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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說/경제雜說

"미국은 더이상 글로벌스탠더드 아니다"

by betulo 2008.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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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일은 말한다. “자유시장 경제에서 거품은 끊임이 없다.” 또하나 끊이지 않고 존재하는게 하나 더 있다. “모두들 이번만은 거품이 아니다. 이번만은 다르다.” 결론은 언제나 똑같다. 몇 년 전 거품붕괴로 불황 겪어놓고도 이번에는 아니라고 하며 우루루 몰려갔다 패닉에 빠져든다. “킨들버거 말마따나 자본주의 역사는 광기와 패닉과 붕괴의 연속이다.”

10여년 전 미국은 닷컴 거품이 한창일 때 신경제(New Economy)라는 새로운 이론까지 만들어 가며 거품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거품이 생기고 나면 사람들은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이번만은 다르다고 한다. 하지만 모든 거품은 결국 터질 수밖에 없다.”

대공황 당시 뉴욕의 실업자 행렬

대공황으로 너무 엄청난 경제위기가 되면서 그 이후 개혁이 일어났다. 불황의 규모가 워낙 컸고, 민주주의 진척이 원인이 됐다. “극도의 불안정성과 부의 편중을 일으켰던 자유방임적 시장경제는 생존할 수 없었고 결국 미국은 루즈벨트가 뉴딜 개혁을 했다. 사회보장 강화, 노조 강화, 노동규제 강화, 대기업 규제 강화…”

유종일은 무엇보다도 루즈벨트가 추진한 금융개혁을 주목한다. “1929년 대공황이 발생하고 1933년 루즈벨트가 취임할 때까지 미국 정부는 무엇을 했을까? 아무것도 안했다. 어쩌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루즈벨트 개혁 이후 금융시스템이 급속도로 안정됐다. 80%를 오르내리는 엄청난 소득세 부과 등 일련의 개혁은 ‘대압착’을 일으켰고 미국은 급속히 중산층 중심 사회가 되면서 안정을 찾았다.

금융자유화는 금융위기를 부른다

“은행위기, 금융위기는 뉴딜 이전까지는 굉장히 많았지만 40~60년대 황금기에 거의 사라졌다. 그게 뉴딜금융개혁 이후 안정된 것을 반영한다. 그게 다시 늘어난 것은 금융자유화로 인한 것이다. 금융자유화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브레턴우즈체제 붕괴 이후 환율변동으로 인해 환헷지에 대한 필요성 증대 때문이다. 환헷지를 하려니 금융규제가 걸림돌이 된다. 환헷지가 환투기를 부르고 규제완화에 대한 요구가 높아진다. 70년대 미국, 80년대 일본과 유럽, 90년대 한국 등 이머징마켓 순으로 금융자유화했다. 그리고 나서 거의 예외없이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금융위기에는 크게 3가지 요인이 있는데 이게 서로 영향을 미친다. 세가지 모두 요인이 되기도 하고 두가지가 결합해 위기를 만들기도 한다.

1. 자산거품

2. 신용거품. (유동성과잉)

3. 급격한 자본 유출입

돈 놓고 돈 먹기, 서브프라임의 끝

본격적으로 미국발 금융위기로 들어가 보자. 유종일은 부시 당선 직후 닷컴거품 붕괴에서 얘기를 풀어나간다. 거품 붕괴로 나스닥 주가가 곤두박질칠 때 미국 정부는 거품을 키워 경기를 부양하는 정책을 폈다. 부시 정부는 거품 붕괴에 맞선다며 초저금리 정책을 폈다.

“사실 1990년대 닷컴거품은 세입 증가로 이어졌고 그 덕분에 클린턴 정부는 이전 정권에서 이어받은 막대한 재정적자를 해소할 수 있었다. 부시는 집권하자 재정흑자인 상황을 강조하면서 세금을 깎아줬다. 감세는 경기부양으로 이어지고 그것은 다시 세수증가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한쪽에선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전쟁을 일으키면서 말이다. 결과는? 사상최악 재정적자다. 그게 지금 한국정부에 그대로 적용되는 얘기다.”

저금리로 인해 과소비가 늘었고 이는 부동산 거품으로 이어졌다. 부동산거품이 증가하는 와중에 경상수지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경상수지 적자는 간단하게 말해 미국 정부가 수입보다 지출을 더 많이 하는 것이다. 경상수지적자는 결국 달러가 전세계로 풀린다는 걸 뜻한다. 물건 수입하면서 지불은 달러로 하니까 세계로 달러가 풀리니 달러 가치가 하락할 수밖에 없다. 인플레이션이다. 이는 위기가 세계로 퍼진다는 걸 뜻한다.

유종일은 “결국 감세와 규제완화가 불러온 비극이며 금융시스템 위험관리시스템이 실패한 것”이라고 진단한다. 그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투자은행”이라면서 “투자은행의 행태는 한국 복부인과 다를게 하나도 없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투자은행들은 미국판 복부인”

“투자은행들이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 간단하게 설명해보자. 시장에서 돈을 빌려서 그걸 팔고 그 돈을 기초로 또 자금 모으고 그 과정을 반복한다. 차입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자본금 100원인데 50배 차입했는데 투자수익률이 10%였다고 하자. 그럼 500원 수입이 생긴다. 대박이다. 대신 손해를 보면 쪽박이다. 도박게임이다.”

유종일은 “신용평가회사는 위험성을 제대로 평가하지도 않았고 규제당국도 제 역할을 하지 않았다. 위험관리에 총체적으로 실패했다.”면서 “이는 미국식 주주자본주의와 관련 있다.”고 밝혔다. 유종일이 주주자본주의를 비판하다니. 나는 귀를 쫑긋 세웠다.

“회사의 주인을 누구로 볼 것인가. 주주인가? 사장인가? 직원인가? 그 모두를 포함하는 이해관계자인가? 그 질문에 대해 펜실베니아대학 왓튼스쿨이 미국, 프랑스, 일본에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미국에선 굉장히 높게 나왔다. 프랑스는 10% 가량, 일본은 5%도 안됐다. 한국이라면 어땠을까? 50%는 나왔을 거라고 본다.”

유종일은 “미국식 주주자본주의는 경영진과 주주들이 결탁하는 형태가 됐다.”는 나름 충격적인 진단을 이어간다. “주주자본주의는 경영진이 주주이익 극대화를 위해 노력하도록 하기 위해 스톡옵션을 제공하는 등 유인책을 폈다. 그에 따라 종업원은 무시했다. 그 결과 소수 엘리트들이 이득을 독점하는 구조가 돼 버렸다. 뉴딜개혁의 성과를 무위로 돌려버렸다. 주가가 뛰는게 지고지선이 돼 버렸다. 주가를 띄우기 위한 과정에서 엔론 스캔들이 등장하고 정치는 타락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미국식 금융주도 자본주의에 내재한 위험이었다.”

충격 진단은 수위를 갈수록 높여간다. “금융이 어떻게 가치를 창출하느냐. 어느 분야가 가치를 창출할까? 나는 농업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그 다음이 제조업이고 여러 서비스업이다. 금융이란 그런 시스템이 잘 돌아가도록 지원하는 거다. 위험을 분산시키는 게 금융이다. 금융은 그 자체로는 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 지금 키코 사태를 봐라. 금융이 제조업을 잡아먹는 사태가 발생한다. 룩셈부르크 같은 작은 나라나 싱가포르 홍콩 같은 곳에서나 금융산업으로 먹고 산다. 대신 소득분배가 제대로 안되는 부작용이 있다.”

미국은 더 이상 ‘글로벌 스탠더드’가 아니다

유종일은 1930년대 대공황같은 사태가 재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당시는 금본위제였지만 지금은 금본위제도 아니고 민주주의 발전으로 정부가 손 놓고 있지 않을 거라는 이유에서다. 당시는 국제경제질서 붕괴로 이어졌지만 지금은 국제공조가 이뤄진다는 것도 차이점이다. 그가 제시하는 전망은 이런거다. “당분간 하강국면은 분명하다. 실물경제 후퇴는 있겠지만 대공황같은 마이너스 성장은 없을거다.”

지금 상황에서 주목해야 할 정치적 함의가 있다. “미국식이 글로벌 스탠다드로 통하는 시대는 끝났다.”는 거다.

“영국이 제시한 은행국유화 방안에 미국이 따라간다.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가 신 브레턴우즈체제를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건 당연히 국제자본이동에 대한 규제를 수반한다. 그게 시대의 대세다. 미국이 가진 경제적 헤게모니는 어차피 끝나게 돼 있다. 이번 위기가 그걸 더 앞당길거다. 달러는 기축통화 지위 잃어버릴 거라고 본다. 21세기 초에 나는 2020년 이후에는 달러가 기축통화 구실을 못할 거라고 얘기해왔는데 그게 더 빨라질 것이다. 달러를 이어받을 기축통화는 유로가 될 거라 본다.”

험한 산길에서 엑셀레이터 밟는 한국

세계경제를 개괄했으니 이제 한국경제를 진단할 차례다. 왜 한국은 환율 주가 금리 금융시장 불안이 유독 심할까. 왜 외국 투자자들이 한국에 대해 계속 불안해할까.  

여러 복병 가운데 먼저 꼽을 수 있는게 부동산거품이다. 유종일은 “부동산거품 엄청나게 커졌다.”면서 “부동산 거품이 터지면서 엄청난 충격 있을것”이라고 전망했다.

“많은 건설사와 저축은행 무너질 꺼다. 자영업자는 어려워지고 가계대출은 부실해지고. 한국 경제는 사실 그동안 빚더미 위에서 잔치를 벌였다. 자본유입의 결과로 일시적 호황이 있었다. 도쿄나 홍콩에 쇼핑하러 가는 사람들, 동남아시아로 골프 여행하는 사람들 얼마나 많았느냐. 그게 결국 빚잔치다.”

지나치게 높은 대외의존도도 복병이다. 유종일은 한국의 식량자급률 27%, 거기서 쌀을 빼면 5%를 거론하면서 “세계에 이런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꼬집는다. “식량 다음으로 중요한게 에너지다. 북한이 1990년대 이후 경제가 무너진게 결국 에너지 문제 때문이었다. 한국 에너지 자급률이 0%다. 무역의존도는 117%나 된다. 외환위기 전에는 60% 가량이었다. 주식시장 외국지분이 30~40%나 된다. 유례가 없이 압도적으로 외국인 지분이 많다. 세계에서 가장 개방이 많이 된 나라 가운데 하나가 한국이다.”

정책도 복병이다. 유종일이 보기에 현재 한국정부의 경제정책은 세계흐름을 역행하고 있다. “지금 정부는 시한폭탄이 곳곳에 묻혀 있는 험한 산길을 건너야 한다. 시한폭탄 제거하면서 조심조심 안전운전해야 하는데 정부는 엑셀레이터 밟고 있다.”

그는 “올해 초 경제관련 연구기관장들 대통령과 다 모여서 7% 성장 가능하다는 곡학아세 했다.”는 사실을 거론하면서 “정부가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으로 무장해 있다. 성장지상주의로 모든 것을 풀겠다는 발상, 금융시장에게 협박하고 기업에 대해 사면해줬으니 투자하라고 하는 관치 발상에 묻혀 있다.”고 비판한다. 거기다 “위기상황에서 정부가 이념논쟁이나 일삼으면서 국력 분열시키고 있다.”는 것까지.

그가 보기엔 정책 일관성도 없어 정부정책이 시장 신뢰를 잃었다. “해외은행이 국내은행 집어삼키는데 국내 은행은 쳐다만 봐야 하는 모순을 풀어야 한다며 규제를 없애버리겠다고 했다. 그게 금산분리의 논리였다. 국내은행 지키려 금산분리한다면서 다른 한편으론 은행 외국에 매각하려 한다. 그런 모순이 세상에 어디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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