다 못한 공적자금 관리 시스템

경향신문이 지적한 11년전 외환위기 당시 시스템은 충분히 주목할 가치가 있다. “비교적 체계적이이었던 것으로 평가된다.”는 당시 시스템은 “금융기관의 자본확충은 예금보험공사가 맡고 부실채권 정리는 자산관리공사가 담당”했다.

“공적자금관리위원회는 공적자금 투입과 사후관리를 감독하고, 국회와 감사원은 사후감사를 맡았다.” 거기다 공적자금관리위원회 구성은 “대통령, 국회의장, 대법원장 추천을 받은 5명의 민간위원과 재경부 장관, 기획예산처 장관, 금융감독위원장 등 정부 인사 3명”으로 돼 있었다.

지난해 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7000억 달러에 이르는 공적자금을 투입한 미국의 사례는 한국 정부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미국은 금융감독체계의 실패가 금융위기의 주된 요인이라는 인식 아래 공적자금에 대한 철저한 관리감독을 통해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금융위기를 안정시키고 비우량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인한 주택압류를 방지하기 위해 재무부가 7000억 달러 규모의 부실자산을 매입, 보증할 수 있는 ‘부실자산구제 프로그램(TARP)’을 승인하는 것을 주내용으로 하는 긴급경제안정법(EESA)을 제정했다.

‘어린쥐’가 아니라 부패방지시스템을 배우자

천문학적인 공적자금 투입에 따른 도덕적해이, 비효율성과 법규위반 등을 막는 일이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긴급경제안정법은 구제금융조치 과정에서 관련 법규를 준수하는지, 공적자금 운용이 효율적이고 취지에 맞게 집행되는지 감사할 수 있는 각종 규정을 두었다.

이에 따라 재무부에 감사원(GAO) 상설감사장을 설치하고 모든 관련자료와 시설, 정보와 담당공무원에 대한 접근권한 부여하도록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미국 감사원은 최대 60일마다 구제조치 이행실태 감사결과보고서를 의회에 보고해야 한다.

미국 감사원은 해마다 부실자산구제 프로그램의 활동, 지출, 재무거래 등을 확인하고 재무제표가 회계감사기준에 맞게 작성됐는지 감사한다. 재무부가 지적받은 사항에 대해 개선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할 때는 의회 위원회에 소명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금융기관의 과도한 차입 방지를 위한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증권거래위원회, 재무부 등 감독기관의 역할과 책임을 다룬 연구를 수행해 오는 6월까지 보고해야 한다.

긴급경제안정법은 이밖에 특별감찰관실, 금융안정감시위원회, 의회감시패널, 예금보험공사, 연방수사국 등 다양한 감시감독체계 구축했다. 재무부는 최초 구제금융방안을 검토하면서 담당공무원 면책조항을 포함시켰지만 이 조항은 의회 검토과정에서 삭제됐다.

오히려 불법행위 뿐 아니라 법규 위반, 재량권 남용, 자의적이거나 일관성이 결여된 조치 등을 사법적 검토대상에 포함시키는 강력한 규제조치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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