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교체를 통한 효능감으로 꼽을 수 있는 건 차고도 넘치겠지만, 빼놓지 않고 말하고 싶은 건 역시 조용해진 주말 광화문이 아닐까 싶다. 광화문 주변에선 몇 년 동안 주말마다 사랑제일교회 목사 겸 알뜰폰 사업자가 주최하는 예배 겸 기부금품 모집 행사가 열리곤 했다. 직업 특성상 일요일 광화문 주변으로 출근해야 하는 처지에서 보자면 머리가 빠개지고 귀가 지끈지끈 아프니 고문이 따로 없다. 나도 모르게 오만상을 찌푸리게 되는데 영화 ‘28일후’에 등장하는 분노 바이러스가 공상이라는 생각이 안 든다. 그런데 최근 일요일 광화문역에 내리니 예배 겸 기부금품 모집 행사가 또 열리고 있었다. 정권교체 이후에도 갈 길이 멀구나 싶다.
최선을 다해 빨리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것만이 하늘엔 평화 땅엔 축복일 뿐이다. 그렇게 종종걸음으로 청계광장을 지나치는데, 듣고야 말았다. 하긴 워낙 큰소리로 떠드는 데다 한영동시통역까지 하고 있으니 듣기 싫어도 듣지 않을 도리가 없다. 전광훈이 했던 말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내가 목사를 수백 명을 키웠어. 그런데 그 새끼들이 여기에 한 놈도 오질 않아(그 새끼라고 말했는지, 개새끼라고 말했는지는 불분명하다). 그래도 여기 모인 수백 명은 하나님이 축복을 해주실 거야. 여기 온 사람들은 죽어서 아무도 지옥에 안 가. 내가 하나님한테 그렇게 얘길 했어(기도했다고 했는지 시켰다고 했는지 기억이 확실하지 않다). 믿습니까?’
확신에 찬 말씀을 듣고 보니 느끼는 게 적지 않다. ‘하나님의 뜻’이란 게 참 편리하다. 누군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얘기하면 그걸 검증할 방법이 없다. 창조주 체면에 하늘나라 직인을 찍은 각서를 줄 것도 아니다. 자기가 그렇게 들었다는데 따로 증인이 있는 것도 아니다. 독대했다는 사람이 난청이 있다거나 문해력이 떨어져서 하나님 말씀을 오해하거나 왜곡해도 바로잡을 방법도 없다. 예전에 행정안전부에는 경북 사투리를 너무 심하게 쓰는 데다 목소리도 약간 웅얼웅얼하는 국장이 한 분 있었는데 회의만 끝나면 참석자들이 모두 모여서 그분이 무슨 말을 했는지 서로서로 해독하고 해석하느라 난리법석이 벌어지곤 했다. 전광훈 집회는 그나마 그냥 “아멘”이라고 하거나 귀를 물로 씻으면 되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성경에 다 나온다고 할 수도 있겠는데, 나처럼 세상을 주재하시는 존귀하신 분에게 아무 관심이 없는(그러면서도 누가 사주관상 봐준다고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귀를 쫑긋 세우는) 평범한 무신론자로선 성경 아무리 읽어봐야 하나님의 뜻이 더 혼란스러울 뿐이다. 열왕기에서 임금이 필요하다고 하는 백성들에게 경고하는 얘기만 보면 아나키스트가 따로 없고, 지상에 재물을 쌓지 말라는 마태복음을 읽어보면 사회주의자들 보기에 좋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가 하면 창세기에선 믿음을 시험한답시고 늦둥이 외아들을 죽여보라며 가스라이팅과 살인교사를 하질 않나, 말 안 듣는다고 출애굽 동지들을 수천 명씩 대량학살하는 게 전범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무엇보다도, 삼손이 찰랑거리는 머릿결에서 힘이 솟고, 선지자 엘리사를 대머리라고 놀리는 동네 꼬마 42명을 곰 두 마리로 남김없이 찢어죽인 걸 보면 역시 하나님은 탈모 스트레스에 마음 깊이 공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이 틀림없다(하긴 ‘어머니 하나님’이있으면 외아들이 죽어가는데 손 놓고 구경만 하고 있었을 리가 없다).
신이라는 존재가 세상만물을 창조하시고 전지전능하다면, 그러니까 세상 모든 것을 아시고 세상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는 존귀한 분이고 그분의 존재를 의식하고 명상한다면 오히려 동네방네 ‘하나님의 뜻’을 떠들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오히려 천문학이나 식물학, 동물학 같은 책을 더 열심히 읽으며 그분께서 창조한 이 세상의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을 탐구하는 것에서 기쁨과 보람을 느끼지 않을까. 또한 이해도 되지 않고 썩 마음에 들지도 않는 동성애자들을 보더라도, 그 또한 존귀하신 그분께서 만드신 아들딸이라는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민간인 학살한다는 뉴스를 보며 은근히 흐뭇해하는 대신 하나님의 아들딸이자 같은 신을 모시는 이들을 인종청소하는 것에 분노해야 하지 않을까. 일제강점기가 하나님의 뜻이라느니, 식민지가 된 게 다 하나님이 우릴 시험한 거라느니 하는 외람된 흰소리를 지껄이는 대신 100년도 채 살지 못하는 인간이 어찌 그분의 깊은 뜻을 알 수 있겠느냐 하는 마음으로 섣부른 판단을 유보하며 겸손해져야 하지 않을까. 무엇보다도, 경건한 안식일에 고성방가로 하나님의 쉴 권리를 침해하면 안 된다는 두려운 마음을 갖게 되지 않을까.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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