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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說/자작나무책꽂이

오류투성이 사실관계를 엉성하게 이어붙인 <제국의 시대>

by 자작나무숲 2022. 3. 15.

세계사를 아우르는 거시적인 통찰력을 책 한권에 담아낸다는 건 정말이지 쉽지 않은 일이다. 무엇보다도 독자들에게 큰 수풀을 설득력있게 제시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그 수풀을 보여주기 위해선 수십 수백그루에 이르는 나무를 하나씩 이해해야만 하는데 이것 역시 만만치 않은 과제다. 보통 사람은 나무 몇 그루 이해하는 것만도 버겁다. 그렇다고 언감생실 숲은 신경쓰지 말고 나무만 제대로 공부하라는 것도 권장할만한 태도는 아닐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세계사를 조망하면서 역사의 큰 그림을 보여주는 책을 보면 존경심이 절로 들 수밖에 없다. 가령 <총, 균, 쇠> 등 다이아몬드의 문명사 시리즈를 비롯해 <대항해시대>나 <문명과 전쟁> <근대세계체제> <불평등의 역사> 같은 책들은 전세계를 무대로 하는 역사의 판도를 특정한 주제 속에서 풀어낸 책들이다. 

최근 읽은 <제국의 시대>에서 기대한 것도 그런 기쁨이었다. 세계를 보는 눈이 넓어지는 호강을 누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책을 펼쳐 들었다. 하지만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제국의 시대>를 힘겹게 다 읽고 나서 간략히 소감을 메모했다. 이렇게 써 있다. "매우 매우 실망스럽다. 논리전개는 촘촘하지 못하고 사실관계를 단순 나열하는데 그쳤는데, 그 사실관계조차 틀린게 많다." 

숲과 나무란 관점에서 짚어보자. 숲을 제대로 보여주려면 나무에 매몰되는 것도 피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나무를 무시해버려서도 안된다. <제국의 시대>는 나무가 엉성하다. 가장 유심히 읽은, 그리고 가장 실망했던 몽골제국 부분을 보자. 이미 몇십년 전에 정설이 바뀐, 다시말해 지금은 인정받지 못하는 낡은 학설을 근거로 삼으니 논리전개가 설득력을 가질 수가 없다. 몽골사 관련 최신 논문 검색만 해봐도 <제국의 시대>가 보여주는 역사상과 거리는 압록강과 영산강만큼이나 멀리 떨어져 있다.

 

<제국의 시대>는 원나라 이후 몽골제국은 분열했고 원나라는 중국의 한 왕조로 동화됐으며, 따라서 원나라 역사는 중국사의 일부라는 왕조사관에 입각한 수십년전 교과서 서술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관점은 "(쿠빌라이칸은) 몽골제국을 중국사의 정통을 이어받은 후계 국가로 인식하였다(94쪽)"면서 "통치 제도가 중국식으로 일변해 중국식 문화가 찬란하게 꽃피었다. 대칸은 유교적 전통을 중시하였다(95쪽)"고 하는 대목에서 잘 드러난다. 하지만 정말 그랬을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제국의 시대'를 다루는 책이 제국의 기본 성격을 파악하지 못하니 제국의 흥망성쇠를 제대로 다룰 수 있을리가 없다.

<제국의 시대>는 몽골제국 쇠퇴의 원인을 쿠빌라이칸의 '중국화'와 그에 대한 지배계급의 반발, 그리고 민족차별에 따른 반발을 꼽는다. 가령 "몽골 귀족 중에는 쿠빌라이칸의 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거셌다. 결국에는 지배층 내부에 균열이 생겨 광대한 영토가 여럿으로 나뉠 정도로 그 여파가 컸다(95쪽)"거나 "쿠빌라이칸이 중국의 제도와 문물을 대폭 수용하였기 때문에 다수의 몽골 귀족이 분노하였다(113쪽)"는 대목에선 지배층의 갈등과 분열을 지목한다. 하지만 이 역시 중국식 왕조사관에 따른 것일 뿐으로 몽골제국사 전체 모습을 왜곡하고 축소시킨다는 비판을 받은지 수십년은 됐다. 

"몽골인은 송나라의 후예, 즉 양자강 남쪽의 한족만은 철저히 불신하였다. 그들은 몽골의 안정을 해칠 가능성이 높은, 잠재적인 적으로 여겨 심하게 차별하였다(108쪽)"면서 이것이 한족들의 반란으로 이어졌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중국의 제도와 문물"이 가장 발달해 있는 대표적인 지역이 양자강 이남, 남송(南宋)이었다. 남송은 불교국였단 말인가?

당장 마르코 폴로가 쓴 <동방견문록>만 들춰봐도 몽골이 남송을 정복한 이후 남송 지역이 얼마나 경제적으로 번영을 누렸는지 수십쪽에 걸쳐 자세히 묘사하고 있는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애초에 "몽골은 제국의 거주자를 네 개 신분으로 나누었다(117쪽)"며 등장하는 '색목인' 이야기 자체가 근거가 희박하다는 건 역사학계에서 다양한 논의가 나오고 있다. 

<제국의 시대>는 단순나열에 그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전반적인 서술 자체에 성의도 없다. 예를 들어보자. 오스만투르크 제국을 설명하면서 "1402년에는 몽골의 후예인 티무르의 침략으로 말미암아 오스만의 세력 확장이 주춤하였다(128쪽"고 썼다. 하지만 몇 쪽 뒤에선 "1402년에 오스만제국은 몽골 왕자 티무리 렝(티무르 렝크)에게 패배했다"고 썼다. 같은 역사적 사실을 썼는데도 몽골의 후예와 몽골 왕자로 다르게 표현했고 이름도 서로 다르다. 티무르와 그의 별칭인 '절름발이 티무르'(Tīmūr-e Lang)를 제대로 구분을 못하는 걸 보면, 저자가 애초에 티무르가 누구인지도 제대로 모르고 쓴 건 아닌지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결론 부분도 큰 통찰력은 보이지 않는다. 군사력 부분이나 전쟁 언급, 전염병과 기후변화 등은 이미 충분히 익숙한 진단일 뿐이다. "남한은 전통문화를 토대로 독창적인 대중문화를 일으켜 '한류'를 창출하였다(318쪽)"는 생뚱맞은 언급은 굳이 추가로 언급하지 않으련다. 

결론은 이렇다. <제국의 시대>에선 "로마제국부터 미중패권경쟁까지 흥망성쇠의 비밀"이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역사를 움직이는 힘과 원리"는 찾아볼 수 없다. 472쪽이나 되는 두툼한 책을 날림으로 엉성하게 이어붙이는 비밀은 그럭저럭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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