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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사해

급변하는 정치변동 속에서도 빛나는 유럽의 토론과 협상정신

by 자작나무숲 2012. 7. 13.


 그는 프랑스 역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을 재선에 실패한 대통령으로 만들며 엘리제궁을 차지했다. 지난 56일 대통령 결선투표에서 니콜라 사르코지를 꺾고 미테랑 이후 17년만에 사회당 소속 대통령에 당선된 프랑수아 올랑드는 프랑스혁명의 성지로 꼽히는 바스티유 감옥 앞 광장에서 내 승리는 유럽 모든 시민들에게 변화가 임박했다는 걸 알리는 메시지다.”라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강조했다. “긴축정책의 종식을 바라는 유럽 모든 시민들에게도 희망을 배달하겠다.”

 
2010 1월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된 유럽위기가 장기화되면서 유럽 정치지형이 급변하고 있다. 곳곳에서 정권이 뒤집힌다. 지난해부터 현재까지 유럽에선 225일 아일랜드, 417일 핀란드, 65일 포르투갈, 915일 덴마크, 111일 그리스, 114일 이탈리아, 1120일 스페인, 124일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를 거쳐 올해 4월 네덜란드, 5월 프랑스 등 9개국이나 집권당이 교체됐다. 특히 유럽연합에서 가장 경제규모가 큰 국가들에 속하는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에서 모두 정권교체가 일어났다. 유럽 곳곳에서 프랑스와 독일이 주도하던 긴축정책에 반발하는 반란이 일어나고 있다. 그렇다고 좌파나 우파 특정 정당이 지지를 받는다기보다는 경기침체와 긴축정책에 따른 집권당 심판 성격이 강하다.

 
6 20일 총선을 두 번이나 치른 끝에 연립정부 구성을 가까스로 성사시킨 그리스는 격랑에 휩싸인 유럽을 대표하는 상징이 됐다. 전체 300석 가운데 129석으로 과반에 못미치는 원내 제1당이 된 신민주당 대표 안토니스 사마라스는 이날 사회당, 민주좌파당과 연정구성 협상을 타결했다고 발표하고 새 총리로 취임했다. 올해 초만 해도 외국에선 존재조차 낯설었던 시리자가 제2당으로 부상하고 작년까지 집권당이었던 사회당은 33석으로 군소정당으로 추락했다. 신민주당과 사회당, 6당인 민주좌파당(17)을 합쳐 179석을 확보한 연립정부는 구제금융 조건을 두고 유럽연합·국제통화기금(IMF)과 협상을 벌이고 있다. 협상 결과에 따라서는 연정 자체가 무너질 수도 있다.

올랑드


 이런 상황에서 독일과 함께 유럽연합의 중심축인 프랑스를 이끌게 된 올해 57세 올랑드는 1954년 프랑스 북부 루앙에서 극우 성향인 아버지와 가톨릭 좌파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랑제콜인 파리경영대학(야슈으쎄 파리), 파리정치학교(시앙스포), 국립행정학교(에나)를 졸업하는 등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그는 온화한 인상과는 달리 젊은 시절부터 꽤나 야심만만했다. 1979년 사회당에 당원으로 가입한 뒤 1981년 총선에서 훗날 대통령이 되는 자크 시라크에 도전했다가 패배했다. 당연한 결과였지만 그는 26세에 전국적인 유명인사가 됐다. 1988년 총선에선 드디어 국회에 입성했다. 1997년에는 당대표 자리까지 올랐다. 2002년 대선에선 조스팽 후보가 극우파 후보한테 밀린 3위를 기록하는 참패를 당했다. 2005년 유럽헌법 국민투표가 부결된 것도 엄청난 시련이었다. 그런 속에서도 그는 11년간 당대표로서 자리를 지켰다.

 '샴페인 좌파'의 화려한 등장


프랑스 좌파, ‘긴축은 해법이 아니라 문제 그 자체

 올랑드는 지난 1월 대중연설에서 금융의 세계 이름도 얼굴도 당적도 없고 선거에 출마할 수도 없는 그러면서도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불구대천의 적으로 표현했다. 시사IN 분석기사(세계가 주목한 프랑스의 '좌회전')에 따르면 올랑드가 맞서 싸우겠다고 선언한 금융자본주의는 현재 유럽연합과 전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이 그토록 중시하는 유럽연합 재정준칙(회원국 연간 재정적자는 GDP 대비 3%, ‘누적 공공부채 GDP 대비 60% 이하로 유지)이 바로 대표적인 금융자본주의 원리다. 정부지출로 재정적자가 늘어나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해 화폐가치가 떨어지고, 이는 곧 주식이나 채권 같은 금융자산의 가치가 떨어져 금융자본의 이해관계에 상충되기 때문이다. 이런 체제에선 물가인상을 막기 위해서는 일자리 감소도 감내해야 한다.

 
올랑드가 재정긴축보다 경제성장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은 그동안 메르켈과 사르코지가 합심해서 유럽연합 여타 회원국에게 강요했던 위기해법을 정면에서 반박하는 것이다. 그는 재정준칙을 의무화한 신재정협약을 재협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올랑드는 교사 6만명 충원을 비롯해 사르코지와 정반대로 공공부문 투자를 늘려 새 일자리를 만들고 최저임금을 인상하는 등 노동권을 보호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사회안전망 강화도 강조한다. 경제성장을 위해 정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는 그는 이를 위한 재정지출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를 위한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까. 바로 부자증세다. 프랑스 재무부는 74일 올랑드 대선공약에 따라 현행 연간 7만 유로 이상 고소득자 최고소득세율 41%을 개혁해 연 130만 유로 이상 고소득자에게 최고 73%까지 최고소득세율을 적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통해 23억 유로, 법인세 인상을 통해 29억 유로, 석유회사와 은행의 주식보유세 인상으로 5 5000만 유로를 확보하는 등 모두 72억 유로를 추가세입으로 확보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나마 이번 발표는 연간 100만 유로 이상에게 75%를 징세하겠다는 당초 공약보다는 일부 완화된 것이지만 강력한 소득세 강화정책인 건 분명하다. 공약에 따르면 법인세도 33%에서 35%로 늘리고 금융거래세도 신설할 예정이다.

 
국내정책만으로는 올랑드가 구현하는 재정·경제정책의 성공을 담보할 수 없다. 위기 완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독일과 프랑스의 정치적 지도력이 필요하다. 유럽연합 차원에서 그동안 위기해결 노력은 회원국 정상회의를 통했고 그 중심에는 독일과 프랑스의 정치적 결단이 자리잡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메르켈과 사르코지가 찰떡궁합을 과시했다. 하지만 금융자본주의 원칙에 입각한 감세와 긴축 정책조합을 그리스나 스페인 등 위기발생국에 강요하다보니 해당 국가에선 시위와 파업이 끊이질 않았고 선거결과는 번번이 집권당 발목을 잡았다. 올랑드가 구상하는 정책 지향이 사르코지와 대척점에 있다는 건 곧 메르켈과도 상반된다는 것을 뜻했다. 올랑드와 메르켈이 반목하고 적절한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 유럽연합 차원의 정치적 결단을 내리는 것 자체가 요원해진다.

토론과 양보
, 타협과 협상의 정신

 628일부터 이틀간 유럽연합 본부가 위치한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 정상회의는 메르켈과 올랑드의 정치력을 시험하는 무대였다. 많은 전문가들이 다양한 시나리오를 제시하며 협상 결과를 주목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공공연히 유로존 붕괴를 예언했다. 그도 그럴것이 메르켈과 올랑드는 그동안 성장으로 정책기조를 바꾸고 그리스를 유로존에 잔류시키겠다는 큰 틀에서는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핵심 쟁점인 유로채권 발행과 유럽중앙은행(ECB) 역할에 대해서는 여전히 이견을 보였기 때문이다.

메르켈


 
프랑스는 유럽 재정위기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유로채권을 반드시 발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독일은 도덕적 해이를 이유로 이를 반대했다. 올랑드가 보기에 대부분 유로존 국가들은 정부부채 수준이 높아 국채금리가 상승하면 곧바로 위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이를 해결하려면 유로존 차원의 유로채권을 발행해 구조개혁에 필요한 시간을 확보하고 국채금리 인하에 따른 재정조달비용 감소 효과를 누리자는 것이다. 최근 들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IMF도 유로채권 발행에 지지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메르켈은 유로채권이 재정부담만 키우고 위기발생국의 재정규율 준수의지를 약하게 할 것이라는 점을 우려한다.

 
또다른 쟁점은 유럽중앙은행 문제다. 프랑스는 유럽중앙은행이 위기 극복을 위한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독일은 이를 반대한다. 독일은 유럽연합 조약상 유럽중앙은행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규정이 없다는 이유를 들고 네덜란드가 이 입장을 지지한다. 반면 스페인과 벨기에, 폴란드 등이 프랑스 입장을 지지한다.

 
조금은 뜻밖에도, 유로존 정상들은 새벽 430분까지 이어진 마라톤 회의 끝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회원국 은행들의 자본확충을 위해 유럽 재정안정기금(EFSF)이 직접 돈을 대도록 한다는데 합의했다. (유로존 "EFSF·ESM, 은행 직접 지원 합의")정상들이 합의한 내용을 요약하면 유럽재정안정기금(EFSF), 유로안정화기구(ESM) 등이 은행 자본확충을 직접 지원하고 선순위 지위를 갖지 않은 채 EFSF ESM으로 이전되고 EFSF·ESM이 지원할 때 그리스에 부여했던 `추가적 재정긴축 같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 것 등이다. 여기에 더해, 유럽개발은행 자본을 100억 유로 확충해 대출 여력을 600억 유로로 늘리고, 미사용 유럽연합 구조기금 재배정을 통해 600억 유로를 합해 1200억 유로를 실물 부문에 공급한다는 경기부양책도 발표했다.

 
이번 결정은 올랑드는 물론 이탈리아 총리 마리오 몬티, 스페인 총리 마리아노 라호이 등이 끈질지기 메르켈을 설득했고 결국 메르켈이 양보를 했기에 가능했다. 메르켈은 정상회의 참석 직전까지도 의회에서 일부 국가의 정부부채는 처음부터 실패하도록 짜였고, 지금까지 한 조치는 눈속임에 지나지 않았다. 문제의 뿌리를 다뤄야 하는 만큼 쉽고 빠른 처방은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상회의 성명서가 은행과 정부부채 사이의 악순환을 시급히 끊어야 한다.”는 말로 시작한 것에서 보듯 급박한 상황변화 앞에 메르켈은 극적인 양보를 했다.

위기에서 더욱 빛나는 유럽의 토론문화

 최근 유럽에선 긴축으로 인한 사회복지 축소가 국수주의를 자극하면서 극우정당이 독버섯처럼 자라난다. 이들은 치안과 고용불안을 문제삼고 반이민, 반이슬람을 선동한다. 자국민 우선주의를 강조하고 유럽연합 통합에 딴지를 건다. 최근 프랑스 총선에서 극우정당인 국민전선(FN)이 의석 17.9%를 차지한 것이 대표적이다. 반면 그리스에선 5월 총선에서 급진좌파정당인 시리자가 돌풍을 일으켰다. 4월에 우파내각이 무너져 총선을 새로 치러야 하는 네덜란드에선 네덜란드판 시리자로 불리는 사회당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상황은 마치 독일에서 1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와 공산당이 나란히 선거때마다 의석수를 늘려가던 것을 연상시켰다. 하지만 그런 속에서도 각각 대표적인 중도좌파와 중도우파인 올랑드·메르켈은 유럽연합을 주도하는 지도자들다운 협상능력을 보여줬다. 13시간이 넘는 토론 속에서 결국엔 위기극복을 위한 대승적인 타협점을 찾아냈다는 것이야말로 이러저러한 위기 속에서도 유럽을 하나로 묶어주는 원동력이라고 평가할 만 하다. 이런 토론과 양보야말로 진정 우리가 부러워하는 정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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