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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說/자작나무책꽂이

그 시절 '남산'으로 불리던 사냥개 이야기

by 자작나무숲 2022. 7. 11.

<책 읽기 정책 읽기>(1) 김충식, 2022, '5공 남산의 부장들', 블루엘리펀트

 

“앞으로 중앙정보부는 ‘사바크’가 되지 말고 , 모사드가 되어야 한다.”


1980년 4월 15일 보안사령관으로서 중앙정보부장을 겸직하게 된 전두환이 취임식에서 했다는 말이다(1권 137쪽). 사바크는 이란 팔레비 왕정 당시 비밀경찰이었다. 모사드는 이스라엘 해외첩보기관이다. 이제부턴 정권을 지키는 앞잡이가 아니라 국익을 수호하는 첨병이 되어야 한다는 선언이었다. 곧바로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과장급 이상 간부 대다수는 사표를 쓰게 하고, 국내정보인원을 대폭 줄이도록 했다. 


그리하여 중앙정보부는 모사드 같은 조직이 되었을까. 이종찬 등이 주도했던 구조조정 작업은 5월 중순 전두환 지시로 중단됐다고 한다. 책에는 당시 학생시윅 갈수록 격화되자 당시 중앙정보부 차장 서정화가 회의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고 돼 있다. “지금은 중앙정보부 개편 시기가 아니고, 전 부원이 나서서 사회를 혼란하게 하는 시위대, 정치 세력과 맞서서 싸워야 할 때입니다(1권 161쪽).” 


꼭 서정화가 한 말이 아니더라도 권력장악에 혈안이 돼 있던 신군부로선 남산의 고문 기술자들이 절실히 필요했을 듯 하다. “죽을 뻔했던 요원들이 인사 중단으로 살아났다. 중앙정보부가 지하실 고문으로 실력을 발휘할 기회가 온 것이다. 5.17 싹쓸이, 계엄령 전국 확대와 함께, 그동안 텅 비어 있던 지하실에, 무더기로 ‘정치 고객’들이 들이닥쳤다(1권 161~162쪽).” 

5공화국이 들어선 뒤에는 아예 정보부장 유학성이 앞장서서 민주정의당 창당에 앞장섰다(1권 197쪽). 정보부 개혁은 완전히 뒷전이었다. 그렇게, ‘사크비’로 태어났던 중앙정보부는 국가안전기획부로 이름을 바뀐 뒤에도 줄곧 ‘사바크’였다. 그런 안기부였기에 1987년 대선 당시 부장이었던 안무혁은 국가기관인 안기부를 선거운동에 총동원할 수 있었다(2권 275쪽).


동아일보 기자로서 도쿄특파원 등을 역임하고 지금은 가천대 교수로 일하는 김충식이 쓴 <5공 남산의 부장들>은 1992년 출간 당시 베스트셀러가 됐던 <남산의 부장들>의 후속작이다. 1960~70년대 중앙정보부의 영욕을 다룬 전작에 이어 1979년 12.12 쿠데타 즈음해서 시작해 1988년 4월 여소야대로 이어진 국회의원 선거까지를 해부한다.


이 기간 ‘남산’ 수장은 신군부 우두머리이자 쿠데타를 통해 대통령이 됐던 전두환, 신군부 일원인 유학성, 외무부 장관 출신 노신영, 전두환의 오른팔 장세동, 그리고 전두환에서 노태우로 대통령이 바뀌는 전환기를 맡았던 안무혁 등 5명이었다. 전두환이나 장세동 같은 이들이 이끌었던 이 조직은 당시 신군부를 비롯한 권력층의 내밀한 움직임과 속내, 거디다 헛발질까지 조망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프리즘이 아닐까 싶다. 오랜 취재와 인터뷰 등을 통해, 그리고 오랜 취재 경험담을 듣는 듯한 속도감있는 문체는 1권과 2권 합쳐 700쪽이 넘는 책을 단숨에 넘기게 만드는 강력한 힘이 있다. 


책에는 당시 중정-안기부의 비열한 공작 활동이 가감없이 기록돼 있다. 가령, 유학성은 미국과 협상 끝에 김대중을 풀어주기로 하자 김대중에게 찾아가 구명서를 쓰면 풀어주겠다고 요구했다. 김대중이 탄원서 쓰기를 거부하자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하다고 거듭 설득했다. “유학성 안기부장이 나서서, 스스로 가톨릭 신자라면서 외부에 공개하지 않을 것을 하느님 앞에 맹세한다고도 했다(1권 230쪽).” 

결국 김대중은 탄원서를 썼다. 그 뒤가 가관이다. “생각해보니 신군부의 올가미에 걸려들어, 목숨을 구걸하는 것 같았다. 탄원서를 되돌려달라고 했다. 그러자 유학성 부장은 ‘그렇게 잘 처리하겠다’라고 하더니, 며칠 뒤 약속을 깨고 언론에 공개했다. 당했다고 생각했지만, 어디 호소할 데도 없었다(1권 230쪽).” 안기부는 김대중이 미국으로 망명할 당시 안기부가 그에게 여행경비를 주었다는 거짓정보를 재야인사들에게 흘리는 이간질도 했다(1권 321쪽).


안기부는 1982년에는 유행가를 노동요로 바꾸어 부리는 것까지 통제하려고 했다. 결국 소설 ‘꼬방동네 사람들’의 실제 주인공인자 노동운동을 하던 목사 허병섭을 연행했다고 한다. 그런데 마땅히 처벌할 법규가 없었다. “그러자 서울지검 공안부는 궁여지책으로 ‘저작권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결국 2심에서 무죄가 났지만 안기부는 대법원을 움직인 끝에 파기환송을 거쳐 유죄를 이끌어내고야 말았다. 


당시 안기부, 검찰, 경찰이 모조리 한통속이었다는 걸 확인하는 건 여러모로 씁쓸하다. 책에선 이를 “안기부 지하실이나 치안본부 대공분설의 고문 수법에 검찰도 진배없다(2권 35쪽)”고 표현했다. 이는 1986년 부천서 성고문 사건 당시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했다는 말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네가 당한 일은 검사 앞에 나가서 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어. 검사나 우리는 다 한통속이야(2권 182쪽).”


<5공 남산의 부장들>을 읽다보면 당시 ‘남산’의 폭력이 얼마나 무지막지했는지 가감없이 드러난다. 심지어 당시 정치부 기자였던 저자조차 남산에 끌려가 3박4일 동안 고문을 당한 적이 있었다. 고문의 빌미라는게 1985년 8월 중국 폭격기 조종사가 대만으로 망명하기 위해 전북 이리(현 익산)에 불시착했을 당시 대만 송환한다는 기사였다. 거짓도 아닌 대만 송환 기사를 썼다는 이유로 3박4일 동안 편집국장과 정치부장까지 가둬놓고 매타작을 했다는 게 지금 기준으론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지만 당시로선 그게 남산의 상식이었다. 저자는 본인의 고문 피해 경험을 최대한 제3자 시각에서 담담하고 건조하게 이야기하지만 오히려 독자들은 분노와 참담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김충식은 그 때 남산 지하실에서 두부모보다 큰 대용량의 안티프라민이 존재하는 것을 알게 됐다. (동아일보 편집국장) 이채주의 하반신에는 안티프라민을 바른 쇠고기가 감겼다. 피멍이 든 데는 쇠고기가 응급약이다. 얼마 되지 않아 퍼런 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2권 176쪽).”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권력기관의 민주적 통제' 

이 책은 끊임없이 고삐풀린 권력기관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이들은 처음엔 권력을 등에 업은 개였다. 주인이 시키는대로 무고한 시민들을 사냥하고 물어뜯었다. 나중엔 주인의 뜻을 알아서 해석해 움직였다. 중앙정보부-국가안전기획부는 검찰과 법원, 경찰을 거느리는 우두머리 사냥개였다. 고문은 예사였고 협박과 이간질, 정치공작, 심지어 불법 선거운동도 예외가 아니었다. '남산의 부장들'을 통해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남산'의 역사를 알게 되면 2012년 국정원 댓글공작 사건이 이미 예고돼 있었다는 걸 느끼게 된다. 

민주화가 되었다. 안기부는 예전처럼 드러내놓고 사냥을 할 수 없게 됐다. 그렇다고 권력기관 문제가 해결됐을까. 1980년대만 해도 안기부는 고분고분하지 않은 서울지검장 이창우 방을 몰래 뒤져 약점을 잡아낸 뒤 사표를 쓰게 만들 정도였다(2권 39쪽). 하지만 안기부라는 우두머리 사냥개가 사라지자 안기부 앞에서 기를 못 펴던 검찰이 새로운 우두머리가 됐다. 하지만 검찰은 더 이상 권력의 개가 아니다. 검찰은 민주화 이후 권력기관 민주적 통제가 지지부진한 빈 틈을 타서 개에서 늑대로 변신했다. 스스로 움직이고 스스로 사냥한다.(발화점은 여기)

2022년 윤석열 정부는 노무현-문재인 정부가 추진했던 미흡했던 검찰개혁 성과마저 되돌리며 검찰 권력을 예전보다 더 강화하는 데 열심이다. 심지어 행정안전부를 통해 경찰을 직접 통제하는 작업도 진행중이다. 이런 와중에 감사원과 국정원까지 나서서 전임 정부 옥죄기에 총력전을 벌인다는 논란이 계속된다.

사실 권력기관 개혁이라는 사냥개에게 목줄을 채우는 문제는 민주화 이후 수십년에 걸쳐 사회적 합의가 된 사안이라고 할 수 있다. 검찰은 기소권과 수사권을 분리해 기소 중심 기관으로 전환하고, 경찰은 국가경찰위원회와 자치경찰제를 통해 권한을 분산시키며, 국정원은 해외정보 전문기관으로 거듭나게  하면 된다. 하지만 정부가 수십년에 걸친 작은 성과마저도 퇴행시킨다면 우리가 어렵게 이만큼이나마 이룩한 민주주의는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일까. 그럼 우리는 '신검부 남산의 부장들'이 후속편으로 나오는 날을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5공 남산의 부장들'을 정신없이 읽고 책장을 덮은 뒤 왠지 모를 두려움이 밀려왔다. 

*뒷이야기 하나

1979년 12월 14일 이른 새벽 대전에 사는 도계(陶溪) 박재완이 “국가 대사(?)를 물을 것이 있다는 몇 명(1권 89쪽)” 손에 붙들려 서울에 있는 보안사령부로 끌려왔다. 거기서 그는 5명의 사주를 봐줬다고 한다. 박재완은 당대 최고로 꼽히던 운명감별사였다고 하는데 그 날은 급하게 끌려오느라 친구인 유충엽 집에 사람을 보내 만세력을 가져와야 했다고 한다.


그 5명은 정황상 전두환과 노태우 등이었을텐데, 그들의 사주는 모두 “빨리 성공하고 빨리 쇠퇴하며, 세력 또한 극단적으로 왕성했다가 극단적으로 쇠퇴하는 운(1권 90쪽)”이라는 금수종왕격(金水從旺格)이었다고 한다. 박재완이 만세력을 빌려줬던 유충엽에게 해준 말로는 “나라에 큰 변란을 저지를 사람들이네. 내년(庚申年)부터는 대운, 왕운(旺運)이지만 10년쯤 지나면 목화(木火)운이 오니, 급격한 추락이 오고, 옛날 같으면 부관참시를 한다고 야단일 텐데…(1권 89~90쪽)” 그리고 나중에 다시 만나서는 “재(財)가 재(嶺)를 넘으면 재(財)가 되어 돌아온다(1권 90쪽)”는 재월령즉 위재이환(財越嶺卽 爲災而還) 얘기도 했다고 한다.  


명리학이니 사주니 하는 건 잘 알지도 못하고, 진지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물론 사주 잘 보는 사람 있으면 나도 모르게 옆에 바짝 붙어서 귀를 쫑긋 세우긴 한다.) 하지만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잡고 부귀영화를 누리다 무덤 자리도 잡지 못하고 있는 전두환을 생각하면 박재완의 해석이 예사롭지 않다. 대통령 부부를 둘러싼 무속과 점집 논란, 건진법사와 YUJI박사 이야기가 난무하는 혼란스런 나라꼴 한가운데 있어서인지 이런 이야기가 자연스레 눈길이 간다. 

*뒷이야기 둘

특이하게도 이 책에는 문재인과 윤석열도 등장한다.

문재인은 1980년 ‘서울의 봄’ 시위로 인해 체포됐는데 경찰서 유치장에서 사법시험 2차 합격 소식을 들었다. 당시 경희대 학생처장, 법대 동창회장이 유치장에 술을 들고 찾아왔을 뿐 아니라 육사1기인 대학원장 김점곤이 계엄사령부를 찾아다니며 구명운동을 했다고 한다. 김점곤은 한국전쟁 당시 평양에 최초로 진입한 연대장이었다고 하는데, 중대장 때는 박정희를 휘하 소대장으로 거느린 인연도 있었다고 한다. 그 덕분에 합격증을 받아든 문재인이 사법연수원에서 만난 동기가 박원순(서울시장), 박시환(대법관), 송두환(헌법재판관), 이귀남(법무장관) 등이었다고 한다.(1권 158~161쪽)


윤석열은 1980년 5월 8일 서울대에서 열린 마당극 모의재판 대목에서 등장한다(1권 122~123쪽). 윤석열은 당시 마당극 모의재판 재판장으로서 “전두환 무기징역! 신현확 사형!”을 선고했다. 당시 윤석열은 총리 신현확이 쿠데타 수괴라는 잘못된 정보로 인해 그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다고 한다. 윤석열은 5월 17일 전야에 보안사령부에서 일하던 친척이 집에 전화를 걸어 줘서 강릉 외가 쪽 친척 집에서 석 달간 숨어 있어서 구속을 피했다고 한다.   

*옥에 티 찾기

“최 대통령은 깨나 꼼꼼하게 구석구석 캐물었다(1권 172쪽).” 이 문장은 “꽤나 꼼꼼하게”가 맞겠다. 

“전국 득표도 지난번 11때 35.5%에서 이번에 35.3%로 불과 0.2%포인트 감소한 것에 불과하다(2권 119쪽).” 이 문장에서 “11때”는 “11대 국회 때”를 잘못 쓴 것이다. 

“허문도 정무수석은 여당의 이종찬 원내총무에게 설득했다(2권 164쪽).” “이종찬 원내총무를 설득했다”가 매끄럽겠다. 

“안무혁은 육사.에서 드물게 황해도 안악 출신이다(2권 273쪽).” 육사 다음에 마침표는 잘못 들어간 듯 하다. 

“1988년 국회의원 선거를 전통의 퇴임(2월 25일) 전에 하느냐, 그 후에 하느냐가 논란거리였는데, 한사코 4월 선거를 고집했다(2권 288쪽).” 이 문장은 “노태우 측은 한사코 4월 선거를 고집했다”고 표현해 주는게 자연스럽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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