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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생각/예산기사 짚어보기

역사왜곡에 예산지원하는 나라

by betulo 2017.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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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출고. 2017.05.23.


존경하는 '초록불' 블로그를 보다가 고려시대 천리장성이 요동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인하대 고조선연구소 관련 기사를 알게 됐습니다. 역사왜곡도 역사왜곡이지만 이 연구가 정부 예산지원을 받았다는데 눈길이 갔습니다. 


인하대 고조선연구소는 고려와 국경을 맞댄 요(遼)나라 역사서인 '요사'와 '고려사'를 대조 연구한 결과 서북쪽 경계인 '압록'이 현재의 압록강이 아닌 중국 랴오닝성 톄링(鐵嶺)시를 흐르는 랴오허(遼河·요하)의 지류를 가리키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22일 밝혔다... 고조선연구소는 정부 지원을 받아 지난 몇 년간 한국 고대사의 쟁점사항들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원문은 여기)


고조선연구소에서 집단창작한 소설을 발표한 거라면 상관할 게 없겠지만 명색이 역사학을 연구한다는 곳에서 이런 짓을 한다는게 한심할 뿐입니다. 고조선연구소의 주장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지는 굳이 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사실 당대 역사기록에는 고려시대 천리장성에 대한 언급 자체가 많지 않습니다. 지도에 표시된 천리장성 위치를 보니... 혹시 고구려 천리장성과 혼동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드는군요. 사실 고구려의 정식 명칭이 고려였습니다.) 



더 자세한 취재가 필요하겠지만, 이 연구가 정부예산 지원을 받았다는 것은 박근혜 정부 당시 기승을 부린 '사이비 역사학'과 연관된게 아닌가 싶다. 가령 박근혜는 광복절 경축사에서 '환단고기'를 인용해 충격을 준 적이 있지요. 


고려 말의 대학자 이암 선생은 "나라는 인간에 있어 몸과 같고, 역사는 혼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원문은 여기)


이 구절은 이른바 '환단고기' 일부인 '단군세기'에 등장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 구절은 박은식이 1915년 펴낸 '한국통사'에 나오는 "대개 나라는 형(形)이고 역사는 신(神)이다. 지금 한국의 형은 허물어졌으나 신만이 홀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인가'를 본딴 것으로 봅니다. 다시 말해, 이 구절이야말로 '환단고기'가 20세기 창작물이라는 유력한 역사학적 근거입니다.(더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참조). 그것은 '동방견문록'에 만리장성 얘기가 전혀 나오지 않는 것이 바로 이 책이 후대의 위서가 아니라는 근거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여기)


사실 이 '사이비 역사학'의 영향력은 꽤나 광범위해서 더 위험합니다. 당장 박근혜나 새누리당(현재는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뿐 아니라 더불어민주당 유력 의원도 '역사왜곡을 막자'면서 동북아역사재단을 쥐고 흔드는데 동참했던 전력이 있습니다. 동북아역사지도 폐기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여기). 


가령, 2015년 3월 더불어민주당(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도종환은 동북아 역사지도에서 2세기 고구려 국경선 위치가 중국에서 만든 만든 중국 역사지도집과 완전히 똑같다고 주장(동북아역사재단 추진 역사지도, 중 ‘동북공정’ 지도 베끼기 의혹)했고, 11월에는 낙랑군의 위치 표기가 “식민사학의 논리와 똑같다”고 비판한 바 있습니다(여기). 결국 동북아역사지도 사업을 백지화시켜놓고는 그걸 자기 의정성과로 여깁니다(동북아역사지도 '44점'…45억 날리고 또 예산 신청할 듯) (도종환이 언제부터 고대사 전공자가 됐는지는 재론하지 않겠다). 그런  과정에서 이덕일 같은 이들이 맹활약(?)을 해서 한국 역사학 수준과 국격을 떨어뜨리기도 했지요(여기). 


제가 보기엔 사이비역사학도 적폐청산 대상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역사공부란 부동산 투기를 고대사까지 확장하라고 있는 게 아닙니다. 더구나 그런 걸 하라고 정부 예산을 쓴다는 건 끔찍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그런 논리야말로 박근혜가 국정교과서를 추진하던 바로 그 논리와 다를게 없습니다. 



#2017.05.31.추가

도종환이 문체부 장관 후보자라니...

충격을 받아 할 말을 잊었다. 대선후보 시절부터 문재인 최측근이란 얘기가 들려서 걱정했는데... 

우리 관점을 좀 명확히 하자. 

1. '환단고기'는 현대문학작품이다.(작품이라고 부르는게 민망한 수준이긴 하다) 

2. 자칭 재야사학에서 주장하는 '위대한 고대사'는 극우집단의 의제다. 

3. '식민사학에 빠진 강단사학'을 비난하며 '올바른 역사'를 외치는 분들이 국정교과서 추진하던 박근혜랑 뭐가 다른지 나는 모르겠다. 박근혜가 국정교과서 추진한 명분이 '올바른 역사관 확립'이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세상에 "올바른" 역사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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