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권을 생각한다/판결을 비평한다

“명의신탁, 법원이 부추겨서야”

by betulo 2007. 4. 3.
728x90
“명의신탁, 법원이 부추겨서야”
참여연대,시민의신문 공동기획-법정 밖에서 본 판결
명의신탁과 부동산실명제에 관한 획기적인 판결
2006/8/2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지난 6월 9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는 하급심이 대법원 판례를 뒤집는 작은 반란이 일어났다. 2005가단2182소유권이전등기 판결(판사 이종광)에서 부동산실명제법을 위반해 채권변재 회피, 납세 회피 등을 목적으로 자산을 명의신탁해 두었던 원고가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패소판결을 내린 것. 원고는 ‘명의신탁은 법위반이므로 무효’라고 주장하면서 명의 환원을 주장했지만 판결결과는 ‘뜻밖에도’ 원고의 청구를 불법원인급여로 판단했다. 결과적으로 이 판결은 기존 대법원 판례를 따르지 않았고 부동산실명제 시행 이후에도 끊이지 않던 불법적인 명의신탁에 쐐기를 박았다.

이번 판결을 높이 사는 법조인들조차 항소심에서 이번 판결이 뒤집힐 것으로 예상한다. 대법원 판결을 신성불가침인가. 명의신탁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결과적으로 소유권을 부당하게 침해한 피고를 옹호하는 부작용을 낳지는 않을까.

<시민의신문>과 참여연대는 ‘시민포럼-법정 밖에서 본 판결’ 여덟 번째 주제로 명의신탁을 불법원인급여로 인정한 하급심 판결을 정했다. /편집자주
○ 일시 : 2006년 7월 21일(금) 오후3시
○ 장소 : 참여연대 2층 강당
○ 사회자 : 한상희(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
○ 참석자 :
    최영태(회계사, 참여연대 조세개혁센터 소장)
    최영승(법학박사, 경원대 법대 겸임교수)
    이인철(변호사, 좋은나라합동법률사무소)

한상희
양계탁기자 
한상희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

△한상희: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사회에서 재산을 누구에게 어떻게 귀속시키는가는 사회의 근간이 되는 문제다. 어떤 이유인지 우리 사회에선 소유자와 명의자가 다른 경우가 많이 있었다. 이를 막기 위한 노력도 있다. 금융실명제도 그렇고 오늘 우리가 다루려고 하는 부동산실명제법도 그런 노력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데도 여전히 자신의 재산을 다른 이의 명의로 포장하는 명의신탁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가 다루려고 하는 판결은 아주 특이하다. 판결비평에서 보기 드물게 판결 내용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 하다. 먼저 이번 판결의 배경을 알아보자. 명의신탁이란 무엇이고 무엇이 문제일까.

△이인철: 한마디로 소유자와 명의자가 다른 것이다. 부동산에는 등기제도가 있는데 등기 명의와 소유자가 다른 것을 명의신탁이라 한다.

최영승
양계탁기자 
최영승 법학박사 · 경원대 법대 겸임교수

△최영승: 신탁과 명의신탁을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명의신탁은 일본이 1912년 조선부동산등기령으로 조선에 등기제도를 도입하면서 생겼다. 당시 문중은 등기능력이 없었다. 문중 구성원을 내세워 등기하는 편법을 썼다. 나중에 문중도 등기할 수 있는 길이 생겼음에도 과거 관행이 계속 이어져 온 것이다.

△한상희: 명의대여로 표현하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왜 굳이 그런 방식을 쓰는 것일까.

△최영승: 시작은 미비한 법규정 때문이었다. 그런데 1960년대 경제개발을 계기로 부동산 투기가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명의대여는 법을 피해 탈세하는 수단으로 변질됐다. 부동산투기를 위해 자기 재산을 남의 재산 속에 숨겨 놓기 시작한 것이다.

△이: 대체로 세금, 강제집행, 채권변제를 피하려는 게 명의신탁을 하는 이유라고 볼 수 있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다들 친구나 부인 명의로 재산을 옮겨 놓더라.

△최영태: 회사를 만들 때 얼굴마담으로 삼을 ‘바지사장’을 내세우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사업을 하다 보면 제일 중요한 게 자금회전이다. 대표이사나 최대주주가 연대보증을 선다. 명의신탁이 예금에서는 차명계좌로 이어진다. 내 친구 중에는 이사로 취임하면서 자기 재산을 주위에 다 돌려놓은 경우도 있었다. 자기 책임 면하기 위해서다. 사회 각 부분에 그런 관행이 퍼져 있다.

<시민의신문>과 참여연대는 지난 7월 21일 참여연대 2층 강당에서 '시민포럼-법정 밖에서 본 판결' 여덟번째 주제인 '상지대 정이사 선임 무효 확인 사건'으로 좌담회를 가졌다.
양계탁기자 
<시민의신문>과 참여연대는 지난 7월 21일 참여연대 2층 강당에서 '시민포럼-법정 밖에서 본 판결' 여덟번째 주제인 '명의신탁을 불법원인급여로 인정한 하급심 판결'으로 좌담회를 가졌다.

판결문 눈에 띄네
한편 법학 논문 보는 듯

판결비평이 이번에 선정한 판결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 가운데 하나는 다름아닌 판결문 그 자체다.

A4용지 50장 분량이나 되는 방대한 판결문은 내용 대부분을 법리에 대한 논증에 할애하고 있다. 10개 항목으로 목차를 붙이고 작은 목차를 달아 논리를 전개하고 법학교수들과 실무가들의 논문과 평석을 인용하고 있다. 판결비평문을 쓴 김제완 고려대 법대 교수는 “한국의 기존 판결 형식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매우 특별한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지난 2004년 3월 30일 송두율교수 사건 1심 판결문과 비교해보면 얼마나 특별한가가 눈에 금방 들어온다. 당시 판결문은 시작부터 무려 20쪽을 한 문장으로 표현했다. 일반인들은 읽다가 숨이 막힐 지경이다. 반면 이번 판결문은 비교적 단문으로 구성했다. 판결문 마지막에 덧붙인 맺음말도 법관의 고민을 잘 드러냈다.

“수천억원의 형사상 추징금을 받았던 전직 대통령이 자신은 29만원 밖에 없어 추징금을 국가에 납부할 수 없지만 자식들은 수백억원의 부동산을 가지고 기업을 경영할 수 있는 것이 우리 사법 현실이다. 타인의 이름을 빌려 투기를 통해 부를 축적하고 다시 자신이 얻은 부에 대한 정당한 세금을 타인의 명의를 빌림으로써 포탈하고, 그렇게 얻은 돈으로 다시 투기를 하다가 자신이 타인에게 빚을 지게 되는 경우 자신의 재산을 타인 명의로 신탁함으로써 정당한 채권자가 아무런 권리도 행사하지 못하게 하는 이런 상황은 이제 끝내야 한다.”

한상희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은 “하급심 판결은 판결이유가 제대로 나오지 않은 경우 많았는데 이번 판결은 인용도 많이 하고 법관이 스스로 판단을 하면서 느낀 점을 제대로 밝혔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국민들에게 판단의 근거를 밝히는 게 판결문이기 때문에 판결문은 아무리 구체적이고 자세하더라도 모자라지 않다”며 “이 판결처럼 모든 판결이 국민을 상대로 판결근거와 이유를 밝히고 이해를 구하고 배경을 설명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최영승: 명의신탁은 어떤 경우든 악용될 소지가 있다. 국회는 실체적권리관계를 분명하기 하기 위해 부동산등기특별조치법을 1990년 제정했다. 하지만 이 법은 제 구실을 못했다. 대법원이 명의신탁 자체는 민사 차원에서 유효하다고 판단해 재산을 명의신탁한 사람이 그 재산을 환원하는 일이 가능하다고 판결했기 때문이다. 명의신탁 금지는 사실상 사문화됐다. 정부는 형사처벌 뿐 아니라 민사상 무효임을 명시한 부동산실명제법을 1995년 제안했고 국회를 통과했다. 그런데 명의신탁이 무효라는 점에서 ‘명의신탁이 무효이므로 돌려달라’고 청구할 경우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지금까지 대법원은 이런 청구를 인정해줬다. 결국 명의신탁을 근절하기 위해 만든 부동산실명제법도 유명무실해져 버린 것이다.

이인철
양계탁기자 
이인철 변호사 · 좋은나라합동법률사무소

△이인철: 이번 사건 피고가 원고의 삼촌인 것으로 알고 있다. 원고와 그의 변호인은 자신이 패소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법원 판례가 확고하기 때문이다. 내 경험으로 보더라도 그렇다. 한국은 성문법주의를 채택한 나라다. 그런데도 희한하게도 마치 판례법주의를 택한 미국처럼 판례가 법 구실을 한다.(웃음)

△한: 이 사건은 조카가 삼촌을 믿고 재산을 맡겼다가 자기 재산을 빼앗기면서 벌어졌다. 피고인 삼촌의 손을 들어준 이번 판결이 사회정의 원칙에 반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최영승: 사유재산권은 물론 헌법상 권리다. 하지만 부동산실명제법의 입법취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법적으로 도박장에서 빌려준 돈은 돌려받을 수 없다. 불법원인에 기인한 거래이기 때문이다. 모든 명의신탁을 금지한 것은 부동산투기를 막기 위한 목적도 크다. 명의신탁은 분명 불법이다. 이 사건에서도 원고는 강제집행을 면하기 위해서 명의신탁을 한거다. 판사도 밝혔듯이 빚을 안 갚으려고 불법을 저질렀다 이런 결과가 나왔으니 자업자득이다.

△한: 1심 판결의 취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판결이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명의신탁과 관련한 사회적인 부조리를 극복하는 방안을 생각해보자.

명의신탁이 사회 부조리 부른다

△이: 부동산실명제법이 잇는 걸 국민들에게 홍보를 해야 한다. 법규정이 대단히 엄격하다. 실소유자로 명의변경하지 않으면 과징금이 엄청나다. 형사처벌도 받아야한다. 일단 있는 법부터 활용해야 한다.

△최영승: 대법원이 법에 따라 판결만 똑바로 하면 옥상옥 법을 또 안 만들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한: 대법원을 생각하니 좀 답답하다. 대법원은 왜 명의신탁을 털어버리는 판결을 내리지 못하는 걸까. 법리상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최영태
양계탁기자 
최영태 회계사 · 참여연대 조세개혁센터 소장

△이: 대법원은 명의신탁의 불법요인을 상당히 좁게 해석한다. 너무 넓게 해석하면 신탁자와 수탁자 가운데 수탁자만 너무 배려하는 게 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최영태: 대법원은 명백히 불법적인 목적으로 이뤄진 명의신탁에 대해 대단히 관대하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는 자산가들이 저지르는 불법성에 대해 상대적으로 관대하다는 것을 뜻한다. 명의신탁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한국 대법원이 얼마나 보수적인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최영승: 통계를 보니 2004년 강제집행 면탈이 5036명이었는데 296명만 기소당하고 나머지는 전부 불기소였다. 대법원은 이런 문제에 대해 더 엄격하게 판결해야 한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용어설명>

명의신탁: 부동산에서 명의신탁은 부동산의 소유권 등기를 다른 사람 이름으로 해놓고 신탁자와 수탁자 사이에서 공증을 거친 소유권 확인증서를 따로 만들어 놓음으로써 이루어진다. 실제 소유자를 신탁자, 명의상 소유자로 된 사람을 수탁자라고 한다. 신탁자와 수탁자 사이에서 실제 소유권은 신탁자에게 있지만, 대외적으로는 수탁자에게 이전·귀속된다. 일제시대에 주로 종중(宗中) 토지의 소유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도로 나왔지만 법적 근거가 있는 건 아니다. 대법원 판례로 확립된 것이기 때문에 법적 구속력을 갖지도 않는다.

불법원인급여: 불법행위를 조건으로 돈이나 노동력을 제공했더라도 나중에 그 반환청구를 하지 못하게 하는 민법 규정을 말한다. 대표적인 예로 도박빚을 들 수 있다. 민법 제746조는 “불법의 원인으로 인하여 재산을 급여하거나 노무를 제공한 때에는 그 이익의 반환을 청구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불법원인이 수익자에게만 있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2006년 8월 1일 오후 16시 47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시민의신문 제 661호 8면에 게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