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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뒷얘기/시민의신문 기사

갈등관리 없이 사회진보 없다 (2005.5.13)

by betulo 2007.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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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관리 없이 사회진보 없다
부처별 공공영역 갈등 평균 3백개 이상 추정
법적ㆍ체계적 시스템 필요
2005/5/16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지난해 1월 부안 주민들이 핵폐기장 찬반 주민투표를 한다고 감시를 해달라고 해 현지에 내려갔을 때 깜짝 놀란 게 하나 있습니다. 법적 토지수용이나 어업권 보상이 아니고서는 개별보상이 안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주소만 현지에 두고 있으면 몇 억원을 준다는 소문이 퍼져 있었어요. 지역 언론에는 꼭 가결시켜야 한다는 광고가 넘쳐났고 핵폐기장을 유치하려는 유령단체들은 어디서 났는지 물 쓰듯이 돈을 쓰고 있었습니다.”

민간단체의 한 갈등 전문가의 말이다. 당국이 민관 갈등을 매수로 미봉하려했던 사례를 언급한 것이다. 어디 그 뿐인가. 핵폐기장 건설, 새만금, 천성산, 서울시 공원묘지, 평택 미군기지 이전 등 한국 사회는 온갖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반목이 없는 지역이 없고 시끄럽지 않은 정부부처가 없을 정도이다. 부처별로 갈등 사안이 3백개 이상씩 된다는 한 정부 관계자의 고백은 공공영역에서 갈등이 우리사회의 발전과 진보를 가로막는 심각한 장애물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천성산 개발논란은 지율 스님의 1백일 단식을 벌이고서야 겨우 해법이 뭔지를 가르쳐줬다.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까지는 아직 멀었고 불씨는 여전히 사그라들지 않았다. 20년 가까이 말썽을 빚고 있는 핵폐기장 건설 문제는 ‘부안민란’까지 겪었지만 아직도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으로 남아있다. 그러니 누구 말마따나 정부는 시민사회가 부담스럽고 시민사회는 정부를 불신한다.

지난 2003년 11월 핵폐기장 반대 깃발이 내걸린 부안성당 앞마당에서 한 아이가 장난을 치고 있다.
이정민기자 
지난 2003년 11월 핵폐기장 반대 깃발이 내걸린 부안성당 앞마당에서 한 아이가 장난을 치고 있다.

방폐장 아직도 시한폭탄

‘민란’까지는 아니었어도 울산광역시 북구청 음식물자원화시설 논란 또한 지역사회를 시끄럽게 한 것이었다. 북구청은 지난 2002년부터 음식물쓰레기 자원화시설을 건설하려 했다.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히자 관행대로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처리하려 했다. 하지만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한 주민들은 공사현장을 점거하고 촛불집회, 구청 항의, 초등학생 등교거부 등을 거행했다. 공사는 차질을 빚었고 민관이 서로를 고소고발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북구청이 내놓은 해법은 ‘시민배심원제’였다. 지난해 12월 13일 첫 회의를 열고 활동에 들어간 배심원단은 결국 12월 28일 최종회의에서 총투표수 41명 가운데 찬성 31, 반대 9, 기권 1로 음식물자원화시설 건립을 결정했다. 음식물자원화시설은 다음달 7일 완공될 예정이다.

울산 북구청의 사례는 행정기관의 정책 추진 과정에서 주민이 직접 참여한 합의과정을 거쳐 시민사회단체가 최종 평결하게 함으로써 행정편의주의 관행을 깼다. 그러다보니 지방자치 행정사에 빛나는 개혁자치의 새 지평을 열 수 있었다. 그러나 시민배심원제는 법적 효력이 없는 상태여서 그 문제는 지자체가 이를 받아들여 행정을 수행하는 식으로 문제를 풀었다. 시민배심원제 같은 ‘참여적 의사결정’을 제도화할 필요성이 요구된다.

“정부도 이해당사자 가운데 하나 아닙니까? 그러니 이해당사자들이 논의를 통해 결정을 하자는 것이지요. 공공성격의 갈등일 경우 시민사회와 합의하지 않으면 관련 정책을 집행하지 못하도록 하자는 게 바로 갈등관리기본법(안)의 취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천성산이나 부안 핵폐기장 갈등 같은 경우도 이런 법안이 있었더라면 미리 막을 수 있었을 겁니다.”

박태순 박사(지속가능발전위 갈등관리정책팀)는 시민사회가 갈등관리에 관한 기본법률(안)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시민사회의 운동방식에 중대한 변화를 몰고 올 수 있는 사안임에도 시민사회에서 갈등관리법에 관한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현실을 우려한다.

“관료주의부터 깨야”

6월 국회상정을 앞두고 있는 갈등관리기본법의 핵심은 ‘참여적 의사결정 방법’에 있다. 갈등관리기본법이 시행될 경우 국가행정기관, 지방자치단체, 기타 공공단체 등은 갈등관리위원회를 두어야 한다. 국민생활에 중대하고 광범위한 갈등이 유발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는 갈등영향분석을 해야 한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평택 미군기지 이전, 핵폐기장 건설 등이 모두 갈등관리기본법 적용대상”이라며 “시민사회가 이 법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다른 한 정부 관계자는 “갈등관리기본법이 국회에 상정되면 정부부처에서 반발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며 “벌써부터 건설교통부와 문화재청에서는 갈등관리기본법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있다”고 말했다.

갈등관리법에는 맹점도 존재한다. 무엇보다도 갈등영향평가 여부를 공공기관의 장이 결정하도록 한 점과 합의를 깰 경우 제재수단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는 점이 꼽힌다. 하승수 변호사는 “사회적 갈등의 근본원인인 관료주의를 개혁하지 않고 갈등을 관리하겠다는 것은 갈등을 덮거나 억압하겠다는 것일 뿐”이라며 정부를 비판한다.

그래서 하승수 변호사는 갈등관리법안보다 정부 관료주의가 더 큰 문제라는 입장이다. 지난 6일 지속가능발전위원회가 개최한 포럼에 토론자로 참여한 그는 “중요한 것은 정책결정과정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는 것”이라며 “그것은 결국 관료주의 병폐를 극복하는 과정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대통령부터 반성을”

그는 “관료주의 정책추진으로 갈등이 표출되었다면 앞으로는 해당 관료에게 엄정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그렇지 않을 경우 편의적이고 관료주의적인 정책추진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하 변호사는 특히 “부안사태에 대해 대통령부터 반성해야 한다”며 “대통령이 반성하지 않는데 어느 실무관료가 성찰하고 반성을 하겠느냐”고 꼬집었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2005년 5월 13일 오후 19시 6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시민의신문 제 597호 1면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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