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빌딩을 밀어내고 서울 여의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 된 서울국제금융센터(284m)는 현재 11월 완전 개장을 앞두고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다.
시에서 토지를 임대하고 미국 금융그룹 AIG가 투자·개발·운영을 맡고 있는 이 곳은 당초 ‘여의도를 동북아 금융허브로 육성하기 위한 랜드마크 빌딩’과 ‘유수의 금융회사 및 다국적 기업 유치’를 명분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2개월에 걸친 심층취재결과 서울국제금융센터는 첫단추부터 잘못 꿴 특혜와 부실 덩어리에 불과했다.
대부분 국내회사... 국내금융센터?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국제금융센터는 7월 현재 금융기관은 7개국 20곳(국내 기관 8곳), 비금융기관은 3개국 8곳(국내 기관 4곳) 등 모두 28곳이 입주해 있다. 입주율은 95.9%에 이른다. 하지만 6개층이나 임대해 가장 넓은 면적(2만 8023㎡)을 차지하는 딜로이트는 대부분 안진회계법인이 사용하므로 사실상 국내 금융지원기관으로 분류해야 한다. 결국 임대율을 다시 계산해 보면 국내 회사 13곳의 임대 면적이 5만 4703㎡로 임대면적 비율은 64.7%나 된다.
반면 외국계 기업은 필립모리스나 소니 등 비금융사 4곳(1만 4524㎡)을 포함하더라도 15곳 2만 9849㎡이며 임대면적 비율은 35.3%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뉴욕멜론은행, 다이와증권, ING자산운용 등은 서울에서 이미 사업을 하다가 이전비용 지원과 1년치 임대료 미납 등 파격적인 입주조건을 보고 입주한 것에 불과하다. (여기도 참조) 해외에서 국내로 새롭게 유치한 실적은 4건이다.
운영권을 갖고 있는 AIG는 정작 아시아·태평양본부가 홍콩에 있으며 서울국제금융센터에 입주한 것은 한국에서 영업 중인 여타 계열사에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AIG서비스㈜가 전부다. 입주 면적도 서울국제금융센터에 입주한 28곳 가운데 가장 적은 230㎡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금융기관이 이전을 쉽게 결정하진 않는다. 하루아침에 집결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 아니겠느냐.”는 궁색한 변명만 늘어놨다. 이어 “여의도가 국제금융 중심지가 되려면 외국 기업만 있어도 안 되고 금융기업만 있어도 안 된다. 다양한 기업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애초에 수요 예측이 과장됐던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수요 예측이란 게 원래 쉽지 않은 작업이다. 금융위기로 어려움도 있었다.”고 밝혔다.
전례없는 영어계약서
특히 국제금융센터의 투자 및 개발·운영권을 따낸 미국 금융그룹 AIG가 서울시와 계약을 맺으면서 모든 관계 서류를 영어로만 작성, 또 다른 부실 계약 의혹을 일으키고 있다. 취재 결과 서울시는 기본협력계약(2004년 6월 9일), 개별임대계약(2005년 8월 18일), 수정계약(2007년 1월 17일) 등 모든 계약서를 한글이 아닌 영어로 작성했다.
계약 내용을 해석하는 것은 무조건 영어 계약서가 기준이 되기 때문에 계약 단계부터 불리한 입장을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서울시 관계자에 따르면 국문 계약서는 아예 처음부터 없었다. 관련 공무원들조차 계약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영어 사전을 뒤지고 있다. 국문 번역본이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시의 참고용이고, 그마저도 전문가도 아닌 임시직들에게 시켜서 만든 것이다.
공공기관이 민간과 맺은 계약서가 영문인 경우는 전례가 없다는 평가다. 최근 방위사업청이 FX사업을 입찰하는 과정에서 록히드마틴이 국문 입찰제안서를 제출하지 않아 결격 사유가 돼 입찰을 연기한 사례도 있다. 투자유치과 관계자들도 “왜 그렇게 했는지 우리도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웃거릴 정도다. 최성식 변호사(법무법인 화우)는 “가령 재판정에서는 언제나 한국어가 기준이 되는 것처럼 공공기관이 맺는 계약을 한국어로 한다는 것은 법 이전에 상식에 속한다.”고 지적했다.
2016년부터는 매각 가능
해외 유명 금융기업을 유치하기 위해서라는게 시의 입장이지만 계약서엔 외국 금융기업을 얼마 이상 입주시켜야 한다는 의무조항도 없다. 더구나 AIG는 2016년 이후엔 매각이 가능하고 서울시는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동의하도록 한 것도 심각한 특혜 소지가 있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은 “99년 임대에 계약서도 영어, 의무는 없고 권한만 있다. 딱 영국이 홍콩을 차지하던 역사가 생각난다.”고 꼬집었다.
이 밖에도 계약 당시 특혜 시비를 불러일으켰던 낮은 토지 임대료(공시지가의 1%)와 2016년 이후 매각 가능 등도 이번 취재 결과 사실로 드러났다.
공교롭게도 서울국제금융센터 특혜 의혹을 처음 본격적으로 제기한 것은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후보였던 박근혜였다. 당시 김재원 대변인은 이명박이 시장이던 2005년 서울시가 파격적인 조건으로 AIG에 토지를 제공하고, 막대한 이익을 챙길 수 있게 해줬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또다른 의혹으로는 서울시는 아시아지역본부를 옮기겠다는 AIG 말만 믿고 덜컥 시유지를 임대해줬다는 것도 있다. 이명박이 대선출마를 위해 서둘렀다는 것도 의혹 가운데 하나다. 실제 2006년 6월 5일 서울시는 시공사도 선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명박과 당시 시장 당선자 오세훈, AIG 관계자등이 참석한 가운데 화려한 기공식을 열었다.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8/23/2007082300705.html
AIG는 “계약서는 2015년까지는 최소보유기간으로 규정했지만 2016년 이후 서울시의 동의하에 매각이 가능하며,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서울시가 동의하도록 되어 있다.”면서 “이 경우 시에서 우선매수청구권(콜옵션)을 행사할 수 있다는 규정도 없다.”고 말했다.
임대료도 비정상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건축공사기간(2006~2010년)은 임대료를 면제하고, 입주를 시작한 이후인 안정화기간(2011~2017년)에도 법정최소임대료(공시지가의 1%)만 받고 나머지 4%는 유예임대료 납부기간(2018~2024년) 이후로 유예한다. 정상운영기간(2025~2089년)은 순운영수익(NOI)의 약 9.12%에 해당하는 지분임대료를 징수하고, 마지막으로 2090년부터 2104년은 부채상환기간이다. 이에 따라 올해 징수한 2011년분 법정최소임대료는 공시지가 2777억원의 1%인 27.8억원에 불과했다. 이는 일반적인 부동산 임대관행에 비춰 대단히 파격적인 조건이다.
서울국제금융센터는 어떤 곳
한편 서울국제금융센터는 이명박 대통령이 시장으로 재임할 당시 여의도를 동북아 금융허브로 육성하겠다는 명분으로 외국 기업을 대상으로 투자유치한 것으로 대지 면적 3만 3058㎡에 총 4개의 빌딩(최고 54층), 연면적 50만 4880㎡에 이른다.서울시가 토지를 임대하고 AIG는 투자·개발·운영을 맡고 있다.
오피스Ⅰ~Ⅲ, 호텔 등 4개 건물로 이뤄져 있으며 오피스Ⅰ은 지난해 11월 개장했다. 지하 1~3층 쇼핑몰은 이달 말 개장 예정이며, 38층 규모 호텔과 오피스Ⅱ·Ⅲ은 11월 서울국제금융센터 전면개장에 맞춰 문을 연다. 시에서는 이와 별도로 여의도역까지 이어지는 363m 지하보도를 건설했다. 시 투자유치과에 따르면 AIG는 총사업비 1조 5140억원 가운데 70%를 국내에서 조달했다. 임대기간은 2006년부터 2055년까지 50년 임대 후 계약상 채무불이행이 없을 경우에 2056년부터 2104년까지 49년간 임대계약을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시에서는 외국인투자를 유치한다는 명목으로 중소기업전시장으로 활용하던 부지를 당초 국제입찰 매각하려 했다. 하지만 두 차례 유찰되자 곧 수의계약을 추진했다. 2003년 6월12일 AIG가 투자의향서(LOI)를 제출했고 6월28일엔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시와 AIG는 2004년 6월9일엔 기본협력계약, 2005년 8월18일엔 5개 프로젝트회사와 개별임대계약을 맺었다. 2007년 1월17일엔 사업비 변경에 따라 수정계약을 체결했다. 기본의향서와 양해각서는 시와 AIG가 민관합동개발 방식으로 개발하며 시가 지분을 갖는 방식으로 추진하도록 했지만 기본협력계약부터는 임대계약으로 변경됐다.
시에서는 외국 금융회사 유치를 위해 2009년 11월 홍콩·싱카포르, 2010년 11월 영국 런던 등 여러 차례 해외투자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공을 들였다. 지난해 11월에는 미국 뉴욕에서 금융허브 서울 컨퍼런스도 개최했다.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금융사·유관기관과 면담한 실적도 지난해 51개사, 올해 1~7월 23개사에 이른다. 다음달에도 홍콩에서 해외투자설명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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