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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을 생각한다/판결을 비평한다

판결감시운동으로 사법부 감시한다

by 자작나무숲 2007. 4. 6.
판결감시운동으로 사법부 감시한다
시민단체들 판결비평 관련 간담회 열어
2006/11/22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판결이 법적, 사회적 기준으로서 가지는 중요성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지금 이 시간에도 환경, 노동, 문화, 인권, 여성 부문 등 각 시민사회운동 부문별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판결들이 쏟아져 나오는 실정이다. 그동안 시민사회단체는 각 부문별 주요 판결에 대해서, 그 판결의 경향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전적으로 법률가들에만 의존하거나(법적 대응, 변론 등을 통한 대응), 각 단체차원의 비판 입장문 발표와 같은 정도의 방식으로 대응해 왔다.
최근에는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성폭력 조장하는 대법원 판례바꾸기 운동’을 벌이고,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와 <시민의신문>이 판결에 대한 대중적 비평 확산을 위해 ‘판결비평사업’을 펼치는 등 새로운 흐름이 나타났다. 이는 사법부와 판결에 대한 시민사회의 대응방식을 폭넓게 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와 <시민의신문>은 판결비평 10회에 즈음해 사법부 판결에 시민사회단체들이 대응하는 현황과 발전방향을 모색하는 간담회를 지난 20일 참여연대 회의실에서 마련했다. /편집자주

“판결감시운동을 통해 앞으로 있을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국민들에게 판결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효과도 거둘 것이다.”

판결감시운동을 통해 사법부를 감시하자는 운동이 시민사회단체에서 일고 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지난해부터 꾸준히 ‘판결비평’을 열고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성폭력 조장하는 대법원 판례 바꾸기’ 운동을 벌인다. 녹색연합도 환경법포럼(가칭) 결성을 준비하고 있다. 이밖에도 문화연대나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등은 국가보안법, 표현의자유, 노동 관련 판결에 대한 감시운동을 꾸준히 벌이고 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와 <시민의신문>은 판결비평 10회에 즈음해 사법부 판결에 시민사회단체들이 대응하는 현황과 발전방향을 모색하는 간담회를 지난 20일 참여연대 회의실에서 마련했다.
양계탁기자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와 <시민의신문>은 판결비평 10회에 즈음해 사법부 판결에 시민사회단체들이 대응하는 현황과 발전방향을 모색하는 간담회를 지난 20일 참여연대 회의실에서 마련했다.

이들 단체들은 ‘사법부와 시민사회-시민사회 발전의 걸림돌과 디딤돌 판결, 어떻게 다루면 좋을까?’라는 간담회를 통해 서로 경험을 나누고 법원을 바꾸기 위해 시민사회단체들이 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가 지난해 3월부터 <시민의신문>과 함께 펼치는 판결비평사업은 광장에 나온 판결 발행, 판결비평좌담회 개최, 시민의견개진 등을 통해 “시민이 판결을 비평한다”는 정신을 실천하려고 시도한다. 좌담회는 미술교사 작품 음란물 판결, 여성장애인 성폭력 무죄인정 판결, 내부고발자 보복조치 용인 판결, 청렴계약제 효력제한 결정 등 10번에 이른다.

녹색연합은 대규모 국책사업과 관련한 공익소송 경험이 많다. 정연경 녹색연합 환경소송센터 사무국장은 “새만금, 천성산, 명지대교 등 길게는 10년 넘게 국가와 소송을 벌였지만 판결은 대부분 실망스러웠다”며 “논평을 통해 판결을 비판하는 건 있었지만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제대로 못한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내년에 환경법포럼(가칭)을 만들려고 준비하고 있다”며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 환경권을 대규모개발사업 판결에 담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천성산터널 소송은 도룡뇽이라는 자연물을 소송주체로 했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새만금 사건에서도 환경단체들은 지역주민이 아닌 이들까지 원고로 내세웠지만 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여전히 문제는 법원

이날 간담회에서는 각 분야에 걸쳐 사법부 판결경향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정현우 변호사(금속연맹 법률원)는 “자유권에 치우친 노동판결”을, 이원재 문화연대 공동사무처장은 “너무나 자의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해석하는 경향”을, 박성희 민가협 간사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북한 위협만 내세우는 국보법 판결”을 예로 들며 사법부를 비판했다.

정 변호사는 “민주화 이후 자유권(시민·정치적 권리) 영역은 사회적 합의가 많이 생겼지만 사회권(경제·사회·문화적 권리)은 법원에서 여전히 먹통”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노동분야로 대표되는 사회권,생존권 영역에서 판사들 시각이 너무 민법에 치우쳐 있다”며 “사법연수원조차 노동법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다 보니 노동분야 변호사가 아니면 노동권 인식을 갖고 노동법을 볼 기회가 거의 없다”고 우려했다.

한국은 판례법 국가가 아니다. 그럼에도 실제 사법현실은 판례법 국가보다도 판례의 권위가 강력하다. 정 변호사는 “이미 고시를 준비할 때부터 판례를 절대시하는 게 현실”이라며 “사법연수원에서 성적이 좋은 사람은 곧 판례를 잘 아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변호사 입장에서는 평생에 판례 한 번 바꾸면 가문의 영광이라는 우스개소리도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원재 문화연대 공동사무처장은 “최근 문화단체들이 주목하는 것은 음란물 관련 판결을 비롯해 표현의 자유와 관련한 사건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판사 개개인의 주관적 가치판단과 성적취향이라는 주관적 요소가 판결에 지나치게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우려했다. 그는 “문화단체에서는 상업성이 성적표현을 지향할 경우 어떻게 볼 것인가를 두고 논쟁을 벌이는데 사법부는 호랑이 담배 피우는 얘기만 하고 있다”고 비꼬았다.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는 국가보안법 사건을 연행 단계부터 판결까지 감시하는 활동을 한다. 사회적 의미가 큰 판결은 별도로 보고서를 낸다. 박성희 간사는 민주노총 강원본부가 국보법 폐지를 촉구하는 플랭카드를 걸려다 춘천시가 불허하자 소송을 냈던 사건을 예로 들며 “국보법 판결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표현의 자유, 사상양심의 자유에 대해 대단히 뒤쳐져 있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당시 1심과 2심은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춘천시의 위법을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원심을 파기했다.

그는 시대흐름을 못 따라가는 판결 흐름의 대표적인 사례로 한총련 관련 판결을 든다. 그는 “사법부는 기존 판례를 그대로 이어받으면서 ‘과거 판례가 있기 때문에 그에 준한다’는 판결 일색”이라며 “사법부가 일을 너무 편하게 한다”고 꼬집었다.

공판중심주의 통해 법원을 광장으로

박근용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팀장은 “일본에서 한센인 관련 소송이 한창일 때 공판이나 판결이 있을 때마다 법률가와 운동가를 비롯해 일반 시민까지 모여 설명회를 개최했던” 사례를 예로 들며 일본의 판결감시운동을 소개했다. 그는 “변론과정에서 나오는 쟁점을 설명하고 소송의 의미를 알리는 활동을 통해 시민을 대상으로 교육과 토론을 하는 노력이 돋보였다”며 “재판을 법관과 변호사라는 좁은 틀에서 시민들까지 참여하는 넓은 틀로 확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간담회를 지켜본 박경신 고려대 법대 교수(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는 “법치주의 과잉이라는 표현에서 보듯 너무 법으로 해결하려 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와 법조인에게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교차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법치주의 과잉이라고 표현하든 보수적 판결이라고 표현하든 현 사법부의 구시대적 판결, 자의적 판결을 극복하는 방안을 고민하자”며 “이를 위해 공판중심주의, 배심제 참심제 로스쿨 등 사법제도개혁을 위해 힘을 모으자”고 강조했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자주색 봉투에 담은 ‘성폭력 옹호 이제 그만’
성폭력상담소 ‘대법원 판례 바꾸기’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폭행이나 협박을 가했다고 하더라도 그 폭행·협박이 피해자의 항거를 불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까지 이른 것이라고 보기에는 미흡한 것이 아닌가 의문이 든다.” (1992년 대법원 판결)

“피고인은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정도의 유형력을 행사해 피해자를 간음한 것으로 볼 여지는 있으나, 더 나아가 유형력 행사로 인해 반항을 못하거나 반항을 현저하게 곤란하게 할 정도까지 이르렀다는 점에 대해서는 합리적인 의심이 없을 정도로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 (2004년 대법원 판결)

1992년이나 2004년 모두 대법원은 1심과 2심에서 유죄판결이 나왔는데도 이른바 ‘최협의설’에 입각해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해 6월 열린 제2회 판결비평 좌담에서는 최협의설이란 결국 “저항하지 않은 강간은 무죄”라는 논리라고 꼬집기도 했다. 이는 결국 성폭력 사건 고소율 6.1%(1998년 한국형사정책연구원)와 기소율 43%(2004년, 법무부)라는 현실로 되돌아온다. 한국에서 성폭력피해자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결국 “죽을힘을 다해 저항하다가 죽는 것”밖에 없는 것일까.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지난 7월부터 ‘대법원 판례바꾸기 운동’을 통해 성폭력 피해생존자 인권을 존중하는 대법원 판결을 시민사회가 강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법원 판례 바꾸기 운동’은 사회적 통념에 안주하거나 시대를 역행하는 대법원 판례가 존재하는 한 성폭력 피해 여성을 구제할 수 없다는 고민에서 나왔다. 성폭력상담소가 지적한 대표적인 시대착오적 대법원 판례는 △협박을 협소하게 이해하는 최협의설 △항거 불능을 입증해야하는 장애인 성폭력 △성폭행 범주에 들지 않는 아내강간 △진술 일관성을 이유로 인정받지 못하는 아동성폭력 등이다.

이 가운데 성폭력상담소가 최우선으로 비판하는 부분이 바로 ‘최협의설’이다. 운동을 시작하는 기자회견에서 조인섭(법률사무소 LawC&C)변호사는 “현재까지 판례들은 여성이 죽기 살기로 저항하면 성폭력이나 강간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며 “성적자기결정권에 따른 여성 보호 차원이 아니라 순결이데올로기적 판결”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4호까지 발간한 자료집은 ‘최협의설’에 대한 비판과 대안을 담고 있다. 자주 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성폭력과 관련한 법 개정작업을 계속하고 있지만 법을 개정해도 사법체계에서 가해자에 대한 온정적 시선을 어떻게 멈출 것인가라는 고민은 계속될 것”이라며 “결국 판례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운동배경을 설명했다.

자료집은 자주색 봉투에 담아 대법원을 비롯한 전국 법원과 검찰청에 배달한다. 자주는 “법조인들 책상에 쌓여있는 서류더미에서 이 자료집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고민하다 눈에 띄는 색깔을 표지로 정했다”고 말한다. 자주색은 존엄과 정의를 상징하기도 한다. /강국진 기자

2006년 11월 21일 오후 15시 47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시민의신문 제 677호 10면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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