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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說

민주적 갈등관리, 정부가 변해야 한다

by betulo 2014.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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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례1: 한국마사회가 서울 용산에 개장해 시범운영중인 용산 장외발매소를 둘러싼 갈등이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지역 주민들을 중심으로 한 ‘용산화상경마도박장추방대책위원회’는 22일 현재 182일째 천막농성을 벌이며 개장 반대투쟁을 벌인다. 주민들로서는 화상경마장 주변은 생활환경이 나빠지고 우범지대가 되며, 학생들에게 악영향을 미칠까 걱정이다. 반면 마사회는 추진절차에 아무런 하자가 없다는 점을 내세우지만 내심 마사회 수익의 75% 이상을 차지하는 전국 29개 화상경마장 사업에 차질이 생길까 우려한다.(여기를 참조)

 #사례2: 경기도 안산시, 시흥시, 화성시 에 걸쳐 있는 시화호는 극한 갈등 끝에 상생협력의 길을 찾은 모델로 꼽힌다. 2004년 민관협의체로 출발한 시화지구지속가능발전협의회(시화지속협)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시의회, 시민단체, 전문가 등이 참여하며 시화호와 그 주변지역의 지속가능한 개발에 관한 사항과 수질과 악취개선 등을 과제로 삼는다. 시화지속협 설립부터 현재까지 참여하는 서정철 시화호연대회의 대표는 “모든 정보를 공개하고 반대단체 참여를 보장하는 열린운영, 지역중심으로 논의하고 중앙정부는 합의사항 이행으로 역할을 제한, 행정기관 결정과 상관없이 원점에서 재논의하는 전제없는 논의” 세 가지를 성공비결로 꼽았다.



사진출처: jtbc



 국책사업으로 인한 갈등이 하루가 다르게 커진다. 정부가 결정한 사업이 지연되는 것도 문제지만 갈등으로 인해 지역사회 공동체가 무너지고 극심한 반목이 발생하는 것 역시 장기적으로 심각한 결과로 이어진다. 최근 학계에선 국가안보에서 ‘인간안보’가 차지하는 역할을 강조한다. 인간안보에서 중요하게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 바로 ‘사회자본’이다. 공동체가 무너지고 불신이 높아진다는 것은 사회자본이 바닥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발독재 시절 갈등이 발생하면 정부는 ‘불순세력’과 ‘좌익용공세력’부터 들먹였다. 요즘은 ‘집값 떨어진다’는 채찍과 ‘보상금 올려줄께’라는 당근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갈등관리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이 공통으로 지적하는 것은 갈등을 유발한 책임, 그리고 갈등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데 실패하고 갈등을 키우는 책임을 따지고 들어가면 결국 정부로 귀결된다는 점이다.


 한탄강댐을 둘러싼 갈등은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백지화를 대선공약으로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한탄강댐은 결국 정부가 기계적 중립 뒤에 숨은 사이 수자원공사와 주민들 사이에 극한 갈등을 초래했다. 결국 반대운동은 지쳐버리고 공동체는 박살나면서 갈등은 종결됐다. 그렇게 해서 정부가 얻은 것은 사업성이 낮은 예산낭비성 토건사업 결과물 뿐이다.



  용산 화상경마장 역시 이미 2008년에 국무총리 산하 사행산업감독위원회가 종합계획에서 장외발매소를 단계적으로 축소하고 도심지역 장외발매장은 주거지역에서 떨어진 외곽지역으로 이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지만 전혀 반영이 안됐다. 국민권익위원회가 6월16일 반대 주민들의 의견에 상당한 이유가 있다며 ‘이전 철회’ 의견을 냈고 서울시와 용산구, 서울시 교육청도 반대 의견이다. 갈등조정이 전혀 안되다 보니 주민과 정부를 넘어 정부 안에서도 갈등이 확산되는 셈이다. 


 갈등이 한반 발생하면 브레이크 없이 확대증폭되는 것은 제대로 된 갈등조정 시스템이 없기 때문이다. 갈등관리에 대한 고민을 사실상 처음 시작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4년 정부에 갈등관리시스템을 구축할 것을 지시했다. 정부는 그 해 ‘공공기관의 갈등관리에 관한 법률’을 정부입법으로 제출했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반대에 막혀 법안이 자동폐기됐다. 결국 2007년 대통령령으로 축소제정됐다. 이명박 정부 당시 사회통합위원회와 현 정부 국민대통합위원회에서도 갈등관리 법안 제정 노력이 계속되고 있지만 정부와 국회 차원에서 공감대는 여전히 약한 실정이다.


 하남시 광역화장장 유치를 둘러싼 갈등을 분석한 한 연구에 따르면 가장 시급한 것은 정책과정에 대한 정책결정자들의 인식 변화다. 시민을 정책 객체가 아니라 의견을 개진하면서 때로는 협렵하고 때론 갈등하는 능동적 주체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일단 발생한 갈등을 제대로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책참여자들 사이에 의사소통이 이뤄져야 한다. 많은 갈등 사안에서 정부 부처끼리도 의견이 다른 경우가 적지 않다. 정책결정자끼리도 갈등관리를 위한 활발한 토론이 필요하다는 것.


 신종원 서울YMCA 실장은 최근 국민대통합위원회가 주최한 관련 토론회에서 “국책사업을 둘러싼 갈등이 발생하면 정부는 항상 ‘정부는 정당한데 국민이 갈등을 유발한다’는 식으로 대응한다”면서 “갈등해결이 안되는 중요한 이유는 바로 정부가 그런 착각 속에서 일을 처리하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대형 국책사업에서 갈등을 유발하는 주체는 정부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면서 “정부는 갈등을 풀어낼 전문가도 부족하고, 그런 전문가를 현장에서 일하도록 해주지도 않고, 현장에 적절한 권한을 위임하지도 않는다”고 비판했다.


 용산 화상경마장을 둘러싼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갈등조정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 정부 일각에서도 국민대통합위원회 같은 곳에서 갈등조정전문가를 파견해 양측 의견을 조율하고 합의를 도출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갈등조정 가능성도 열려있다. 화상경마장 반대단체에서는 지난 8일 국민대통합위원회와 면담하면서 “조정 기간 동안 장외발매소 운영 중단과 주민 15명에 대한 업무방해죄 고소고발 취하”를 조건을 전제로 갈등조정협의회에 참여할 의사를 밝혔다. 이에 대해 마사회는 개장중단 불가와 조건없는 대화재개를 주장한다.


 인내심 없이는 갈등 해결은 불가능하다. 갈등관리 전문가들은 특히 정부가 당장 편한대로 강행하는 오래된 버릇을 고치지 않으면 갈등은 확대증폭된다면서, 그런 점에서 시화호를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참여-숙의-합의라는 민주적 갈등관리 모형을 창의적으로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시화지속협은 이제 올해 하반기를 목표로 시화호지속가능파트너십이라는 재단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서 대표는 “지속적이고 책임성 있는 관리와 시화호 유역의 교육, 문화, 역사 연구를 주요 기능을 삼고 있다”고 밝혔다.


2014년 6월 11일 경남 밀양시에서 여경들이 송전탑 반대 움막 철거대집행이 끝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출처: 프레시안

이선우 갈등학회 회장 인터뷰

 각종 갈등으로 몸살을 앓자 정부에서도 갈등관리 시스템 구축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갈 길이 만만치 않다. 이선우 한국방송통신대 행정학과 교수는 22일 “현장 경험이 있는 갈등관리 전문가가 국내에는 몇십명도 안 되는 게 현실”이라면서 “법적 체계를 마련하고 충분한 예산지원을 통해 시스템과 교육프로그램을 만들지 않으면 몇백배, 몇천배를 갈등비용으로 허비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지난해 10월 한국갈등학회 창립을 주도했으며 현재 회장을 맡고 있았고, 국내에서 손꼽히는 갈등관리 전문가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갈등해소센터에서 올해 6월 독립한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 이사장도 겸임하고 있다.


 이 교수는 체계적인 갈등관리를 위해서는 공무원들이 민원인을 대하는 말투부터 바꿔야 한다고 했다. 이런 훈련을 위해선 꼼꼼한 교육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당장 갈등관리를 하려고 해도 훈련된 공무원이 없고, 이들을 교육할 전문가도 손에 꼽을 정도”라면서 “가장 시급한 것은 현재 대통령령으로 돼 있는 갈등관리 법체계를 기본법안으로 마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갈등관리 시스템 구축을 위한 충분한 예산 확보에 대한 정부 차원의 공감대가 필요하다”면서 “지금은 국민대통합위원회에서 갈등관리 교재를 만드는데도 예산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법체계를 갖추고 교육시스템이 작동하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전문가 그룹이 형성되고 시장도 형성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갈등관리 법제화 경과

 2004. 노무현 대통령, 갈등관리시스템 구축 지시

 2004. 정부, ‘공공기관의 갈등관리에 관한 법률’ 국회 제출(임기만료 폐기)

 2007. ‘공공기관의 갈등 예방과 해결에 관한 규정’ 대통령령 제정

 2010. 사회통합위원회 ‘공공갈등의 예방과 해결에 관한 법률안’과 ‘국가공론위원회법안’ 마련

 2010. 임두성 의원 ‘사회통합을 위한 정책갈등관리법안’ 발의(임기만료 폐기)

 2010. 권택기 의원 ‘공공정책갈등 예방 및 해결을 위한 기본법안’ 발의(임기만료 폐기)

 2012. 김동완 의원 ‘국가공론위원회법안’ 발의(계류중)

 2013. 부좌현 의원 ‘국책사업국민토론위원회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 발의(계류중)

 2013. 박근혜 대통령, 체계적 갈등관리 시스템 구축 지시

 2013. 김태호 의원 ‘공공정책 갈등관리에 관한 법률안’ 발의(계류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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