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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뒷얘기/공무원들 이야기

간호사 출신 조종사, 하늘 위 인생을 만나다

by 자작나무숲 2021. 12. 22.

남들은 환갑 이후, 빨라도 중년에 인생 2막을 시작한다고 하지만 김형경(39) 해양경찰청 경위는 30대에 벌써 인생 2막이다. 병원에서 간호사로 10년을 꼬박 일한 뒤 무작정 미국으로 건너가 조종사가 되어 돌아왔다. 서해지방해양경찰청 무안항공대 소속 부기장으로 바다와 하늘 사이를 누비는 김 경위를 21일 전남 무안군 항공대에서 만났다.
 
간호사 10년 뒤 하늘을 바라보다

김 경위는 베테랑 간호사다. 간호학과를 졸업한 뒤 산부인과에서 7년을 일했다. “일이 너무 고되서” 옮긴 곳이 성형외과 수술팀이었다. 그곳에서 다시 3년을 일했다. 10년을 내리 수술팀에서만 보낸 셈이다. “서울 강남구에 있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성형외과였어요. 수술이 하루에 100건 가량 있었으니까요. 일본, 중국, 러시아는 물론이고 동남아시아 서남아시아까지 세계 각지에서 해외 고객이 정말 많이 와요. 자연스럽게 의료통역사라는 직업을 알게 됐습니다.”


 김 경위는 “수술팀은 중노동이다. 나이가 더 들어서도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면서 “수술팀 경험을 살려 의료통역사를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2013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 도쿄에 있는 성형외과에서 근무하면서 일본어 공부를 병행했다. 막상 일본에서 공부하면서 조종사라는 인생 목표를 갖게 됐다. 처음엔 일본에서 조종사 교육을 받을 생각이었다. 관련 학과를 수소문한 끝에 학교 문을 두드렸다. 

 

 “학교 입장에선 30대 초반인 내가 항공사에 취업이나 할 수 있을까 미심쩍어했거든요. 졸업생 취업률 떨어뜨리느니 아예 입학을 안시키고 싶었던 거죠. 학과장을 직접 찾아가서 시험 기회라도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합격도 했어요. 그런데 합격통지서를 받고 보니 학비가 1년에 2억원인 거예요. 더 큰 문제는 일본에서 조종사 자격증을 취득하더라도 한국에선 별도로 시험을 거쳐야 한다는 걸 알게됐죠. 고민끝에 학교 등록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죠.”

 

 새롭게 자료를 뒤진 끝에 찾아낸 곳은 미국 샌디에고에 있는 비행학교였다. 준비끝에 2015년 입학을 했다. 김 경위는 “당시 부모님이 엄청나게 반대를 했다. 특히 어머니는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냐”면서 “정말 하고 싶은 일이라고 설득한 끝에 미국으로 건너갔다. 10년간 일하면서 벌었던 돈을 모조리 학비와 생활비에 쏟아부었다”고 말했다.  
 
 영어 교과서 한쪽 읽는데 한시간

 처음엔 수업 내용을 따라가는것도 버거웠다. 첫 수업부터 교관 말을 하나도 못알아들으니 교관은 김 경위를 철저히 외면했다. 김 경위는 “나중에 알고보니 오해가 있었다”면서 “그 교관과 친해지고 나서 들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당시 입학생 300명 가운데 여학생은 딱 나 혼자였는데 그 교관으로선 여학생을 접해본 적이 단 한번도 없어서 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서 피한 거라고 말하더라”고 회상했다.  


 첫번째 관문은 입학 1주일 뒤 필기시험이었다. 김 경위는 “그걸 통과해야 실습을 할 수 있었다. 솔직히 수업시간이 ‘1주일 뒤 시험’이라는 말도 겨우 알아들었는데 시험 교재는 한 쪽 읽고 해석하는데 한두시간 걸렸다”면서 “일주일 동안 잠을 안자며 문장 자체를 통째로 외웠다. 어차피 교신을 영어로 해야 하니까, 교신을 못하면 죽는다는 마음으로 공부했다”고 말했다. 

 김 경위는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봐도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신기하다”면서 “당시로선 마음이 급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항공사에선 40세 넘은 여성 조종사는 취업이 불가능하다는게 정설이었습니다. 빨리 졸업을 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이어서 어학연수도 건너뛰고 몸으로 부딪치겠다고 생각했죠. 물론, 막상 부딪쳐보니 생각보다 훨씬 더 아프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외국어에 관심이 많았고 나 스스로 언어에 감각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미국에 가서야 ‘아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싶었죠.” 
 
 금의환향, 좌절, 그 뒤 찾아온 기회

 날마다 울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공부를 한 끝에 자가용 비행기 자격증부터 계기비행, 사업용 자격증, 대형 여객기 조종 자격증까지 4가지 자격증을 모두 취득하고 귀국한건 2017년 여름이었다. 김 경위는 “사실 졸업시험 즈음해선 귀국할 비행기표 구할 돈밖에 안남았다. 시험에 떨어지면 미국에서 노숙자 된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준비한 끝에 다행히 합격했다”면서 “귀국해보니 몸무게가 39kg밖에 안됐다. 엄마가 그걸 보고 많이 울었다”고 밝혔다. 


 금의환향을 하긴 했지만 곧바로 좌절이 찾아왔다. 1년 가량 항공사 취업을 준비했지만 그를 불러주는 곳은 아무곳도 없었다. 김 경위는 “내 인생의 암흑기라고나 할까. 엄청나게 좌절했다”면서 “사실 임시직 간호사를 하려고 하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만 조종사가 되는 길에서 멀어질 것 같아 일부러 피했다”고 말했다. 그러던 차에 해양경찰청에서 조종사를 뽑는다는 공고를 봤다. 그는 “공공부문이니까 남자 여자 따지지 않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지원했는데 운좋게 합격이 됐다. 믿어지질 않았다”고 회상했다.  

 

 2019년 2월에 무안항공대 배치받았다. 조종사 23명, 정비사 14명 등 46명이 근무하는 무안항공대는 고정익 항공대다. 해경 항공대는 크게 고정익 항공대와 회전익 항공대가 있다. 고정익은 동체에 날개가 고정돼 있고, 회전익은 날개가 회전해서 움직이는 헬리콥터를 생각하면 된다. 김 경위는 “무안항공대는 내가 맡은 CN-235를 포함해 고정익 항공기 3대를 보유하고 있다”면서 “해상순찰과 치안정보수집, 해양범죄 단속, 해양재난대응과 오염감시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한다”고 소개했다. 

 해경 소속 고정익 항공대는 김포항공대와 무안항공대 두 곳밖에 없다. 이 때문에 무안항공대는 마라도 서남쪽 149㎞에 있는 ‘이어도 해양과학기지’부터 독도까지 한반도보다도 몇 배 더 넓은 면적을 담당해야 한다. 김 경위는 “보통 서해와 동해 해상순찰로 나눠서 순찰하는데 한번 이륙하면 보통 4시간 가량 비행한다”고 말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무안항공대는 그동안 다양한 성과를 거두며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지난해 6월 항공 순찰 도중 불법으로 고래를 포획하는 것으로 보이는 어선 2척을 발견해 3시간에 걸쳐 채증한 끝에 현행범으로 체포한 게 대표적이다. 지난 14일에도 전남 완도군 청산면 여서도와 여수시 삼산면 거문도 사이 해상에서 129t 어선이 7589t 컨테이너선과 충돌해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해 항공대가 구조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어도부터 독도까지, 그럼에도 하늘을 나는 이유

구름을 헤치고 하늘을 조종하다보면 기억에 남는 멋진 순간이 적지 않을 듯 했다. “기억 나는 비행 경험”을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뜻밖이었다. 김 경위는 주저없이 비행학교에서 친구 2명을 사고로 잃었던 얘기를 꺼냈다. 타이완에서 온 한 친구는 시동을 걸기 전에 항공기 외부점검을 하다가 프로펠러가 갑자기 돌아가는 바람에 머리에 치명상을 입어 뇌사가 됐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다른 친구는 경비행기 뒷좌석에 탔는데 기체 고장으로 불시착했다가 나뭇가지가 창문을 뚫고 몸을 관통해서 사망했다. 사고조사위원회에서 조사를 마칠 때까진 현장을 보존해야 한다고 해서 몇시간 동안 시신을 그대로 둬야 했다고 한다. 김 경위는 “지금도 그 친구들 모습이 떠오른다. 항공기 조종의 무게감을 생각한다. 내가 조종하는 항공기에 탑승한 모든 이들의 목숨이 내 손에 달려 있다는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조종석 창문 너머로 독도가 보인다. 

 

 항공기 조종사는 여전히 여성에겐 진입장벽이 높은 영역이다. 당장 화장실 문제부터가 곤욕이다. 지금도 해경에는 여성 조종사가 3명밖에 없다. 그나마 회전익 항공대에는 여성이 없다보니 여자 화장실조차 없는 곳이 있을 정도다. 긴급상황 때문에 급하게 착륙했다가 당황한 적도 여러번이다. 

 비행기에서도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김 경위는 “항공기에 화장실이 있긴 한데 아무래도 불편하다. 비행을 앞두고는 아예 물을 안마시는게 습관이 됐다”면서 “전세계 여성 조종사들이 공통으로 겪는 고통”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요즘은 조종복이 윗도리와 아랫도리가 따로 돼 있어 다행이다. “예전에는 조종복이 위아래 통으로 돼 있는 일체형이었거든요. 화장실 가기가 힘들어 변비도 많이 걸렸다고 해요.”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김 경위는 “더 많은 여성 후배들이 조종사가 되면 좋겠다. 그 중에서도 여성 조종사들이 해경에 많이 지원하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비행기는 예민해요. 조종은 꼼꼼해야 합니다. 특히나 사람을 구하는 일을 하려면 빠른 판단을 하면서도 꼼꼼해야 하죠. 아무래도 꼼꼼한건 여자들 특기잖아요.” 

 다음 목표를 물었다. 김 경위는 그는 “기장이란 자리는 책임감과 빠른 판단력이 필수다. 앞으로 2~3년은 더 경험을 쌓아야 할 것 같다. 아직 경험이 부족하다”면서도 “언젠가 기장이 되어 더 많은 생명을 구조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2021년 12월22일자 19면에 실린 기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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