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사라지는 검찰을 위한… 축가

종횡사해/공무원들 이야기

by betulo 2025. 11. 12. 18:58

본문

728x90

  생로병사라는 게 사람한테만 있는 건 아니다. 국가 역시 태어나고 낡아서 병들고 없어지는 운명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많은 이들이 철밥통으로 생각하는 정부조직 역시 예외는 아니다. 기획재정부에는 물가정책과라는 부서가 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물가 관리는 재무부(현 기획재정부)에서 국장급 부서였고 엄청나게 큰 영향력을 가진 실세 부서였다. 그러던 것이 경제규모가 커지고 물가관리에서 정부 역할이 축소되면서 지금은 과장급 부서로 줄어들었다. 경제개발을 주도하며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던 경제기획원은 아예 간판을 내린 뒤 재무부에 흡수통합됐다.

  애초에 태어나지 말아야 할 정부조직도 있겠고 축복 속에 태어나 기대를 모았지만, 속만 썩이는 조직도 없지 않다. 행정안전부 소속기관인 이북5도위원회를 보자. 이런 곳이 있는지도 모르는 분들이 많지만, 사실 이 조직은 차관급을 5명이나 보유하고 있다. 홈페이지에는 주요 업무로 남북평화시대 이북도민 역할 강화, 북한이탈주민 포용 확대, 향토문화 계승 발전이라고 적혀 있는데 실제 이런 일을 하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무엇보다도 대한민국 대통령이 왜 평안남도 도지사나 함경북도 도지사를 임명해야 하는지 아무도 이해할 만한 설명을 하질 못한다. 만약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조직에 이남5도위원회가 있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아무개에게 서울시장 임명장을 수여했다’는 노동신문 기사라도 실렸다면 알뜰폰사업자 전광훈이 일요일마다 어떤 일로 하나님의 안식을 방해할까 생각만 해도… 광화문 근처에 가기 싫어진다.

  ‘왜 태어났니’ 소리를 듣는 조직으로는 역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국가인권위원회를 빼놓을 수 없겠다. 공수처는 그 난리를 벌인 끝에 호기롭게 출발했지만, 서울교육감 조희연을 1번 타자로 기소하며 생뚱맞게 첫 단추를 끼우더니 그 뒤로는 출근은 제대로 하는지조차 궁금해지다가 지금은 퇴근하거나 말거나 아무도 관심 두지 않는 조직이 돼 버렸다. 급기야 공수처장이 피의자가 되어 특검 수사를 받고 있다. 공수처장이라면 고위공직자 중에서도 꽤 중요한 자리인데 공수처는 그것마저 수사를 못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김대중 정부가 인권 증진과 민주시민교육, 더 나아가 정부의 인권정책을 감시하고 정책을 권고하라고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뭐 위원장 안창호의 존재감만 홀로 드높다. “동성애는 자유지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줘선 안 된다”거나 “차별금지법이 도입되면 에이즈가 확산된다”고 말했고, “진화론은 하나님의 창조를 믿기 싫어 만들어낸 가설에 불과하니 배울 필요가 없다”는 말도 남겼는데 하나같이 주옥같은 개소리라 옮기기도 민망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창호 같은 사람을 위원장으로 앉힌 윤석열에게 모든 책임을 돌릴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인권위는 출범 직후만 해도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는 공식논평을 내던 시절도 있었으나 더 오랜 세월 동안 그냥 관료조직이었다. 그나마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검찰청이 사라질 날을 받아놨다. 명색이 법무부 외청 공무원 주제에 자기가 정치인인 줄 아는 무척이나 특이한 정신세계를 가진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특권으로 무장한 조직이 세상에서 사라진다. 사실 검찰청 탄생 당시만 해도 기소독점주의를 갖는 게 나름의 합리성을 갖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경찰은 친일파 떨거지들 집합소 취급을 받았고 국민 대다수가 혐오하는 조직이었다. 무엇보다 법률 지식도 얕아서 검찰의 통제가 불가피했다. 최소한 그렇게 이해할 구석이 없는 게 아니다. 게다가 아주 오랫동안 검찰은 중앙정보부, 기무사령부 같은 여타 정보-수사 기관보다 힘이 약한 조직이었기 때문에 지금처럼 검찰독주란 상상하기 힘들었다.

  세월은 흘러 중앙정보부가 국가안전기획부가 되고 국가정보원이 되면서 더는 국내수사에 관여하지 않게 됐다. 기무사령부 역시 수사와 관련해선 손을 뗀 지가 벌써 수십 년이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검찰이 차지했다. 검찰이 독주하기 시작하자 자연스럽게 검찰개혁 논의가 커졌다. 노무현 정부는 수사권조정을 논의했으나 어찌 된 일인지 검사들 직급만 왕창 올려줬고 ‘사법리스크’의 원조이자 DAS 주인님 이명박은 구린 게 많았는지 검찰을 오구오구했다. 그러면서 검찰은 무소불위한 권력을 갖게 됐다. 검찰의 전성기는 역시 윤석열을 파격적으로 승진시켜 검찰총장까지 앉혀주고, 결국 윤석열이 대통령까지 당선된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윤석열 본인이야 자신이 부정선거로 당선됐다고 믿는 것 같긴 하다.)

  대통령에 법무부 장관, 금융감독원장, 인권위원장을 비롯해서 온갖 곳에 검사 출신이 포진했다. 그리고 그 오만함이 검찰 조직 자체의 몰락을 불렀다. 그렇다고 능력이 뛰어나냐 하면, 이재명을 3년 넘게 탈탈 털어가며 수사했는데 제대로 된 결과를 내놓은 게 없다. 이재명 단골 세탁소까지 압수수색 하며 이재명 못 잡아넣으면 나라 망할 것처럼 법석을 떤 것 치곤 너무 허전한데, 이 정도로 무능력하면 그냥 문 닫아도 할 말 없을 것 같긴 하다.

  이미 변화는 시작됐다. 서슬 퍼렇던 검사들의 목소리는 시들해졌고 저마다 살길 찾아서 떠나거나 입을 닫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미 대형 로펌에서 검사 출신들 인기가 예전 같지 않다는 얘기가 들린다. 사실 이것보다 더 강력한 신호가 또 있을까 싶다. 그러므로, 이제는 기쁜 마음으로 영감님들을 보내줄 수 있을 것 같다. 생로병사에서 예외는 없다. 시작은 찌질하였으나 어느덧 덩치가 산처럼 커진 경찰은 검찰의 몰락을 반면교사로 삼기 바란다.

인권연대에 기고한 글입니다. 

 

728x90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